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24


지난 주말경부터 이상하게 계속 뭔가 컴퓨터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하나 끝냈고 다른 종목 작업중이다. 내일은 밤작업까지 해야 할 판이다.
돈과는 무관하나 해야하는 작업이다. 돈과 유관할 수도 있는 기능 투자랄까...
2개월 가까이 거의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았던 몸은 이런 며칠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하루 4시간 정도의 작업이 적절하단 생각이지만
대부분은 사진찍고 놀고 그것 다듬어 이곳에 올리는 일상이니 그것으로 인한
컴퓨터 작업 증후군과 피로감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른바 작업이란 것은 다르다. 몇 시간 보고 나면 두통과 눈의 피로가 확연하다.
작업 중 눈은 깜박이지 않고 호흡을 멈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시 적응하면 이전 방식의 작업 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힘들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돌아가기도 싫고 내 몸은 이미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몸이 거부한다. 믿지 않겠지만 오래 전 나의 별명 중 하나는 '기계'였다.
일하는 기계.







늦은 점심 지나서 새 작업 중간에 타블렛을 놓았다.
답답하여 도저히 계속 작업 하는 것은 힘들었다.
다시 들판으로 가야만 했다.
뭔가 환기를 해야했다.
크리에이티브는 바닥났고 늙은 디자이너는 경험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스타일이 고착화된 것이다.
사성암 아랫마을로 일단 차를 몰았다.







볼 수록 사성암을 품고 있는 오산이 좋다.
신록의 오산은 더 그렇다. 온전하게 한 눈으로 들어오는 해발 500m 이상의 산은
그 생김이 특별할 수밖에. 자운영이 한창이었고 유채는 끝물이었다.
도로변으로 연산홍과 진달래가 도열해 있지만 나는 항상 그것을 찍지 않는다.
그것은 한장의 사진으로는 감흥을 전달할 수 없고, 이를테면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뿌연 하늘에도 불구하고 오산의 신록은 훌륭했고
역시 그 어떤 꽃보다 이 초록꽃이 압도적이다. 오래된 초록 사이로 보이는 신록보다
아름다운 색은 없을 것이다. 가운데 즈음에 연산홍 길의 띠가 보이네.
저렇게 연산홍 띠가 2km 정도 계속된다. 물론 이 길 뿐만 아니라 구례 전 지역을 그렇게 조경했다.
꽃의 친정집이 있는 용방쪽의 연산홍은 더 장하고 압도적이다.
꽃은 딸 잘 키우고 있는지. 화자야, 일전에 인정수퍼에서 아버님 뵈었다.







문척면 월평마을 입구의 저 나무는 항상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내가
기다려 온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의 저 나무다.
옆에서 언화의 목소리. '나무는 대단해...'
그렇다. 나무는 대단하다.
세상 무엇 보다 나무를 존경한다.
케이블 채널 NGC에서 얼마 전 원숭이 관련 다큐멘터리 마지막 말씀이 생각난다.
'다른 생명체를 보호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별 미친 소리를 다른 곳도 아니고 NGC에서 시부렁거리다니...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연계 진화 역사상 최악의 결과물이지만 그것 조차
자연의 결정이었으니...







오래간만에 간전면 쪽 골짜기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도 소개하지 않은 곳이다. 산 골짜기는 아니지만 낮은 산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협곡으로 인해 논밭은 손바닥 만큼 나오는 구례군에서 가장
척박해 보이는 마을이다. 마을 끝 집이 이 도로의 길 끝이다.
협곡이라 전기줄이 너무 뚜렷해서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 걷는다면
충분히 마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안에서는 비교적 넓은 편에 속하는 밭에서 염소들이 자운영을 뜯어 먹고 있었다.
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 나와서 월평 마을 개울가의 등나무 아래 마련된 테이블에서
잠시 담배와 간식을 즐겼다.
바로 앞으로 감나무밭이고 이제 올라오는 감나무잎은 이 세상의 색이 아니다.
이곳 저곳 돌아다녀도 감나무밭의 새 잎은 경이로운 green이다.
어느 누가 사진을 찍어도 실제 바라보는 저 연두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만간 산에서 햇감잎차를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틀 정도 말리고 덕어서 마시는 햇감잎차.







며칠째 마음의 부담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20년 전에 우리들이 시작했던 일에 대한 전시를 어느 시립미술관에서 준비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 전시의 적지 않은 부분이 우리들이 진행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배당이 된 모양이다.
정확한 내용은 구례에 있다보니 알지 못한다.
지난 주부터 전화들이 오기 시작했고 나는 '참여하지 못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들이 만들었던 그림의 거의 전부는 거리에서 사망했고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자료뿐이다.
그 자료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내가 가지고 있다.
자료는 넘겨 주겠다고 했지만 징역에서 보내 온 편지들까지 남아 있는
그 바인더북과 앨범을 뒤적여야 한다는 전제는
지금 나의 시간에서는 참 마땅하지 않다.
내가 외면해도 그들은 빈약한 자료로 진행을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기획이고 결정이다.
그것을 어떻게 기획하고 부스 구성을 어떻게 하고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이미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획안으로 10년째 방치되어 있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현재의 생각이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막상 외면하기도 힘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과거가 '힘든 기억'으로 존재하는 부조화에
오래된 벗들 또한 며칠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기억은 수행했던 일 뿐만 아니라 관계와 시간들의 먼지까지 털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붓질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도시빈민 김선호의 영정이었을 것이다.
늦은 밤, 가톨릭대학 복도에서 검은 휘장에 은분으로 만장 글씨를 써 내려갈 때
'아, 힘들다, 더 못하겠다.' 는 내 안의 소리를 들었던 듯 하다.
아직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老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신록은 왜 저리도 선명하단 말이냐.







월인정원 블로그에서 회자되고 있는 브시맨브래드를 간식으로 싸 들고 나갔다.
빵과 담배를 같이 먹고 눈 앞의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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