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30


조카들과 영후가 1월 28일 오후에 구례로 왔다.
겨울 산행에 대한 약속과 애들도 뭔가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기에.
영찬 이제 고 2학년이 될 것이고
영무 이제 고 1학년이 될 것이고
영후 이제 중 2학년이 될 것이다.







애들이 오면 아무래도 메뉴가 좀 신경쓰인다.
어른들 입이 아니다보니 이곳의 식당들에 대한 어른들의 열광지수보다 낮고
애들 제 각각 선호도가 다르다보니 식당에서 기준을 맞추긴 힘들다.
무엇보다 구례에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뭐 여튼 그런 브랜드네임 유명짜한
식당은 없다. 그리고 애들도 이제 나이를 좀 먹다보니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의
허망함을 알고 있는 편이다. 물론 할머니 손에서 오랫 동안 음식을 해결한 아이들은
이런 경향이 좀 빠른 듯 하다. 좋은 현상이다.
'애들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식당을 가는 일이 이제 우리집에서는 없다.

첫날 저녁 메뉴로 내가 준비한 것은 돼지 목살을 덩어리로 장만해서
오븐에 굽는 일종의 오븐 바베큐가 될 것이다. 기본 양념 겸 소스는 립바베큐 스타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레드와인, 진간장, 꿀, 흑설탕(제대로 된, 그냥 흑설탕은 백설탕 염색한 것이다.)
통후추 박살내고, 올리브오일, 마늘, 생강(생 생강이 없어 잠시 고민하다가 분말을 조금...)으로 만든 소스에
덩어리 고기를 5~6시간 재워둔다(A). 방식은 제이미 키친에서 배운 그대로 비닐에
넣어 냉장고에 넣고 이리 저리 한번씩 굴려주면 편하다.
늦은 점심으로 언화의 제대로 된 피자와 스파게티(언화의 피자와 스파게티는 일단 재료 자체에서
프렌차이즈 가짜 피지치즈와 강한 토마토맛의 가짜 소스와는 많이 다르다.)를 먹은 탓에
저녁밥은 아홉시경에 먹었다.
오븐 예열 시작한 것이 7시 40분경.
일단 덩어리 돼지고기를 후라이팬에 사면을 골고루 살짝 익힌다(B). 표면만 익혀 액기스가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한시간 이상 충분히 익혀줄 것이기 때문에 재워두었던 소스 전체를 용기에 넣고 함께 오븐에 넣는다.
소스를 고기가 모두 흡수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깊고 좁은 용기가 좋다(C).
한시간 정도 익히다가 삼등분해서 속까지 익혔다. 그리고 한덩어리씩 체포하여
썰어서 서빙하는 것이 그냥 편하다(D).
소스가 잘 되었다. 특히 이번 와인이 아주 흡족하다. 캘리포니아산이었고 영재가 방문했을때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내가 먹어봐도 빕스나 아웃붻보다 맛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육질과 소스 재료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다.
세덩어리 모두 남김 없이 사라졌다. 버섯까지(E).







다음날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월요일 등반 경로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7km 구간이다.
오르는데 대략 4시간, 하산에 2시간 30분 정도 예상된다. 좀 머물고 어쩌구하면
9시간까지 보면 되겠다. 언화는 원래 예정에 없었지만 지난 밤에 급변경.
노고단이 개방되었다는 정보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심한 눈밭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화엄사 매표소를 무사통과하고 주차장에 당도하니 화엄사 18동인들이
빗자루를 들고 무술수련 중이었다. 일합을 겨루려다가 애들이 있어 그냥
평민인척 지나쳤다.







7시 40분에 화엄사를 지났다.
대숲에는 눈이 조금 쌓여 있었고 날씨는 아침임에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좋은 날씨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산행은 날씨가 90% 좌우한다.
체력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큰조카가 원한 등산이었고 둘째 조카는 '그냥',
영후는 '별 수 없어' 따라 나섰다.
나는? 사실 겨울 산행 그렇게 반갑지 않다.
이런 경우 의무방어전인데 지난 반야봉 등반때 산아래에서 보는 산과
막상 산 위의 보행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다.
하루 전에 탐방안내소에 전화했다.
"화엄사 - 노고단 코스 가능합니까?"
"됩니다. 그러나 일부구간 허벅지까지 눈이 쌓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등산로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시암재까지 차로 가능합니까?"
"...안됩니다(너 바보냐?)..."
"사이트에서 노고단 탐방 예약이 안되는데요?"
"아, 노고단은 작년 11월부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헉(맥주)! 그걸 이제껏 몰랐다니... 요."
산행 전에 국립공원 사이트나 지리산탐방안내소에 전화해서 상황을 꼭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하루 전에. 다음날 눈으로 등산로 폐쇄되기 다반사다.







