2006.12.25


22일 오후까지 작업에 매달렸다.
22일 밤부터 영후와 imblue가 당도할 것이다.
함께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10월 15일에 부산으로 보내고 처음 보는 것인가?
기말고사 준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것은 아이들의 일상이다.
중학교 첫 해를 여러가지 환경의 변화로 쉽지 않게 보내었을 것이다.
간혹 통화를 했다. 무엇보다 영후가 그 동안 집에 오는 시간이 밤 10:30 이후였다.
지난 부산길에는 일부러 부산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았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괜히 아이 마음을 달뜨게 하고 싶지 않았다.
좀 자란 듯 하다. 아이들이라.
코밑으로 수염이 좀 보이는 듯 하다. 목소리는 지난번 보다 더 변성기의 어색한
소리가 역력하고 콧잔등 옆으로 작은 여드름이 보인다.







11월 27일 전후로 여성 3인방과 함께 구례를 방문한 이후이니 대략 한달 좀 못되는
시간이 지나 다시 imblue가 구례를 찾았다. 우리가 구례로 옮기고 세번째다.
최다 방문 횟수를 자랑한다. 그냥 사표 내고 오지. 당신은 아무래도 이쪽 과에 가까워.
지금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육회를 자주 먹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아, 육회를 자주 먹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하지. 그 문제는 그냥 사고 치고 나서 생각해보지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어쩔 수 없이 생존해야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지.
대구 출장길에 경북에서 전남으로 이어지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남원으로 올라가서 imblue를 잡아왔다.
당신 알아? 그때 당신 표정의 해방감 같은 웃음.

육회와 시래기된장, 동김치, 배추김치, 갓김치로 든든하게 늦은 저녁밥들을 나누고
비교적 일찍 잠을 청했다. 23일 새벽에 우리는 좀 빡빡한 등반을 예정하고 있었다.







5:00 알람은 울렸지만 나는 계속 잤다.
어제 장거리 이동을 한 영후와 imblue 역시 골아 떨어져 있었다.
눈을 켰을 때 시간은 6:30 정도였다.
'이뤈! 기상!'
깨어나지 않은 몸을 열고 7시에 차 시동을 걸었다.
겨울, 성삼재행 버스는 운행하지 않는다. 종주도로 상황이 그렇다.
22일 아침에 지리산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다. 등산로는 열려 있고 차량은 시암재까지만 가능하다.
결국 시암재에 차를 세우고 25분 정도 성삼재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왕복으로 50분 정도 이동거리와 도보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천은사 입구 매표소는 당연히 사람이 없었고 종주도로 전체 차량통제 안내가 붙어 있었다.
이미 지나친 다음이니 그냥 오를 수밖에.
도로는 중간 중간 얼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시암재에 주차하고 오늘 등반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꽁꽁 얼어 붙은
성삼재행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지난 밤이 동지였다. 눈썹달이 가장 아름다운 예각이었다.
가장 긴 밤의 다음날 아침. 7:30 즈음이었지만 어둑했다.







성삼재로 오르는 길에 만복대에서 남원 방면으로 대기는 운해의 조짐이 보였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해가 완전히 능선을 넘어 서기 전의 기운일 것이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아침 기온이 이 정도면 괘안타.







성삼재에 당도했을 때, 일이십분 차이로 시암재쪽 능선은 가깝고
광주 무등산 방면은 확연히 밝아 온다. 예정보다 1시간 30분 정도 출발이 늦었다.
내 마음은 좀 급하다. 늦어도 4시까지는 시암재 차로 돌아와야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사이의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사타구니 사이가 묵직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만 작업하는 사람이 준비 없이 등반을 시작하고 더구나 지난 눈은 해발
900m 정도에서부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산 아래에서 이곳을 바라보았을 때는 노고단 정상부만
살짝 흰색이었는데 그 앙상한 나무 아래로 그 눈들은 그대로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눈길은 힘들다. 급한 마음에 초반 스피드를 올렸고 출발한지 30분 만에 사타구니 쪽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구례쪽으로 날은 완전히 밝았고 언화가 저 아래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발목이 별로 좋지 않다고 스스로 진단했고 당일이지만 7~8시간 소요되는 등반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노고단 대피소로 오르는 길에 부산에서 살고 있는 영후는 뜻하지 않은 눈풍경에
횡재한 기분인 모양이다. 하지만 눈에 대한 이 기분 좋음은 앞으로 전개될 몇 시간 동안 유효한 것일까?
하지만 뭐 어때. 지금 즐겁고 눈밭에 누워 러브스토리의 그 장면을 한번 재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리산이고 너의 몸은 이제 사춘기로 진입했잖아.







