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3


장모님을 하동터미널에서 배웅했다.
배웅도 목적이지만 하루가 다른 861번 도로를 끼고 꽃구경 하는 것도 목적이다.







지난 화요일에 이 길을 오를 때 보다 꽃은 더 피었다.
하지만 아직은 만개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압도적 양감'이다.
나는 항상 풍경에서 압도적 양감을 선호했다.
많은 바다
많은 나무
많은 산
많은 꽃
많은 바람
아직은 아니다.







홍매다.
자세히 살펴보면 홍매, 백매, 청매 모두 준비되어 있다.
매화를 실견할 일이 거의 없었다.
년전의 오키나와 여행에서 지천으로 핀 매화는 좀 뜻밖이었다.
그곳은 홍매가 많았다.
오키나와에서의 10여일은 주로 흐리고 비가 왔고 심리적으로 다운 상태였지만
이제 간혹 생각난다. 나하항의 햇살과 집들 사이의 가족묘와 남녘의 이미지들.
그리고 율도국과 홍길동에 대한 상상들.






















죽은자도 봄을 맞이하고 꽃을 토한다.
장모님은 이곳에서의 며칠 동안 논과 밭, 길가를 막론하고 자리하고 있는 무덤들을 신기해하셨다.
죽음과 삶에 대해 극명한 논리적 구분을 하는 동물은 사람이 유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세상만물이 그러한 원리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한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 세상일 것이다.
죽음의 최종적 형식에 관해 요 며칠 글을 읽다 생각했다.
화장해서 뿌리는 것을 별 생각없이 기본적인 마감으로 생각했는데
전설적인 지리산人 우천宇天 허만수許萬壽 선생처럼 죽을 무렵에 칠선계곡으로 들어가서
사라져버린 소멸적인 자연死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나도 그렇게 한다면 나에 대한 풍문이 나돌 것이다.
"칠선계곡 어딘가에서 매일 육회 먹고 불로장생 하고 있다더라."







땅의 위로 이런 표현을 하기까지 땅 속에서부터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어제 밤엔 겨울을 견딘 밭의 상추를 따 먹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참 잔인한 짓이란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상추의 운명이고 그것이 나의 역할이다.







861번 따라 오르다 예정에 없었던 좌회전을 했다.
한번은 가볼 것이라 생각한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으로 올랐다.
갑자기 급경사를 오르니 차가 투덜거린다.
꽃은 이제 시작하려는데 주차장엔 평일임에도 10여대의 차가 있었다.







농원입구에 동백이 피었다.
엄청난 양의 꽃망울을 가진 큰 동백나무들이 많았는데 아직 피지는 않았다.
그 꽃이 다 피면 동백나무는 쓰러질 것 같았다.







그 유명한 청매실농원의 장독에서 누구나 찍을 수밖에 없는 포커스로 몇 장 찍다.
나는 강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다. 실제 그러하다.
그래서 보지 않은 영화, 읽지 않은 책, 듣지 않은 음악에 대해 내 맘대로 평하는 짓을 잘한다.
이곳 청매실농원 또한 막연하게 그렇고 그런, 유명해서 괜히 오고 싶지 않았던 장소였다.
실견하고 배움이 많았다. 배움이라기 보다 참고에 가까울 것이다.
하나의 농원이 멍청한 지자체 하나 보다 더 탁월한 기획력과 완결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형과 함께 지리산닷컴을 만들어 나갈 때 참고해야 할 지점이다.
호불호를 떠나 시각화와 상품화가 제대로 진행되었다.
다음에 다시 올 것이다. 상품매장의 상품 종류와 디자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성공 요인은 'open'인 것 같다.
이를테면 copyleft 기반의 right를 구사하는 문제다.
이왕 상상하는 단계이니 스케일을 좀 더 빅사이즈로 설정해도 좋을 듯 했다.







조성된 농원 산책로 따라 걷다보면 잘 생긴 대숲을 만난다.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약간 강하게 맞선 자세의 낮은 산에 농원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광양시에 속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섬진강가일 뿐이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 개념이 내가 진행해야 할 일의 행정구역이다.












모니터용 사진이니 내가 카메라를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대숲은 기어코
내 카메라를 세운다. 잘 생긴 대숲이다.

















대숲을 좋아한다.
지난 밤에 읽은 어떤 이의 집은 3000평이었다.
대숲을 배경으로 많은 과실수를 심었었다.
나무와 땅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한곳에 고정하고 정착하기 보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일 알 수 있나.







설정형의 초가는 취향은 아니지만 영화촬영 장소로 활용되고 그 이력은 다시
이 초가집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킨다.







항상 나무가지가 좋았다.
아직 적당한 포커싱을 할 위치를 잡지 못했다.
가지의 상흔 앞에서 외소해지는 나를 종종 느낀다.
아침이 좋을 것이다.







매화나무 아래 수북한 저 풀의 이름을 모르겠다. 아주 강하다. 생김과 색 모두.
가지는 앙상하지만 완강하고 풀은 짙고 흙은 존재감이 뚜렸하다.







사진을 찍으려니 차를 너무 자주 세워야겠기에 그냥 달렸다.
아무래도 도보로 이 16km를 종주해야 차분히 그 모습들을 잡아낼 것 같다.
861번 도로 곁의 몇몇 마을은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조만간 저 마을들도 방문해보자.
바람이 강하다. 황사를 밀어낼 만큼.
무엇 하나 제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는구나.
나도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금년 봄에 일하기 힘들겠다.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