화엄사 - 노고단 구간을 올라간 적은 없다. 내려 온 적은 세번인가 있다.
마지막이 1990년 여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여름 수련회때였다.
우리는 party 개념으로 조직을 이해했다. 그 한해 전에 8명이 검거된 상황이었고
비밀리에 남원쪽 육모정에서 1박을 하고 이를테면 비상시기 조직사수에 대한
심각하고 거창한 문건들을 나누고 다음날 버스로 성삼재로 오르고 도보로 화엄사로
내려왔다. 그때도 줄창 비를 맞았다. 그리고 서울치안본부는 가족 캠핑으로 위장하고
우리들과 같은 민박집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해 서울민미련 14명이 검거되고 공판 중에
그때 우리가 한 이야기를 거의 녹취 수준으로 들을 수 있었다.







여튼 그 날 하산한 이후 이 길은 나로서는 17년만이다.
오늘수록 눈의 양은 점점 많아졌다. 오르막 각도도 점점 심각해지고 무엇보다
문제는 내리막이 없다는 점이었다. 연기암 지나서부터는 계속 2km 정도를 서서히,
고통스럽게 각도를 높여간다.
아침 눈은 밤하늘 별 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거 아나? 이곳에서 맑은 날 밤엔 별이 정말 반짝거린다는 사실.







산에서 힘들때면 항상 도달해야할 정상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전망이 확보되지 않는 계곡길이라 멀리 노고단 줄기를 염두에 둘 뿐인데
가까워진 듯 하다가도 어느 구비 돌면 멀어져 있다.
쉬는 경우가 많아진다. 끝이 나지 않는 오르막 눈길은 점점 발목을 잡고,
날아 다니는 것은 큰조카 뿐이다. 이미 저 앞서 나가고 보이지도 않는다.
가장 힘들어 하는 둘째 조카를 밀고 나는 제일 뒤에 자리를 잡았다.
영후는 언제나 처럼 지친 듯 하지만 마지막엔 싱싱할 것이고
봉동리 요가걸은 요가탓인지 잘 올라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르막 계곡길이 끝났다.
성삼재와 노고단을 잇는 산책로에 들어선 것이다.
숨이 끊어질 듯 하다. 아 C... 시암재까지 차만 올라와도 좀 쉽게 오는데 쌩으로
올라오려니 죽갔다.







나는 힘들었다. 순간적인 상황은 몇년간의 산행 중 가장 힘들었다.
조카들과 영후와 언화를 돌보고 어쩌구...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내 한 몸도 가누지 못할 지경이다. 원인이 있었다.
이 산책로에 이르기 전의 거의 막바지 휴식 순간에 홀로 등반하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차가운 막걸리를 권했다.
"아, 저 술 못하는데..."
"에이, 한잔 하세요. 훨씬 좋습니다. 힘도 나구요."
"..."
이때 느듯없이 언화가,
"한잔하고 오세요. 먼저 갈테니."
나중에 알았지만 언화는 그 남자가 커피를 권하는 줄 알았단다.
아니, 이 마누라가 그러지 않아도 거절하기 힘든 상황에 불을 붙이네.
그래 할 수 없이 반합 뚜껑의 적지 않은 막걸리 한사발을 단순에
들이킨 것이다. 시원했다. 맛도 있고. 힘도 났다. 산을 오르는 동안 막걸리는
살짝 얼어 있었고 달디 달았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나의 주량. 두시간에 맥주 작은놈으로 한병.
요즘 상윤이가 집중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문자질. '헉' 맥주로.
경상도 사람 흑맥주나 헉맥주나 같은 발음이라 해도 하루 세번씩 '헉'이란 문자를 넣고 지랄이다.
후배가 아니라 원수다.
여튼 그리고 10분 후. 막바지 오르막에서 나의 호흡은 완전히 무너졌고
아랫배에서부터 막걸리 기운이 치고 올라왔다. 한마디로 나 술취한 것이다.
그래 노고단 산책로에 도착했을 때 사람 몰골이 저 지경인 것이다.
그걸 마누라는 우습다고 사진을 계속 찍고...







둘째 조카는 눈밭에 쓰러져 눈을 먹고 있다.
쨔샤, 니가 막걸리 마셨냐!







