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7/03/18

2007.3.18


구례와 곡성 장날은 불행하게도 한날이다.
끝자리 3일과 8일.
곡성장을 우연히 지나치기만 했는데 일요일인 오늘은 곡성장 구경을 하고
구례장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곡성 들어서면 바로 장터가 보인다. 휘 돌아서 어디다 주차할까 하다가
가장 안전한 주차장 곡성경찰서에 주차시켰다.
경찰서 나오는데 순돌이 처럼 생긴 뽀송한 순경이 나를 보고 입을 열려고
하길래 선수를 쳤다.

"장터가 어딥니까?"
"저기@#%^*&*)(**)*."
"주차 좀 해도 되죠."
"...-,.-..."
"감사합니다. 그럼 노세요오~"

곡성장에는 무엇이 있을까.







장터에는 장국밥이 있기 마련.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다가 점심 시간 전인데 사람들로 가득한
국밥집에 엉덩이를 정착했다.
주인장은 연신 순대를 삶고 있다. 오리지날리티가 뚝뚝 흐르는 피순대다.
왼쪽 손목의 금장 시계와 가는 체크무늬 점퍼로 봐서 영감은 차분한 스타일인 듯 하다.
순대 삶는 김과 국밥 가마솥의 연기로 좁은 골목과 노천에 가까운 가게는
굉장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골목길 탁자는 일전에 KBS에 본 '호곡나루 사람들'의 호곡사람들이
곡성장에 와서 맛나게 국밥을 드시던 바로 그 의자라는 확신형 데자뷰가 온다.







이 간판도 없는 장거리 순대국밥은 어쩌면 내 인생의 순대'꾹'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피순대국이 상쾌하다는 느낌을 준다.
굵었다가 가늘다가 때로 옆구리 터진 순대는 신선하다.
염통과 내장도 훈늉하다. 아, 고통스러운 지점이다.
앞으로 이 순대'꾹'을 먹기 위해 구례장을 버리고 왕복 56km 길을 와야한단 말인가.
왜 구례와 곡성은 같은 날 장이란 말인가.
내가 이 집에서만 국밥을 먹는다면 구례장의 국밥들은 귀밑머리 하얗게
어느날 재로 내려 앉을 것 아닌가.
3일과 8일로 나누어 균등히 해야할 일이다.







가족으로 보인다.
아들은 썰고 아버지는 순대를 삶는다.
장날만 한다. 삼천원이다.
삼천원은 장거리국밥의 공시지가인 모양이다.
오, 불쌍한 서울 사람들.
장터에는 두어개의 팥국수집이 보이고 두어개의 국밥집도 보인다.
개인적인 느낌은 구례장보다 곡성장의 향이 짙다.
낡은 함석과 슬라브지붕 그대로의 옛장터에 쓰러져 가는 그 모습과
닮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이를테면 장거리 풍경 사진을 찍는다면
양식화된 구례장보다는 곡성장이 유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상이 가능한 환경 속의 사람들은 조금 더 삶이 피곤한 얼굴이다.
역시 나는 이곳에서 여전히 방외方外다.
도시에서는 벗어나기 위한 방외方外를 지향했지만 이곳에서 내가 거처할 곳은
방내方內여야 할 것이다.
과연 세월이 흐른다고 이 외피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정육점이라기 보다 푸줏간이란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은 고기집들은
냉장 상태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고기를 내어 놓고 오늘 중에 결판을 볼 모양이다.
곡성장은 온전히 '그대로'인 것들의 포스가 강한 곳이고
채소장거리엔 봄이 완연했다. 묘목을 잠시 바라보았지만
내 땅이 없으니 접어야 할 마음이다.
조금 전에 산수유마을 점검 갔다가 중간에 되돌아 왔다.
이 탁한 날씨에 차가 그렇게 밀려서야... ㅎ.
매화와 산수유로 19번과 17번, 18번, 861번 도로는 정체중이었다.

가늠은 하고 있었지만 설날 이후로 나는 단 하루도 밥벌어 먹는 노동을 하지 않았다.
오늘이 정월 그믐날이다. 한달이 훠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났던 사람이 이렇게 태만서생怠慢書生으로
변할 수 있는 것도 재밌는 현상이다.
언화는 구례장으로 돌아와서 몇 가지 씨앗을 샀다.
내일은 간만에 사무실 청소도 하고 밭을 돌보는 것으로 일을 할 채비를 해야겠다.
한달 참 잘 놀았다. 텃밭 가꾸고 몸 움직이는 일도 금년부터 내 밥벌이 노가다 시간으로
포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거리 벗어나 경찰서쪽으로 걸어오다가 낡은 집을 본다.
꼭 사진을 찍고 싶게 생겼다.
생긴 모습이 옛 극장자리인 듯 하다. 곡성에 극장이 있었을까?
북적인다해도 어차피 한산한 장거리 보다 더 한산한 곡성읍내 길을
가로 질러 한 사내가 지나가고 나는 낡은 집을 바라본다.
언듯 초라한 큰 글쟁이 김수영이 스쳐가고 난데없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일본에서 살다가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작은아버님이 건너편에 서 있다.
내가 그이를 많이 닮았다는 말씀을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연고는 없고 인연만 있는 곡성읍내 낡은집 앞에서 60년 전 어느 봄날,
극장문을 열고 나와 햇볕 아래 담배 한대 피워 물고 저기 저 길로
뒷모습으로 걸어가는 작은아버님이 보인다.
옆구리에는 일본어판 자본론을 끼고 있다.
환청인듯 그때 바람소리도 들리지만 그이의 생각을 확인할
사람 한 분도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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