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15





현관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보이는 개.
이름도 모른다. 언화는 간혹 남은 고기를 주기도 하고 영후는
구례에 오면 항상 이 개와 인사하기 위해 명랑다방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았다.
언화 이야기로는 8마리란다. 엄청나게도 낳았다.
지금은 6마리 보인다. 주인장이 언화에게 '한마리 드릴까요?' 라고 했다는데
역시 우리가 사는 조건에서 개는 글쎄요다. 조건 뿐만 아니라 식물이 아닌
생명을 집 안에 키우는 문제에 대해 나는 여전히 부정적이거나 탐탁치 않다.
개. 좋아한다. 먹는 방식으로서만 좋아할 것이란 예단은 하지 마시라.
내가 막상 고기로서 개를 먹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다.
고 2학년 무렵까지 집에서 개를 키웠다. 8년을 키웠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쨌든 헤어져야는데 그 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츄바카.
이곳을 계속 보는 사람들은 지난 늦은 가을 봉동리키친에 잠시 머문 강아지를 기억할 것이다.
죽었다.
봉동리키친에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옆집으로 정주처를 옮겼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전에 언화가 빵들고 놀러가서 보이지 않는 츄바카 근황을 물었다.
원래 친정집으로 데리고 갈 것이란 계획을 이야기했었기에.
그러나 마을 아래 모모한 가게 주인 아들이 강아지를 너무 원해서 다시
츄바카의 집은 바뀌었다. 츄바카를 너무 사랑한 이 소년.
소년은 생일날 모은 돈으로 츄바카를 위한 커다란 개껌을 샀다.
그리고 츄바카의 머리 위로 기분 좋게 던졌다. 가지고 놀아보라고.
그 개껌에 정수리를 맞아 츄바카는 죽었다고 한다.
운전 중에 언화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잠시 멍했다.
겨울 길목, 거리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녀석을 '거두어 준' 내 행동은
그 당시에도 지금도 과연 현명한 것이었나 하는 가늠을 한다.
답은 없다. 생각의 갈래만 있을 뿐이다.
며칠 전에 다시 사무실 앞마당에 비실거리는 집 나온 개가 보이길래 사납게 몰아내었다.

어제 아침에 나는 상사마을에 있었고 우연히 월성정육점 젋은 사장님이
역시 나와 안면 있는 상사마을 이장님이 키우던 소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금요일은 월성정육점 '소작업' 하는 날이다.
어제 저녁 메뉴는 소불고기였다. 전통적인 방식의. 맛있게 먹었다.
간만에 먹었다. 불현듯 메뉴가 소불고기였던 것은 다음 주에 나는 월성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끌려 가는 소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어' 류의
이유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이 키운 소의 살을 내 입으로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먹었다?

로드킬road-kil.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차 몰고 나가면 꼭 목격하게 되는 길거리에서의 죽음.
이곳 19번 국도는 어느 조사결과의 표현에 의하면 야생동물에겐 '죽음의 도로'다.

"조사 결과, 지리산을 두른 전체 도로(320㎞)의 절반에 못 미치는
4개 도로(88고속도로, 19번 강변·산업도로)에서 한 해 평균 2308마리씩,
모두 5769마리의 야생동물이 숨졌다.
포유류 1792마리, 양서류 1604마리, 조류 1329마리, 파충류 970마리 등 순이었다."

도로 위에서 질주하는 차에 의한 죽음만 로드킬인가.
사실 개나 소에게 있어 인간은 하나의 환경에 불과하다.
개인의 철학과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 자체로 타 생명에게 '악의적 존재'인 인간과
공존하다가, 그 카테고리 속에서 죽어간 모든 생명의 죽음은 로드킬이다.
그래서 나는?
뭐 때로 이런 문제로 생각 따위나 하겠지.
karma. 깨친 인간들도 답이 없어 고민 끝에 만들어 낸 합리화의 방편일 것이다.
뭐 그렇단 이야기다 츄바카야.
별 다른 표현이 없네, 미안하다.


4dr@naver.com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