12월의 노고단 통과 반야봉 등반 때와 눈의 정도가 달랐다.
이 겨울 구례에서 첫 해를 지나다보니 좀 알겠다. 겨울 동안 해발 900m 정도에서부터는
눈이 녹지 않는다. 그대로 계속 쌓여간다. 지리산에 이번 겨울 동안 대설이 온 적도 없는데
세차례의 눈은 그대로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 아래에서 보면 멀쩡한데
산 속은 이런 것이다. 오르막도 힘들지만 눈밭에서 막걸리에 취한 사람이 한발자욱
옮기기가 천근 무게다. 사람은 없고 혼자 사투를 벌인다.
지름길 계단길 자신없어 돌아가는 길을 힘들어하는 둘째 조카와 걷는데...
한마디로 죽갔다. 노고단 대피소 200m 남겨 두고 SOS를 쳤다.
"영찬이 내려와서 내 베낭 쫌 들고 가라해라. 죽갔다. 깨갱 오버."
사발면 5개와 물 세병, 버너와 양은냄비가 든 가벼운 베낭인데...
큰조카는 눈밭 위를 영후와 날듯이 뛰어 내려왔다.
"삼촌 왜 그러는데!"
"산행시 나의 지시를 따르라!" 는 나의 권력은 급격히 와해되었다.
그래 할 수 없었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 로 바꿨다.







노고단대피소에서 겨우 몸을 추스리고 사발면에 지난 밤에 언화가 만든 삼각김밥을 먹었다.
꿀맛이지. 없어서 못 먹지. 간혹 대피소에서 밥 해먹는 등산객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빠졌다.
"이제 고생 끝이다. 조금 만 올라가면 노고단이다. 나는 이곳에서 베이스캠프를 지키겠다."
언화가 애들을 데리고 원기회복하여 노고단으로 올라갔다.
이제부터 사진은 by  언화다.







핸드폰으로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공격조들을 지휘했다.
길을 잘 못 들었단다. 엉뚱하게 KBS 송신탑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언제 부산 아이들이 저런 눈밭을 밟겠는가.







잘 못 들어간 방향이지만 그곳도 전망대가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노고단은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이날은 차단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노고단 정상을 밟은 이가 일행 중에는 나 말고는 없었으니
그들에게 위 사진은 최선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대피소에 머물면서 커피와 뜨거운 차를 즐기고 있었다.
뭐랄까... 적막한 설국에서의 나무의자에 앉아 코끝 징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즐긴 그 한시간이 참 좋았다. 술은 다 깨었고 커피는 뜨거웠고
해발 1400m 에서 담배는 빨리 연소한다.







대피소까지 아이들은 저렇게 내려온 모양이다.
당분간 눈타령은 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미래 어느 순간 이날의 눈과 햇살이 어떤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일행들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등반대장과 함께 포우즈를 취했다.
이제 나보다 키 작은 녀석은 영후뿐이구나. 그것도 대략 2~3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사촌이니 형제들이다. 녀석들은 제법 많은 시간을 같은 집에서 살았었고
그 기억들은 이후 살아가는 동안 끈끈한 접착제로 작용할 것이다.
녀석들 모두 피곤한 입시 일정들을 앞두고 있지만 삼촌으로서 나는 그에 걸맞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함께 하고 놀아주는 것 뿐이다.
잔소리는 평소에 많이 들을 것이다. 나까지 그 대열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이날 밤, 지미 핸드릭스 연주 DVD에 큰 녀석은 뻑가는데 그러면 어른들 입장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냥 같이 지미 핸드릭스와 에릭 클랩튼을
칭송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삼촌으로서 충고도 한다. "BB킹을 우습게 보지 마라."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녀석들과 코케인 바에 앉아 맥주와 음악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점심 무렵에 아이들은 돌아갔다.
일치하는 메뉴 돼지국밥으로 늦은 아점을 먹고.
구례에서 버스를 태워도 되지만 하동까지 데려다 주었다.
선택하라는 나의 질문에 큰 녀석이 "삼촌 힘든데 구례에서 타지요 뭐." 라고 해서
하동까지 데려다 주었다. 사운드가든과 너바나를 크게 틀어두고 861번 국도를 달려 내려갔다.
녀석들의 질문이 귓전에 남는다.
"매일 이렇게 먹어요?"
애나 어른이나 간혹 하는 근심스러운 표정의 같은 질문.
"아니, 손님들 올 때만 그렇지."
녀석들은 안심하는 표정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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