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7/01/07
2007.1.7





1월 6일 토요일.
날씨는 흐리다. 눈 소식은 확인했지만 그리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 한번 정도 휘 둘러보는 것이 습관화 된 탓인지 이유가 있건 없건
오후에는 차를 몰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지면 금내리.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소문난 명당은 도로 윗쪽 금환락지라 불리는 오미리지만 금내리의 평온한
수평 구도 또한 훌륭하다. 역시 나는 수평에 익숙하다.
막힌 곳 없는 마을이라 방품림 삼아 집집마다 대숲을 두르고 있는 집이 제법 많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눈발이 날린다.
대나무 꼭대기에서부터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눈이 쌓일 어느 날을 기다리고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희망일까? 그 지경이면 일단 차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카메라를 목에 걸고 도보로 이곳까지 와야는데
읍내에서 한 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금내리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에서 빈집은 많다.
우리가 지나치며 보았던 빈집 중 가장 작은집이다.
마당 포함해서 스무평이나 될까.
살았던 흔적이랄 것도 없는 쓰러져 가는 집들이지만 누군가는 이 집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 나무의 여름은 장했을 것이다.
빈집의 대부분은 등기상의 주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시골 마을의 주택은 재산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라
자식들 역시 합의보며 팔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누가 이런 집들을 사겠는가.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간만에 하동 초입의 재첩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재첩언니는 역시 새로운 제품들을 보여주었다.
대략 60리터는 되어 보이는 비과학적 배낭이다.
뜨거운 재첩국을 들이키고 예정에 없었지만 연곡사 계곡으로 올라갔다.
눈발이 흩날리고 연곡사 계곡은 구례읍의 사정과는 다르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작년 초에 생긴 두 채의 집이다. 도시에서 내려 온 사람들은 계곡을 선호한다.
아마 저 집이 민박집이 아니라면 역시 도시에서 내려 온 사람들일 것이다.







다리 넘어 구례로 올라 오는데 눈발이 험하다. 차체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을 느낀다.
완만한 모퉁이의 꼭지점을 돌아서기 전 까지 그랬다.







뚝방길은 바람과 눈이 얌전했다.
불과 5km 아래 상황과는 달랐다.
그렇게 큰 눈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뚝방에서 하동쪽으로 하늘은 험하다.
밤에 본 뉴스에서도 순천 방면 눈이 많았다.







문척면 초입으로 왔을 때 북동쪽 하늘은 맑았고 이 작은 나라에서,
이 작은 군에서 하늘이 이렇듯 제 각각의 모습을 보이니 골 하나, 산 하나,
들판의 넓이 따위가 사람 사는 마을에 미치는 힘은 항상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구름의 이동은 빨라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좀 바뀌어 있을 것이란 예감은 한다.







요즘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좀 늦다.
자정 무렵에 밖으로 담배 피러 나가보니 눈이 소복하다.
담배 피다가 맨손으로 마흔다섯 먹은 남자가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현관 입구의 화분에서 가지를 꺽어 눈과 입도 만들어 주었다.
입의 곡선을 구현하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다.







1월 7일 일요일.
7시에 알람을 맞춰뒀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해 뜨기 전에 봉성산에 올라 읍내 눈풍경을 담을 요량이었지만
요즘은 일주일 이상 늦잠이 대세다. 좀 각성해야 할 대목이다.
일을 많이 하자! 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는
생각에는 대략 찬성하는 나로 변해간다.
늦게 일어나 문을 열고 보니 눈이 턱없이 많이 녹아버렸다.
망설이다가 점심 지나 인근으로 다시 나갔다.
읍을 벗어나자 눈은 제법 남아 있었다.







완전히 하얀 나라를 한번은 보기를 희망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이곳은 삿뽀로도 아니고 거시기푸르나 같은 이름을 가진 곳은 아니다.
강원도 같이 북쪽으로 위치한 곳도 아니다.
내가 가장 많은 눈을 본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귀자 누나 시집가던 날의
산청군에서였을 것이다. 허벅지까지 빠지면서 들판을 쏘다녔었다.
풍로로 군불에 바람을 불어 넣는 것이 재미있어 늦은 밤까지 풍로질을 했었고
하얀 눈밭에서의 전통혼례도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에 먹었던 고모집에서 만든 두부와 된장 바른 석쇠 돼지고기 맛은
아마도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당동마을이었나? 마을 이름이 정확하지 않네.
가보지 않은 마을을 가보잔 언화의 요구대로 가보지 않은 마을로 차를 몰았다.
이런 드라이브는 대략 한 지역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에 연기암 대숲의 눈도 찍고 오미리 들판의 농가도 찍고 가보지 않은 마을까지
소화하기엔 하루 해가 한정되어 있다.







차를 자꾸 멈추었다.







언화는 이 정도 눈이라도 항상 감사하단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그래 이 사람 저 사람 생각이 다르다.
모두 제 생각이 옳다고 주장한다.







제 생각대로 사는 것은 인정할만 하지만 주장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찌 아는가? 나의 삶과 당신의 삶 중 누구의 삶이 더 행복지수가 높은지.
요즘은 기존의 가치와 검증 없이 습관적으로 받아들였던 명제와 표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돌아 온 저녁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라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왜 아직 할 일이 많아야 하는가.
나는 내일 죽어도 지금 당장 꼭 이루어야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노력, 이런 낱말들을 검증 없이 받아 들였던 수십년이었을 것이다.
'성취'에 목 말라 있고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는' 탈피하고 싶다.
그러니 아홉시 뉴스 보면서 정치를 욕하면서 자식들은 구태의 전쟁터로 내 몰고 있는
없는 것들의 검증 없는 변명과 주장은 내 귀엔 잡음이다.






주장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삶을 충분히 존중한다.







차가 빠져나오니 짐작했던대로 우리밀 공장 입구다.
산동면으로 잠시 방향을 잡아 올라갔다.
수락폭포 쪽을 염두에 뒀지만 그냥 접었다.







언제나 들판 사진을 찍었던 마산면 갑산들로 돌아왔다.
항상 사진 찍었던 포인터에 뭔 포크레인 공사중이다.
뭘 만들려는 것인가.







읍내에는 명품은 아니지만 권할 만한 찐빵과 만두를 파는 조그만 분식집이 있다.
눈밭을 돌아 다닌 날 뜨거운 김이 나는 찐빵은 권하고 주장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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