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7/01/11

2007.1.11





일전의 눈이 온 다음 날, 집 옥상에서 바라 본 해지기 전의 노고단이다.
게으름 탓에 사무실 가는 길에 분홍으로 물든 흰산의 모습을 찍지 않았는데
마침 언화가 찍어 둔 모양이다.
며칠 동안 날씨가 맑았고 읍내에서 바라보는 산은 충분히 엄숙하다 할 만한
작은 경외감까지 불러 일으켰다.
히말라야의 모습은 이 모습의 백배 정도 강력하겠지. 하지만 보지 않았으니
비교할 수 없고 보기 전에는 이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다음날인 화요일이 되어서 금년 첫 손님들이 봉동리를 방문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어린 후배 부부들이다. 대략 4년 만에 들어왔나.
포괄적으로는 90년대 중반 한 시절을 관통했던 시간 속에
뭔 영상 작업들을 하겠다고 맺어진 인연들이다.
영재와 영찬.
점심 무렵에 도착해서 밥을 나누고 이리 저리 궁리 끝에 관광객 버전의
산책을 하기로 했다. 화엄사 뒷켠 연기암으로. 종주도로는 며칠째 도로가 차단된 상태다.
횡한 넓이의 LA에서 살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이곳의 산들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연기암으로 오르는 숲과 계곡엔 역시 눈이 소복하다.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이야기가 많을 법도 하지만 대략 미루어 짐작하는
스타일들이다보니 수다스럽지 않고 두런 두런 이야기들이다.
그냥 이곳을 느끼는 것.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
그렇게 숲을 느끼라고.







사는 곳은 달라도 큰 욕심 없다면 나누고 확인하는 생각은 비슷하다.
아무리 능숙해도 외국어는 외국어인 것이고
아무리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이다.
세월이 갈 수록 목소리 작은 사람이 좋다.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문화재관람료'란 명목으로
화엄사 입장료는 여전하다. 그러면 얼마인가? 두 당 3,000원이다.
결국 800원 할인되었단 소리다. 장난치나? 그래 이런 저런 괜한 시비성 질문을
하려해도 돈받는 사람들이 뭔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쇄물을 만들어
통행객들이 시비거는 항목들을 FAQ로 만들어 두었다.
뭐 물론 설득력은 전혀 없는 장관의 기자회견 같은 소리들이다.
그래 화엄사를 들어왔다.
화엄사는 날이 갈 수록 사업이 번창하는 듯 한 분위기고 그만큼 맛이 없어지는 중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정이 넘었다.
다음날 아침에 늦은 첫 끼니를 먹고 봉동리 전용 드라이브 코스를 돌아다녔다.
쌍계사 계곡 따라 의신마을 쪽도 결빙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찻집을 들렀다.
이런 곳에 있는 찻집들이란 것의 모습은
이런 곳에서 찻집 하는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책들을 진열하고 있고
그런 저런 양식화된 편안함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 이곳에 내려 온 이후 처음으로 찻집엘 온 것 같다.
이 겨울하고도 평일 낮에 다른 손님은 없는 것이니
양지바른 전면 유리창을 곁으로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일년에 4회 정도는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찻집 밖으로 쌍계사 계곡은 잔설이 빛나고 시간은 흘러간다.
후배들은 마지막 버스로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언제 볼까?
하지만 이곳과 언화의 블로그를 통해서 그들은 반대편의 어느 땅에서
우리들이 잠 든, 낮에 이곳의 소식을 볼 것이다.
하여 상황과 진행은 항상 동시이며 이곳의 호흡을 그곳에서도 같이 느낄 것이다.
그렇게 봉동리 2007년 첫 손님들은 시작되었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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