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7/04/22

2007.4.22





토요일 늦은 오후에 일상적인 드라이브를 나섰다.
자운영과 유채, 연산홍, 진달래, 그것 말고도 이름 모를 많은 꽃들이 지천인
요즘이지만 창을 열고 달릴 때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신록이 단연 최고다.
하루가 다르다. 사무실 앞의 나무를 매일 같은 장소에서 찍었다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인데 역시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신출 구례백성은
내년을 기약한다.
날씨는 계속 흐리고 옅은 안개, 약간의 황사, 비가 올 듯... 등등한 상태라
하루 이틀 비 온 다음의 맑음 상태에서 찍겠다고 미루다가 요즘의 풍경들을
역시 놓칠 것 같아 그냥 무작정 담기로 했다.
상사마을 앞 들의 자운영이다. 쌍산재 앞마당이지.







지나오다 보니 오미리 들판보다 상사, 하사 들판의 자운영이 더 장한 듯 하다.
유채와 자운영은 모심기를 앞 두고 들판을 기름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일종의 자연산 유기비료인 모양이다.
하지만 유채와 자운영은 피는 시기가 비슷하고 꽃의 지속 시간 또한 긴 편이니
시각적인 면을 고려해서 심는다면, 좀 더 신경 쓰면 전기줄을 땅 속으로 매입하는
방법을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한판 디카족들의 축제가 될 것이고
음식과 잠자리만 준비한다면 좋은 놀이가 될 것이다.
마침 '지리산 남악제' 축제 기간이다. 내년에는 이 축제 기간에 유채와, 자운영길 감상을
프로그램으로 적극 유치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조성하는데 뭔 대단한 공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뿌리면 된다.







쌍산재 주인장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주민들은 이 풍광들이 일상이니,
"그게 뭐 특별하다고..."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게 뭐 특별하다고. 그래요, 그건 그냥 구례의 일상 풍경이지요.
시간이 되면 찾아 오는 당연한 풍경이지요.

화엄사 앞의 남악제 특설링으로 이동하자 차들이 엄청 밀렸다.
우리는 일요일 이곳으로 올 것이니 탐색하러 왔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유난하다. 하지만 이 날 밤에야 알게된 것이다.
'지리산女' 선발 본선을 일요일에 볼 생각이었는데 이 차량들은...
'밀리네...' 하고 돌아서 나온 그 시간이 바로 본선이었던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사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찌라시 한장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 눈에만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이 역시 내년으로. ㅅㅂ

그래 일요일은 그냥 미루어두었던 자운영과 유채를 찍기 위해 날씨 불문하고
점심 먹고 나섰다.







문척 지나는 길의 마을 앞이다.
이 곳은 넓은 면적으로 나를 사로 잡는 것이 아니라
집과, 자운영과 유채가 소담하게 어울려 있어 항상 지나치던 나의
머리 속에 접수 되어 있었던 지점이다.







물론 맨발로 직접 저 꽃밭을 걷는 것이 가장 확실한 花足이 될 것이다.







비가 올 모양이다.
어제 예보는 밤 사이에 비님이 오시고 오전에는 맑다는 것이었는데...







죄회전 하면 바로 예쁜 마을이 나온다.
지난 겨울에 멀리 할머니들 걸어가는 이 마을 포커스를 올린 것이 있는데
이 사진, 이 마을이다.
http://iam2jang.cdn3.cafe24.com/room/196306121809.jpg







겨울 동안 잠재되어 있는 나무의 팽창력은 자주 오가는 길목에서
거의 충격적인 속도로 변화한다. 하긴 내가 뭘 알겠는가.
나보다 오래된 나무 앞에서...







벚나무는 진작에 꽃잎을 털어내고 이렇게 변했다.
이런 길을 12km 따라 내려가면 구례의 끝이다.







간만에 효곡 방면으로 우회전했다.
꽃몸살에 한동안 이곳을 찾지 못했다.
먼 산의 신록은 굉장했지만 역시 사진으로는 적당치 않은 하늘이다.






돌아오는 길에 들어가면서 봐 두었던 곳에서 한 컷.
이 즈음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늘 논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를 건너다가 불법 정차 한번.
강변에 펼쳐진 저 보드라운 것들을 외면하기는 힘들었다.












오미리 들판으로 들어왔다.
원래 오미리 들판 자운영이 내 눈에 제일 장했는데 그것은
서울 시절의 짧은 견문 탓일 것이다.
이른 아침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문수골에서 내려와서 만나는
안개 속의 오미리 들판 자운영은 언제나 장관이었다.







