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3





연초부터 아들과 조카 녀석의 학습 부진 문제로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 안가도 좋다!' 는 나의 허세는 역시 허세였는가?
같이 살지 않는 상황에서 신경이 쓰인다.
공부는 어떤 아이들이 잘 하는가? 옛날에는 힘든 집 아들네미들도 간혹
사법고시 수석합격 했다고 신문에 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2살부터 습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부 당해온' 아이들이 잘 한다고 한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의 아이들이 잘 한단 것이지.
물론 극소수의 자기개발형, 스스로 동기유발형 아이들도 있겠지만 내 핏줄들이
그럴 것이야란 희망은 역시 희망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왜 그것을 희망하는가?
역시 불안감이겠지. 제 새끼, 제 핏줄이 세월이 흘러 밥도 못 먹고 빌빌거릴것 같은 불안감.
진로 문제로 갈등하는 큰조카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엉뚱하게 '삼국지 집에 있냐?' 라고
물었다. 뭐 대화의 실마리이자 필요에 의한 질문이기도 했다.
없단다. 부산 본가에는 내 책과 형 책까지 해서 대략 장서라 해도 될 만한 몇천여권의 책이
잠자고 있는데 일부 나와 있는 진열장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뭔 놈에 삼국지도 집에 없냐' 라고 타박하고 조만간 삼촌이 부산 갈 것이니 그때 이야기 좀
하자는 예고편을 남겨둔다. 녀석은 대략 내가 '이야기하자'라는 의미를 짐작할 것이다.
영후에게 전화해서 삼국지가 없단다, 곧 구해주마 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난번 구례 방문때, 이번 겨울에 소설 삼국지를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가장한
아빠의 입장을 전달한 상태였다.
왜 삼국지를 읽어라고 했을까? 나는.
거 참 실없는 일이네.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이 이전의 우리들 처럼
대략 삼국지로 성인소설의 세계로 진입하는 그런 습관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헤리포터는 열쉬미 스스로 읽은 세대에게 삼국지를 권함은 역시 고루하다.
그 책에서 뭘 취하란 것이지? 세상은 그렇다는 것? 남자들의 세계는 그렇다는 것?

며칠째 허리가 좋지 않다. 심각한 것은 아니고 그냥 좀 좋지 않다.
일찌감치 옥돌매트에 불 넣고 초저녁 잠을 자고 나니 저녁밥 먹고 나서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언화가 구례공공도서관에서 빌려 놓은 책은 항상 머리맡에 쌓여 있기에
주섬 주섬 수면제를 찾다보니 '카오산로드'라는 책이 보인다. 제목만 봐도 뻔한 내용이다.
이런 책은 우리 같은 인생들에게 합리화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멀리하라 그랬거늘...
그래 뒤적였다. 장기여행자들에 관한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다.
다양한 연령층과 국적을 가진 여행자들. 카오산로드.
여전히 바람 처럼 살고 계실 것이라 믿는 서유진 선생이 년전에 그랬었다.
"새끼들 자라면 무조건 카오산로드에 일년 정도 보내!"
대략 한시간 정도만에 책 한권을 난독하면서 서유진 선생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책에서는 역시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둥의 새빨간 거짓말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고
자신은 지금 행복하다는 새파란 거짓말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었다.
6개월, 1년, 2년씩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이라기 보다 준거주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음이 맑아졌다.
내가 새끼들에 대해 뭔 걱정을 한단 말인가.
우리 가족을 소설의 일부 줄기로 취한 욘의 동화에서 영후로 둔갑한 상윤이가
방백하는 부분이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자신은 결정할 수 없는데 자율을 빌미로
어른들이 자신에게 결정하라고 그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랬다. 영후가 스스로 결정하라고 나는 자주 말해왔다. 하지만 사실 영후 눈에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당연히 반영될 것이고 포괄적으로 그 순환고리 속에서 아이는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지나간 일들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살아 오지 않은 아이에게 갑자기 좀 다르게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변심이다. 이제까지 처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과 다른 미래를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설정이다.
뭐 대학은 잘 모르겠고 고등학교 가기 전에 최소한 한달이라도
카오산로드건 인도건 네팔이건 아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를 원망한다면 텃밭 중 절반 주면 되겠지 뭐.
그나저나 나와 언화가 우선 카오산로드에 서야 하지 않을까.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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