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0


지난 금요일에 부산으로 가서 20일 오후에 구례로 돌아오다.
언제나 처럼의 명절 일정을 보내고 몇몇 사람들을 만나고
낮바다도 보고 밤바다도 보다.
입고 간 옷은 겨울인데 부산은 봄이라 반팔과 외투 사이에서 방황하다.
그러나 세월은 가고 삶의 표피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 들어가면
모두 아린 생살을 숨기고 있어 그 애틋함이 좋더라.







내려가는 길에 돌아오는 861번 도로를 예상은 했지만
역시 꽃은 막 시작하고 있었다.
'시작되다'와 '시작하다' 라는 표현 사이에서 주저했다.
80년대를 막 지나쳐 온 어느 시기에 '되다' 보다 '하다'를,
만연체 보다 단문을, 낮춤말 보다는 높임말을 사용해서
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는데, 또 그렇게 의식적인
노력을 했었는데 글쓰기의 의무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그런 강박이
없어 좋았다. 요구에 의한 소용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런 '막글'에서
'문장강화'와 '바른 글쓰기' 같은 범주의 고민이 없어 좋은데
오늘 제목을 '시작되다'로 했다가 '시작하다'로 바꾸었다가
'시작되다 → 시작하다'로 재차 바꾸었다.
꽃은 세상만물의 협조와 조응으로 '되는' 것인지,
또는 그 모든 만물은 제 각각 본능적인 '하다'의 부인할 수 없는
주체로 볼 것인지가 느닷없이 의문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런 판가름은 부질없고 사람스럽다.







하여,
섬진강변에는 마침 매화가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농원 쪽으로 오른다면 어쩌면 만개해 있는 몇 그루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고 2주일은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나오는 것은 힘들어도 이틀에 한번은 나와야 이 변화를 어느 정도는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산수유도 시작할 것인데
몸은 하나고, 같은 시간대에 두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안타까움 역시 사람스럽다.
매화는 오븐 속의 팝콘 처럼 슬로우모우션으로 '터지고' 있었다.







구례로 돌아오는 이번 길에 장모님도 함께 했다.
부산의 두 노모가 모두 칠순을 맞이했다.
길을 오르다 차를 멈추고 가장 가까이에서 화사한 매화나무 아래 모녀는 앉았다.
이틀 전, 정월 초 하루 밤.
어머니는 막내인 나 이후로 가졌었던 아이를 낳을 걸 그랬다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이 이 만큼 흐르고 보니 곁에 두고 이야기할 딸이 하나 쯤은 아쉬우신 모양이다.
명절 아침에 누나는 언제나 처럼 캐나다에서 전화를 했었다.
느닷없이 매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정도 투자하면 3월달 먹을거리를 해결할 것 같은데
피기 시작하는 꽃을 보니 잿밥과 염불 구분이 흐릿하고 마음이 급하다.
먹을거리 만들 시간은 밤으로 밀어 두고 낮에는 아무래도
돌아서면 변하는 이 산과 강과 들을 쏘다녀야겠다.
매화는 제 스스로 시작하였고
나 역시 제 스스로 놀아보아야겠다.
환장할 봄에 세상의 모든 母女들은 봄처녀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55년 전 그 봄, 그 마음 자리에 피었던 꽃 보다
지금 피어나는 꽃이 더 아름답지 못 할 이유가 없다.
마땅한 곳에서
마땅한 봄을 맞이하고
마땅한 살이를...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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