아홉시 좀 못 되어서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시암재를 출발해서 대략 80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될 것이고 출발 전에 뜨거운 국물을 좀 들이켜야 할 것이다.
영후는 이미 배고프단 소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보다시피 히말라야 6000m 이상에서만 사용하는 전문 등반가용 코펠을 준비했다.
다른 이름으로 양은냄비. 똑 같은 등산복 입은 취사장의 사람들이 당연히 눈길 한번씩 주는 분위기.
사발면은 꿀맛이다. 앞으로 8시간 이내에 이 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9:30에 대피소를 출발했다.







시작부터 힘겨운 노고단 계단길을 올라서서 가짜 노고단에 당도했다.
남원쪽으로 공기층은 확연하게 높이에 따라 경계선을 달리하고 있었다.
아랫쪽에서 산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에서의 날씨는 청명한 편이었다.
이 정도 하늘이면 좋은 예감의 날씨다.







진짜 노고단 넘어 햇살은 이미 빛나고 있었다.
저 눈이 설마 이제 시작될 산행 중에는 없겠지. 노고단 정상부는 원래 나무가 없는 조건이니
저런 풍경일 것이야.







영후는 오르는 길에 자신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놀랐다. 영후의 사진찍기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아들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여튼 내가 보지 못햇던 포커스도 보였고, 무엇 보다 내가 바라보는 포커스와 동일한 기준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풍경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닌 듯 하다. 잡아 내는 포커스를 보면 분명이 이 풍경을 영후 역시 가슴에 쌓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공개한다. 영후 사이트.
http://www.namoo1993.com/bbs/zboard.php?id=photo
이곳에 이번 산행에서 영후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올려 두었다.







내가 분명히 지난 11월 27일 글에서 '시린 옆구리' 보강을 말했었다.
급하게 대구 출장길 온다고 카메라도 들고 오지 않았다.
쓸쓸한 뒷태에 대해 다음에는 뭔가 방안을 마련해 보시욘.
이런 사진 제발 좀 올리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내가 올릴 것이란 것은 그대가 잘 알지 않쏘.







이곳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지리산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종주를 해 본 것이 거의 20년이 넘었고 짧은 등반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 3~4년 사이의 일이다. 하여 나는 지리산에 대해 무지하다.
그 증명이 바로 이 풍경이다. 산에 눈이 쌓여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등반객들은 당연히 아이젠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반복적인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초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산에 익숙한 분위기의 도시인들이다.
계속 찾을 수밖에 없는 산이다.
여튼 이 눈길은 왕복 내내 동일했고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의 눈은
지나는 사람이 적다보니 푹푹 발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예상했던 왕복시간, 즉 대피소에서 반야봉까지 3시간 소요라는 목표대로
진행되었지만 그것은 내리막에서 의지와 관계없이 눈 때문에 빠른 속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눈길에서 다리가 느끼는 하중은 평상시와 달랐다.







노고단에서 산허리길을 따라 30분 정도 내리막이 끝나고 임걸령으로 이어지는 전망이 확보되는
능선길로 나섰다. '와!' 우리만 있는 능선길에서 우리만 짧은 탄성을 뱉었다.
'디스 이즈 지리산'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능선이 이어졌다. 완전히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상할 만한 조건이었다.
연휴이자 토요일이었지만 종주도로 차량 통제 탓인지 도시인들은 확연히 줄었고
등반을 예정했던 월급쟁이들도 전화만 해 보고 도로 통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번 산행은 평일 산행 보다 사람이 없었다.












