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27


여전히 흐릴 뿐만 아니라 비 까지 간간히 뿌린다.
말은 별로 필요없을 듯 하다(하지만 늦은 밤에 말을 좀 추가했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글을 만들 시간이 없다.
2시간 후면 고속버스를 타야한다.
위치 설명하고 아래로 주욱 내리겠다.
자꾸 사진 사이즈가 커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보고 있는 순간을 좀 더 실감나게 보여주려니 욕심이 생긴다.

우선 하동에서 화개로 올라오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구간이 하동 - 화개 10km 구간 중 벚꽃이 가장 풍성해 보인다.
차량이 많았지만 다시 용감하게 주차하고,
몸만 뛰어 들었다가 도망 나오기를 반복했다.
100여미터 도로를 오가며 찍은 사진들이라 중복되지만 그대로 나열한다.
오늘이 이 길은 절정이 아닌가 한다.
물론 나는 그 순간을 알지는 못한다. 이전에 내가 본 다른 사람이 찍은
이 길의 만개 모습은 오늘 내가 찍은 것 보다 더 화려했다.
하지만 꽃도 해년마다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밤이나 내일 중으로 비는 올 것이고 그러면 꽃잎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정오 무렵의 모습이다.












































그리고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이동했다.
아래 사진들은 정오 넘기고 오후 1시 사이 정도까지 찍었다.
중복되지만 역시 나열한다. 어제 사진과 위치가 많이 중복되는데
귀찮지만 새창 열기로 다른 화면을 하나 더 띄워 놓고
어제의 개화 상태와 비교해서 보시면 이곳의 하루 하루가
어떻게 급격하게 변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점묘화 같은 느낌은 조작이 아니다.
자정을 넘긴 이 시간, 나는 구례가 아닌 타지에서 제법 해상도 높은 LCD화면으로
다시 사진을 보고 글을 수정하고 있는데 지금 보고 있는 모니터로는
확연하게 조작인 것 처럼 보인다. 마치 포토샵에서 수채화 필터 한방 때린 것 처럼
보이는데 오늘 사진은 약한 샤픈 한번과 명도 조절 한번이 보정의 전부다.
쌍계사 길에서는 ISO를 100으로 두었다. 일상적으로는 200으로 두는데
하늘이 많이 어두웠지만 어느 정도 빛을 확보하려니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도보 중이고 마음이 급해서 좀 힘들었다.
어쩌면 아주 맑은 날은 꽃의 밝음이 화이트를 다 먹어 버려 막상 화이트 컬러가
다 날아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어두운 하늘이 꽃무더기를
구분지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는 화요일 늦은 오후부터 구례에 없다. 수요일 늦은 밤에나 도착할 것이다.
그래 오늘 사진을 찍는데 마음이 급하고 아쉬웠다.
바람이 불지 않고 오늘밤 비가 장하지 않다면 어쩌면 내일 이 길이 절정일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한가지 반성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너무 절정만을 노리고 기다리는 것은 욕심이라는 사실이다.
무조건 만족하고 감사하다.


























































나무 가지가 늘어진 장면에서 나는 수묵화 구도를 생각한다.
때로 수묵화 구도의 절반은 파격에 핵심이 있다.
대상이 압도적으로 한쪽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머지 무게의 추는 여백과 낙관이 감당한다.
몇 년 전에 국립박물관이었나 덕수궁미술관이었나에서 김홍도 탄신 300주년(정확하지 않다.)
전시회를 했다.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입장했고 내 평생에
그렇게 많은 김홍도 작품을 마주할 기회가 없을 것이 확실한 전시회였던터라
눈알이 빠져라 집중해서 보았다. 김홍도는 대중적으로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그의 산수화는 정말 탁월하다. 그려 넣은 대상은 여백을 위한 장식이었다.
대상은 여백을 위한 묘사였다는 아이러니가 그의 산수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발한 꽃은 어쩌면 여백이다.















































































이 위치 30m 정도 구간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는 사진을 찍기에 자세가 불안정해진다.
수평감각 만큼은 제법 한다는 잘난채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가드레일에 몸을 기대고 허리를 굽히고 사진을 찍는다.
찍고 난 후 컴퓨터에서 수평이나 수직으로 맞추어 보니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사선의 불안정한 포커스, 찍었을 당시
나의 시점 그대로가 느낌이 정확했다.
하여 나의 다른 사진과 다르게 이 장면들은 수평을 잡지 않았다.


























































십리벚꽃길 초입에서 유니폼 같은 검정 옷을 입은 남자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업무차 왔다가 우연히 이 장면을 마주친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눈물겨웠다. 밥벌어 먹는다고 수고가 많소.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중생들에겐 불가능하다.
때로 간음하고 횡령하고 타인을 속였던 하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잠자는 자식들 얼굴을 한번 정도 바라볼까.
그리고 큰 간음과 횡령과 거짓이 뉴스를 장식하면 분노한다.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고 세상이 가증스러울 때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태일 것이다.
그런 상태는 '때'와 '공간'에 '존재'를 놓을 수 있는 그 어떤 결단이
아니라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은 지금 계좌의 잔고와 이번달 카드대금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길에서 만나지는 무수한 관광버스의 메들리트롯트와 불륜으로 보이는
남녀들은 하나 같이 함박웃음이다. 트롯트와 옆자리 사람 때문에
벌어진 함박웃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의 얼굴은 비어空있다.
그것이 보인다.























그리고 쌍계사길을 빠져나왔다.
861번으로 올려 문척쪽으로 타고 구례로 올라왔다.







문척길의 벚나무들은 역시 아직 어리다.
이 정도 풍경을 처음 보았다면 '와!' 하겠지만 쌍계사길을 보고 오는 길에
만난 풍경은 '30년만 더 기다리면 장관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30년. 기다리지 뭐.

그리고 마지막 점검 코스인 사성암 아래로 향했다.





















사성암 아랫길도 생각보다 많이 피어 있었다.
이곳은 짧지만 강을 아주 낮고 가까이 두고 벚꽃을 즐길 수 있는 지점이다.
조명을 설치한다고 분주했다. 아마도 이번 주말에 밤벚꽃놀이를 할 모양이다.
이곳은 목요일에 집중적으로 다루겠다.
제발 목요일까지 존재하고 기다려주면 고맙겠다.
집으로 올라오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보면 언제나 묻는 말씀을 오늘도 던진다.

"어데 갔다가 오요?"
"쌍계사 아래 꽃구경하고 옵니다."
"꽃이 피었는가요?"
"만발했습니다. 사성암 아래도 많이 피었습니다. 구경가시지요 왜."
"하이고 누가 델다 줘야지."

꽃은 피지만 이곳에 산다고 모두가 보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살건 서울에 살건 뉴욕에 살건 동경에 살건
사람 사는 이치는 같은 것이라 꽃 보다 존재다.
인구 3만명 좀 넘어 사는, 차로 19번 국도를 달리면 40분이면
구례의 남에서 북은 끝이 난다. 이 좁은 면적에서 한달에 기름값
30만원 날려가며 중뿔나게 싸돌아 다니는 것은 우리집 뿐인 듯 하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철없는 짓인지 청복淸福 이라는 신기루를 쫓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는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는 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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