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8


내 편한 시간에 성묘를 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정월달에 인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늘 아침에 길을 나섰다.
출발할 때 부터 사실 작정을 했다. 오늘 길은 남원 넘어 함양-산청-산소
순서의 길을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이 아니라 진주-하동-구례로 올라오는,
그러니까 지리산을 한 덩어리로 보면 지리산의 서편인 구례에서 출발하여
북, 동, 남 지리산의 외곽을 완전히 360도 돌아오는 방식으로.







오전 9시 넘어 출발했다. 예정 보다 2시간 출발이 늦었지만 별 관계없다.
구례에서 남원까지 19번 국도, 남원에서 88로 올려 함양까지 가는 방식으로 정했다.
남원, 함양간 국도는 꼬불꼬불에 오르막이라 거리에 비해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다.
여튼 88에서 함양I.C로 들어와서 진주 방면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잡고
산청군 원지 다리즈음에서 산소가 있는 곳으로 꼬부라지면 되는 것이다.
출발할때 체크하고 돌아와서 체크해보니 대략 223km 달렸다.
결국 지리산 전체를 서에서 북, 동, 남, 북진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거리는 223km 정도인 모양이다.







남원 빠져나와서 88로 올리고 바로 지리산휴게소로 들어갔다.
오뎅 하나 먹고 담배도 넣어줘야 한다.
TV에서 본 적이 있는 그 스님과 그 스님의 아이들이 마침 지리산휴게소에 당도했다.
저 인생의 선택을 누가했는가에 대해 잠시 차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뭐 결국 그것이 제 각각 갈 길인 모양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동자승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잠시 달리다가 88을 버리고 함양으로 들어와 이제 막 산청군으로 들어설 직전이다.
지리산은 구례군, 남원군,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이 다섯군을 거느리고 있는 큰산이다.
그 다섯개 군에서 진입할 수 있는 15개 정도의 산행 루트는 맛이 모두 다르고 나는 그 중에
1/3도 맛보지 못했다. 칠선계곡 입구라는 이정표를 지나며 가슴이 두둥한다.







나의 본적지는 경남 산청이니 지리산 동편이다.
중산리쪽이 가깝고 산소도 포괄적으로는 지리산 동쪽 줄기 끝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의 연원도 지리산과 뭔가를 맺고 있는 것이다.
산청으로 향할 때 지리산의 동쪽 사면이 버티고 있다.







경호강이다. 함양에서 산청을 지나 진주 남강으로 이어지고 그 물은 사천만으로
흘러들어 남해 바다에서 합수된다. 사진은 '경호강휴게소' 라는 국도변의 작은 휴게소에서의
전망이다. 어릴 때는 이 강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금 더 내려가자 나의 목적지 초입에 해당하는 원지다리가 나온다.
왼편의 산은 측백산이다.







원지에 차를 세우고 언화는 농협으로 가고 나는 담배 한대 핀다.
이정표에 보이는 '생비량' 쪽으로 가면 돌아가신 고모님의 집이 있었다.
농협마트에서 소주 두어병과 건어물을 산다. 그리고 아주머니 드릴 담배 한 보루.







아랫 쪽의 아버님과 조부, 조모, 증조 묘를 돌아보고 산 위의 두 큰아버님 산소까지
돌아보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미션을 완수하듯 후다닥 돌고 산을 내려와 교동 아주머니댁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온 딸, 손부, 증손까지 보내고 며칠 피붙이 보살핀다고
지친 몸을 쉬고 계셨다.
"점심 묵고 가라. 나도 안묵었다."







서른 초반에 먼저 간 유일했던 아들녀석의 딸은 이제 중학생이 되는 모양이다.
해마다 달력을 만들어 보낸다. 지 아비를 많이 닮았다.
이 집 사람들이 모두 훤칠했었다.
아비에 대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한살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으니.
아비. 불교에서는 '아비'를 '아비규환'의 줄임으로 사용한다.
물론 우리가 소리내어 발음하는 그 '아비'와 맥락이 다르지만 간혹 '그 아비'와 '그 아비'의
절묘한 뉘앙스를 느낀다. 부모자식간의 또 다른 이면은 아비규환이다.







교동에서도 솜씨 좋기로 소문난 아주머니의 손으로 점심을 차렸다.
사실 이 밥상을 바라고 온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어서셨지만 솜씨는 여전하다.
밥 두 그릇 비웠다.

"밥상은 머하러 찍노."
"ㅎ"
"교동도 외지 사람이 더 많다. 시골 사니 좋나?"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3번 국도를 타고 진주 초입에서 촉석루 쪽으로 방향을 잡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2번국도 이정표를 본다. 그래도 소도시라 운전으로 초행길이지만 길 찾기는 쉽다.
진주에 머문지 오래 되었다. 항상 지나치기만 했는데 금년에는 중앙시장 제일식당 육회비빔밥이나
남강 장어구이 한번 챙겨 먹고 진주시내 감상도 간만에 해 볼 일이다.
제법 많은 기억을 가진 도시지만 이제 그 시절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 없다.
가을 산소길에 하까.







2번 국도로 들어섰다. 이제 앞으로만 가면 된다.
하동에 당도하면 내 나와바리고 익숙한 길이다.
이정표의 수곡은 하우스딸기가 유명하다. 이제 겨울 하우스딸기는 어느 고장이나
하는 돈벌이지만.







잠시 사천시 구간을 스쳐 하동군으로 들어선다.
지리산 동편은 꽃은 많지 않았다.
하동으로 들어서자 길은 선입견인지 표정을 달리한다.
이제 백두대간, 지리산의 남쪽 사면 꼬리 부분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다.







중간 빈들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운다.
구례나, 산청이나 하동이나 퇴비는 마을마다, 밭마다 쌓여 있고
땅은 갈무리하고 일손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밭도 이제 숨결 한번 불어 넣어야겠다.
추위 한번 지나가고 나면 시작할 요량이다.







하동읍 지나 다리건너 광양쪽 861번에 몸은 존재했고 꽃은 지난 일요일보다 더 피었다.
차를 세우고 만개한 매화나무들을 찍지는 않았다.
이틀 정도 있다가 촬영을 할 생각이다.
도로변으로는 꽃이 만발하고 비탈쪽 농원들은 이제 시작하려는 참이다.







제법 구례방면으로 올라 온 지점인데 이곳까지 매화가 시작이니
아마도 도로변은 다음주, 비탈쪽 농원들은 그 다음주에 매화가 절정일 듯 하다.







평일임에도 861번 도로는 차들이 보였고 주말에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뻔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꽃 지고 열매 맺는 6월의 돈다발이 만개한 진짜 매화꽃일 것이다.
청매실농원이라는 소박한 출발과 드라마 허준이라는 코드가 시기와 일치하면서
매화는 돈이 된 것이다. 오늘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지리산형에게 들었다.
매사 때가 있고 운이 있다.
분명한 것은 운명적으로 다가서면 된다.
자신의 운명을 찾는 것, 받아들이는 것.
짧지 않은 하루 여행이었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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