임걸령 못 미쳐 왼편 아래로 피아골 계곡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서 겨울의 얼굴을 보았다.
바람은 강했지만 춥지 않았고 눈은 수분은 다 달아나고 결정만 남아 뭉쳐지지도 않았다.
매마른 눈과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의 화석은 충분히 겨울스러웠다.
내 가슴에 오래 남을 모습이었다.







임걸령 고개를 치고 올라갈 때 호흡은 급격하게 흩어졌다.
다른 때 보다 다리 쉼이 많았다. 사타구니 사이의 통증은 오르막에서 고통스러웠다.
난생 처음으로 산행시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었다.
이번 산행에서 찍은 사진의 양이 적은 이유다. 그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에너지 소비가 많았다기 보다 순간적인 고통이 많았다.
노루목에 당도했을 때 11:30 이었다. 대피소 떠난지 2시간 지났으니 5km 주행 속도로는
양호하다. 어쩌면 중단할지도 모른다고 imblue에게 이야기하고 출발했는데
사실 임걸령을 넘어서면 억울해서 중단하기 힘들어진다. 이제 1km 반야봉으로 치고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는 중간에 카메라를 한번 잡았다.
하지만 나는 반야봉 길의 눈에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었고 채 열걸음도 못가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멈추어섰다. 나는 상관말고 각자 페이스대로 가라고 손짓했다.







가장 늦게 반야봉 정상에 도착했다.
등짐을 벗어 던지고 하늘을 향해 거의 5분 정도 누워 있었다.
겨우 몸을 추스리고 준비한 스니커즈를 먹었다. 꿀맛이다. 스니커즈 하나의 위력이 엄청나다.
그래도 당연히 배가 고프다. 맥가이버 imblue는 우리들 모르게 노고단 대피소에서 양갱과 과자를
준비한 모양이다. 반갑다 과자야! 짐을 최소화하는 나의 속성상 나와의 등반에서 항상 사람들은 허기진다.
과일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아삭한 사과를 한입 먹고 싶었다.
좀 회복하고 바람을 쐬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추웠다.
오르는 길에 반야봉 정상에 당도하면 입고 있는 스타킹을 벗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르는 중에 자꾸 내의용 스타킹이 다리에 감기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하지만 반야봉 칼바람 속에서 팬티를 드러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방을 돌아보며, 그래도 정상에 왔는데 급하게 몇 번의 셔터를 눌렀다.






















반야봉 정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벌금 50만원이다.
두명이니까 백만원이다. 그래서 포토샵으로 담배 피는 모습을 만들어봤다.
절대 피우지 않았다.







이제 하산이다. 그래도 내리막 아닌가.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 50분 결렸는데(평소는 30분이면 오른다.) 내려가는 길은 25분 걸렸다.
줄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노루목 바위터에서 바지를 내리고 결국 내의스타킹을 벗었다.
옷을 갈아입고 10초 후에 여성 두명이 임걸령에서 올라왔다. 휴~
대략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imblue의 수난시절이었다. 왼쪽 고관절 쪽으로 이상이 온 모양이다.
이 증상은 내리막에서 쥐약이었고 하산길은 당연히 내리막 중심... ㅎ
'종馬'로 소문났던 H군이 지난 가을 14시간의 '가학성 미친 등반' 이후 '병馬'가 되어
다리를 절뚝이며 서울로 떠난 이후 오늘 imblue 역시 병馬가 될 것인가...
대피소에 당도해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인 핫바와 레몬에이드를 샀다.
무조건 맛있다. 영후는 좀 더를 요구했지만 참아라 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음식물에 배를 내어 주면 내려가서 즐거움이 없어진다.
다시 성삼재 - 시암재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내려왔다.
오후 4시 전에 시암재에 주차해 둔 차의 시동을 걸 수 있었다.
등반은 끝이 난 것이다. 힘들었다.
하지만 가슴에 남는 풍광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힘듬을 감수해야 한다.
내려가자! 그리고 먹자!