오미리는 예쁜 마을이다.
어쩌면 이 마을에 언젠가는 한번 살게 될지도 모른다.
마을을 돌아 조성된 이 물길은 오미리의 정체성을 보장하는 아이콘이다.
진달래, 연산홍, 조팝, 어떤 집 담장에 심지어 늦은 개나리까지 지지배배거리고
앞 들엔 유채와 자운영이 가득하다. 드문 드문 대숲.
30개 가까운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조선 제일의 길지라고 일제시대부터 붐을 이루어 그렇게 많은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정착한 마을이다. 난세에 인간들이 심란했던 것이지.
하지만 이 마을에서 엄청난 인재가 났다는 기록은 없고 뒤로 지리산,
앞으로 구만들, 섬진강을 두고 있는 이 전형적으로 아름다운 촌락은
그 풍족함 만큼 큰난리가 나면 고통이 심했던 마을이다.
지금이야 누가 이른바 '길지'를 따라 들어오겠는가.
마을이 예쁘니 들어와서 살고 싶은 것이지.
그래 따지고 보면 풍수란 것은 역시 재미 있는 옛이야기는 될 지 몰라도
기댈 언덕은 아니다.

운조루 앞을 지나 19번 잠시 올렸다가 용두리와 하사마을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하사마을로 우회전했다.







하사마을로 들어서면 상, 하사 마을 들판이 아래로 펼쳐진다.
앞 머리에 이야기한 구상을 한번 상상해 보자.
유채와 자운영이 계획적으로 조성된 이 들판을.
상사마을쪽 도로는 충분하고 잠자리는 지금은 쌍산재 뿐이지만 하룻밤
머물 공간이야 돈이 보이면 마을 주민들이 마련할 것이다.
조선 팔도에서 손꼽히는 물맛인 당몰샘이 있고 오분 거리에 화엄사가 있다.
상시적인 구조물은 수익성이 희박하고 소박하게 그냥 마을에서
일주일 정도의 축제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이벤트사에서 기획하는 축제 말고 이곳에서 나는
것들로 음식 장만하고 쉬어가는 장소 마련하고 디카 메모리 다 차 버린 사람들을 위해
백업센터 같은 것을 천막 속에 마련하고 인터넷 사용하게 한다면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이다.
우리는 뭔가 거창한 행사를 기획하는데 익숙한 백성들이라
작은 행사의 알찬 수익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읍내로 차를 돌렸다.
실내체육관에서 지리산남악제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인 판소리 경연대회를 한다.
지리산女 선발 대회는 놓쳤지만 사진이라도 몇 장 남길 생각으로 이동.
지리산女 대회는 설마 수영복 심사는 하지 않았겠지. -,.-







서편제 있으니 동편제도 있을 것이다.
구례 읍내에는 동편제 전수관이 있다. 송만갑옹은 구례에서 태어났고
동편(東便)의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검색해보니...

...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전통 가문의 후예였으나,
청중과의 교감을 중시하여 자신의 소리에 서편제를 가미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송씨 가문의 법통을 말살하려는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당시 동편제의 대가들은 그의 소리를 ‘통속화’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감각과 창조적 역량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가문은 송흥록, 송광록 대에는 남원 운봉에 살았으나 송우룡 대에 구례로 이사하여
송만갑은 구례에서 나고 자랐다. 현재 구례읍에 송만갑의 생가가 있다.
송만갑의 소리에서 지리산 자락 위아래 남원과 구례의 원형적 질감을
고스란히 맛볼 수 없음이 아쉽기는 하나, 어쩌랴, 그래도 바탕이 동편제였던만큼
그의 굽이치는 소리에서 지리산의 깊은 골을 그려봄 직하다.
“송만갑의 소리는, 수리성에 단단하고 목이 쉰 철성으로,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음에서 저음으로 뚝 떨어지거나, 저음에서 고음으로
솟구치면서 성음의 변화를 주는 그의 창법은, 다른 사람으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이다.”(최동현, <판소리5명창>(신나라레코드)의 음반내지)







어, 인호형이네.
일요일인데 공무집행하러 온 모양이다.
ㅎ.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뒤에서 몇 컷 눌렀다.







우리가 들어 섰을 때는 명창경연을 하고 있었다.
심청가 한 대목을 하고 있었다. 명창의 소리를 라이브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직접 듣다보니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대목에서 창하는 자는 애간장을 끊고 있었다.
객석이야 95% 노인들이었지만 진정으로 열중하고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나 역시 어쩌면 뜻밖의 경험으로 판소리 CD를 사게 되는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희재형이 심청가를 그리 좋다 하였는데
조만간에 완창 한바탕 들어봐야겠다.
가창력이라는 용어는 너무 가볍고 이 소리들은 '진심'을 내 걸고
사투를 벌이는 소리들이었다.
그리고 내용과 억양, 추임새 속에서 왜 전라도인지 실감되는 것이었다.
이곳은 전라도다. 애끓는 소리와 일상적 풍경 만으로 나를 죽여버리는 땅,
이곳은 구례다. Feel Gurye!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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