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2


토요일 오후부터 사진이고 뭐고 대략 누워 있었다.
날씨는 추웠고 비 까지 뿌리고 그 와중에도 황사는 완연했다.
잠시 비 그친 틈에 토란을 심었다. 생각보다 많이 심었고
수확량을 가늠하지 못한다.
해가 지고 사성암 아래에서의 '구례군' 벚꽃축제에 가야한다는
생각만 있었지 막상 나가지는 않았다. 약간의 캥김은 있었지만
이런 날씨에 행사는 조질 것이란 것은 뻔했다.
밤 늦게 영후에게 전화했다. 복국 먹고 왔단다.
어린 놈이 뭔 복국이냐라고 하니까 복국맛을 안단다.
하긴 나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복국을 먹었었지.
이른 새벽 알딸딸했던 그 첫맛.
일요일. 이곳도 황사는 심했다.
늦은 오전에 문밖으로 담배 피러 나섰다가 황망히 들어왔다.
코 앞의 봉성산도 가물한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채널 가지고 놀다가 먹다가 졸다가 그렇게 보냈다.
일요일 밤이면 떨어져 살고 있는 식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








2007.3.25




2007.3.27




2007.3.29








2007.3.27




2007.3.29


31일 새벽, 이 지점에서 사진은 실패했다.
살펴보니 29일과 31일의 꽃 상황은 큰 차이가 없었다.
29일에서 31일 사이에 만개 상황을 유지했고 이후는 내리막일 것 같다.
남들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광경을 일주일 동안 감상했지만
뭔가 미진한 기분이다. 어쩌면 나는 온전히 그 상황을 즐긴 적이 없다.
사진으로만 존재하고 나는 꽃그늘 아래에서 제대로 그 정취를 감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온전하다', '온전하지 않다'는 판단 기준을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다만 1년 365일 중에서 5일 정도 절정의 순간이 아쉬운 것인지 모른다.
산수를 잠시 해보면 내가 이런 광경을 몇 번 볼 수 있을까.
나에게 남은 봄이 몇번이냐는 산수일 것이고 내 수명을 예측할 수 없지만
오감이 감지할 수 있는 봄은 분명 서른번이면 다행일 것이다.
그 보다 적을 수도 있고 그 보다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횟수보다 턱없이 적은 것이다.








2007.3.26




2007.3.27




2007.3.29




2007.3.31


4월로 넘어 선 월요일 아침에도 황사는 심했다.
이틀 만에 본 사무실 앞의 차 꼬락서니는 누런 먼지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순천으로 갔다. 이 황사에 뭔 꽃구경이 가능할까.
영화 구경하러 갔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이른바 조조는 여전히 할인되고 있었고 첫 상영 시간은 대략 10여명이
스크린을 나누어 먹었다. 간만에 스크린을 본다.
간만에 스크린을 보면 대략 영화에 대한 평가는 힘들다. 말 그대로 스크린이 좋은 것이다.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오기 전에 '영화는?' 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시골의 조건에 대해 생각했었다.
역시 우려했던 그대로 작년에 내려 온 이후 오늘까지 우리가 극장을 찾은 것은 오늘로 두번째다.
횟수는 우려했던 그대로였지만 갈망은 우려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지난 겨울 무렵에서부터야 우리는 DVD를 간혹 빌려보기 시작했고
일상적으로 영화다, 비디오다 뭐 그런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낮 동안 生자연다큐멘터리를 매일 보아서 그런 모양이다, 라고 혼자 생각한다.
영화건 풍경이건 여튼 그것은 시각적 배고픔을 채워 넣는 것인데
눈으로 입력하고 뇌에서 감응, 반응하고 이곳에서 출력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한 모양이다.








2007.3.26




2007.3.27




2007.3.29




2007.3.31


간혹 내가 이곳에서 '유혹'한다는 농진반반의 談을 듣는다.
그런가. 그저 있는 것 보여주었을 뿐인데. 그러나 그런 주장 아닌 주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나의 생각은 누구를 자극하고 유혹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가까운 몇몇에게는 농진반반으로 '내려와라' 라고 던지기도 했지만
그것의 진정성은 약하다. 그 동안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국내에 사는 사람과
국외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러면 나는 약간 정색하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며 잘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낸다. 그것이 나의 본심이다.
어쩌면 이곳은 '나의 곳'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도시를 떠난 다른 사람들 보다
상황을 잘 기록하고 잘 포장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발표된다고 최고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일년이 가까워 오는 이 즈음에
이곳이 나의 곳임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것이 사람과 땅 사이에 맺어지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2007.3.27




2007.3.29




2007.3.31


결국 나에게 아주 간혹 날아오는 무겁지 않은 '이주 희망' 메시지들은
내가 보고 발표한 광경들에 대한 존중이자 부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으로 끝이 난다. 심각한 결단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발전하면 서로간에 힘겨운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다른 것은 무엇이고 같은 것은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일생에 섬진강변을 세번 정도 거닐 수 있는데
나는 특정한 기간에는 매일 한번 거닐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려면 순천까지 30분 차 타고 나가서 제대로 된 2개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 중에서 골라야는데 서울 사는 누구는 전국 어디에서도 상영하지
않은 어떤 영화를 동숭아트홀에서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간다. 거리는 젊은피들로 넘쳐나고 그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논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예정된 대화 이외에 미래를 두고 대화를 나눌 새로운 사람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젊은피들은 뭐 그리 대단하게 자연을 그리워하지 않고,
이곳에서 나는 뭐 그리 대단하게 대화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두의 공통점은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곳이나 도시에서나
생존 방식은 전혀 폼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품 팔아 월급받는 것이나 쌀 팔아 일년어치
돈으로 바꾸는 일이나 아귀다툼이고 무간지옥임은 다를 바 없다.