시간이 어중간하다. 그래 언화에게 기별해서 근기 있는 군것질을 주문했고
우리는 일단 다급한 위기를 넘기고 지리산 온천으로 갈 생각이었다.
또띠아 피자는 빠른 시간에 가능하다. 피자 도우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고 빠르다.
제 각각 이런 경우에만 먹는 콜라, 사이다, 쥬스를 준비하고 또띠아 피자 각 한장씩 먹고 지리산 온천으로
지친 몸을 담그러 갔다. 23일, 연휴의 시작. 지리산 온천 주차장은 거의 만차였다.
하지만 관계없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겨울에는 노천탕을 열지 않는다고 했는데 연휴라 그런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노천탕을 열었다. 재수! 한시간 정도 노천탕과 풍욕으로 망가진 뼈마디 사이에 기를 불어 넣었다.
어두워져서 온천을 나왔고 일행의 허기짐은 소 한마리라도 잡아 먹을 태세였다.
삼겹살! 몸은 자연스럽게 고지방을 요구했고 사진을 남길 여유도 없이 삼겹살 아닌
두툼한 비계의, 오늘 잡은 돼지 목살과 꽁치 넣은 김치찌게를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오늘 하루의 격전을 마감했다. 돼지 육질도 장난이 아니지. 구례는.
그리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세 남자는 뻗어 있었고 새벽에 얼핏 눈을 뜨고 보니
박지성이 뛰어 다니고 있었고 그제사 TV를 죽였다.

다음날 아침 일정이 있었다.
imblue는 이번에도 맥가이버로서의 역할을 해야했다.
이미 22일 밤에 사무실의 컴을 포멧하고 정상화시켰고 24일 아침에는 문수골 지리산형 집으로 가야했다.
2주일 전에 마침내 앙망하던 문수골 인터넷 개통이 실현되었고 20여 가구에 인터넷이 가능해진 것이다.
당연히 문수골 사이트를 만들어 주었고 이제 그 골짜기 사랑방으로 사용할 태세다.
imblue는 지리산형네 공유기 공사를 완료하기로 했다.
늦잠이 간절할 만한 24일 아침이었지만 지난 밤에 워낙 골아 떨어진 탓인지 8시에 쉽게 눈이 열렸다.
몸은 당연히 뻑뻑했다. 랜선과 공유기 등을 사무실에서 챙겨 imblue와 둘이서 문수골 700m로 향했다.
영후는 늦잠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11시에 눈을 뜨고 '맛대맛'을 보겠지.
오미리 지나 저수지를 지날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날씨가 참 따뜻했던 것이다. 사진으로 포착할 지점이 여의치 않았다.
문수골 민준이 집엔 지난 밤에 손님이 있었다. 태곤씨 가족 전체가 와 있다. 5명.
마당으로 들어서자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우고 있다.
아점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주인장 내외는 역시 언제나 처럼 분주하고,
"형수 또 손님 전쟁 치고 있네."
하자,
"뭐 전쟁이라, 사는 일이제."
한다.
산 위 농장에는 장기간 노임 주는 인부를 10여명 가까이 동원해서 나무를 심고 있다.
그들의 머릿수까지 합하면 뭐 대략 이 집 식구까지 해서 18명 정도 되나?
우리 점심까지 준비할 태세다. 하이고 맙시다. 그릇 하나라도 줄입시다.
장작불에 가마솥이 연유가 있었구만
닭 여러 목숨이 뻗어 있다. 백숙으로 점심을 할 모양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이 집에서 방목한 자연산닭이다.
'와! 된다!' 방안에서 자기 컴으로 인터넷을 하게 된 민준이의 환호성이 들린다.
기어코 식사를 뿌리치고 내려가려는 내가 형수는 좀 못마땅하고 섭섭한 모양이다.
나 보다는 공유기 공사 때문에 올라 온 imblue를 대접하고 싶은 것인데 말이다.
닭 한 마리를 싸 주신다. 막 사망한 닭은 내장과 똥집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속으로 'ㅎ' (이건 저녁에 영후몫이다.') 미안 형수...







읍내로 내려왔다. 그러저럭 정오다.
영후는 이미 지난밤부터 그 동안 못했던 게임을 하겠다고 외출하지 않고 피자 한판과
3시간의 컴퓨터를 주장했다. 그래 그래라. 부산의 컴퓨터도 시원찮은 모양인데 네 하고 싶은대로 해라.
어른들만 늦은 아침이자 일반인들의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오래 전부터 드라이브 길에 봐 두었던 광의면의 추어탕, 곰탕집. 광성식당이다.
일요일이고 처음 가는 식당이라, 읍내도 아닌 인근면의 식당이라 일요일 영업을 자신할 수 없었는데
다행하게도 한다. 뒤에 듣고보니 인근에서 일하는 인부들 때문에 평소에는 열지 않는 일요일 점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추어탕은 하지 않는다. 오직 곰탕과 백반. 가격은 구례의 전형인 오천원.
테스트 겸 언화는 백반을 두 남자는 곰탕을 시켰다. 결과는?
또 하나의 식당을 발견한 것이지. 나주식 곰탕의 모양을 보이는 이 집 곰탕은 명품은 아니다. 조미료도 좀 들어간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맛있다. 소금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결형으로 나오고 곁들여 나오는 찬도 모두 맛있다.
사태살로 추정되는 고기는 부드럽고 쫄깃하고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백반에 따라 나온 토장국이 일품이다.
특A급은 아니라도 간혹 찾을 만한 A-급 리스트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왔다.
식당 마당의 목련이 계절을 착각하고 있었다.







자판기커피 한잔씩 뽑아들고 식당 맞은편 파출소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은 겨울답지 않고 식사는 만족스럽다.
광성식당은 오직 평일 점심 장사만 한다고 한다.
"아침 몇시부터 해요?"
"아침에 이 동네는 아무도 밥 안사먹어요."

위치 설명은 힘들다. 2007년에는 구례기행 드라이브와 그림 맛지도를 제작해얄 것인데...
지리산닷컴의 첫번째 미션이 될 것이다.
아, 아주머니 죄송해요! 구례의 상징 전기자동차. 시골에는 이 전기자동차가 노인들의
주요한 이동수단이다.







사성암 죽연마을을 imblue에게 보여주기 위해 바로 이동했다.
사성암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휴일이면 즐길 것인데라는 말을 뱉고 하늘을 보니
수십명의 인간새들이 날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이 날지?'







아니, 우주비행사 출신인 나한테 기별도 없이 이런 행사를 하고 있다뉘!
구례가 정녕 인간새들의 중심지역으로 태어난단 말인가.







500m 좀 넘는 오산 정상까지 차가 오를 수 있고 사성암지구 앞 들판은 넓고 전기줄이 적다.
그래 착지가 용이한 것이고 논두렁 착지는 위험도 적다. 그래 이곳에 '활공장'이 있고 화장실도
만들어 뒀다. 그래 이런 것이다. 이곳에 패러글라이딩 용품센터도 짓고 커피점 하나 정도도 있고
읍내로 이어지는 자세한 동선을 안내하면 시간이 지나면 읍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면 구례로 모이자!
인호형도 날고 있을 것이기에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오산 정상이여. 나는 오늘 못 날아. 진행해야 혀."







드라이브 좀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만두와 찐빵으로 길 떠날 사람의 요기를 보충하고 게임을 끝낸 영후와 합류했다.
오후 5:45 기차로 imblue는 수원으로 떠났다.
또 와.







이번에 본 영후가 부쩍 자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아이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너무 늦은 것이겠지.
영후가 태어났을 때도, 입학할 때도, 졸업할 때도 나는 심각한 각성 같은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인생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지 말자."
꼭 진지할 필요도 없지만 근본적으로 내 인생을 보고 자라는 한 남자 아이에게 내가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을 나는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의 가벼운 농담과 친근함을 표면으로 한 애비답지 못한 언동이 아이의 가슴에
지나치게 이르게 '깃털 처럼' 가벼운 인생관을 심어 둘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후회하진 않지만 권하고 싶지도 않은 내 인생살이 방식이다.
24일 자정 넘어 3박 4일의 함께 한 시간 중에 딱 30분만 진지하게 아빠로서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이런 저런 당부와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하동까지 데려다 주었다. 구례에서 부산까지는 좀 지루하고
시외버스의 특성상 중간에 정차하는 경우가 많아 그리했다.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가고 영후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하동까지 오는 길엔 아이를 위해서 스멧싱펌프킨스 음반을 준비했지만,
나 혼자 구례로 올라 오는 길엔 인생 후반기 양희은의 목소리를 들었다.


4dr@naver.com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