2007.3.26




2007.3.29




2007.3.31


하여, 이 곳이 살기에 폼 난다거나 품위 있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밥을 가운데 놓고 고민하기는 한가지다.
다만 경제 구조적 차이점으로 인해 지출 종목이 상대적으로 약한
시골이 압박하고 달려가는 강도와 속도가 느릴 뿐이다.
이곳에서 폼 나게 사는 것은 이른바 돈 있는 '외지 사람들'일 것이다.
도시에서 벌고 주말이나 한철, 또는 노후를 위해 환경 생각하고 생태 생각하고
생활의 편리를 염두에 둔 집을 볕 좋은 높은 땅에 지어 놓고 있는 사람들이다.
환경과 생태를 염두에 둔 건축비용은 좀 비싸다.
없는 사람들이 가능한 싼 집짓기는 '보로꾸&시멘트'와 '조립식 패널'로 지은 집이다.
모든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인 집짓기다.
민박집의 90%는 조립식패널로 짓는다.
그리고 얼마전 전남권 뉴스를 보니 이른바 '남도민박' 사업은 가동률 10% 정도의,
한마디로 수익성 엉망인 사업이 되어 버렸다. 민박집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민박집은 없는 것이다.
농사에 답이 보이지 않고, 농사 짓기도 싫을 때 뭘 해야할까.
가진 것은 자연환경. 민박이 답이다. 그래서 많이 생겨나고 많이 비어있다.
도시는 월세를 내어야지만 민박집은 월세의 압박은 없다.
가난한 세입자와 가난한 빈집 주인의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벌러 시골가자는 말 있나?
돈은 도시에 있고 도시중에서도 서울에 있다.
돈이 없다면 대다수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도시와 시골 중 어디가 좋은가라는 바보 절정의 질문은
경제에게 물어봐, 다.








2007.3.27




2007.3.29


읍내 자영업의 대세인 식당의 경우 대부분은 자신 소유의 가게다.
월세 부담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 30그릇 나가면 15만원.
한달 매출 450만원. 먹는 장사의 특성상 70% 정도의 마진을 보면 대략 산수 나온다.
상대적으로 지출할 일이 별로 없다. 지난 번에 강남에서 간만에
커피 한잔 얻어 먹는데 메뉴판 보니 대략 커피가 만원씩이다.
내가 한번씩 올라가면 지하철을 대략 오천원어치는 타는 듯 하다.
밥값도 비싸다. 들판이나 강가에 앉아 이야기할 수 없다보니
찻집이나 술집을 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의식주 중 주거 비용이 무섭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금 넣고 대출 받고 내집이란 착각으로 아파트 한채 마련하고 십수년 동안 갚는다.
그것을 갚는 동안 좋은 시절 다 가고 뻔히 엄청 밀리는 것 알면서 벚꽃 보러
토요일에 움직인다. 다음으로 아이들 사교육비. 부모의 철학이 무용지물이 되는 영역이다.
노동의 이유 90%는 대출금 이자와 새끼 공부값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새끼 낳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도시인은 거의 없다.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도시인도 거의 없다.








2007.3.27




2007.3.29


나 역시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차 이야기하지만 나는 돈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취하는 재주가 없다.
내가 돈을 버는 방식은 서울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그 욕심을 좀 많이 줄였다. '줄였다'는 능동적 표현 보다는
'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는 수동의문형이 정확할 것이다.
주제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준비와 보장을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보험과 저축, 투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차에 기름 넣을 여력 안되면 걷는 것이고
도시와 별 다를 바 없는 월세 낼 형편 안되면 빈 농가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농사일 돕고 품삯 받으면 도시 노가다 정도는 벌 수 있다.
이곳에서도 동남아시아 쪽 남자들을 볼 수 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 일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뭔 먹물의 가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첫째로는 몸이 힘들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역시 '밥벌이에 목숨 거는'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면 이곳에 살아도 산도 강도 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곳에 사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 지경이면 왜 이곳에 살겠나. 돈은 서울에 있는데.








2007.3.27




2007.3.29




2007.3.29


내 생각으로는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없다 하는 문제는 경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결정한다는 것은 '경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는 힘들다. 불안과 편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힘들다.
어쩌면 돈을 벌어 경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생각을 바꾸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이 대목에서 내 생각은 이렇다.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 답답함에 질식할 것 같은 상태가 아니라면
그냥 살던대로 사는 것이 답이다.
생각해보면 이곳이 아닌 서울에서도 나는 즐거웠다.
지금 제 사는 곳에서 어떤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옮겨도 한가지일 것이다.
몸 옮겨 치유될 문제였다면 뭔 고민이겠나.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제 각각의 '이곳'이 '그곳'일 수도 있지 않은가.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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