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29


금요일 오후.
중간고사가 끝나고 영후는 바로 부산에서 구례로 이동했다.
구례에 도착했을 때는 밤 8시를 좀 넘겼다.
대략 언제나 시간은 그러하다.
어두워진 터미널에서 담배 피며 기다린다.
저 멀리서 좀 높은 불빛의 차가 다가오면 '영화여객'인지 확인하기 위해
애비는 약간 조바심도 낸다. 부산에서 오는 버스는 사천 지나 한번,
하동에서 20분 정도, 화개에서 잠시 머문 후에 구례에 당도한다.
이미 여러번 혼자 방문한 아이가 헤아리고 있을 터미널의 갯수를 나 역시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좀 늦은 저녁밥상.
시험에 대해서는 짐짓 물어보지 않는다.
아이가 뭔가를 증명해서 보여주기를 원하는 부모 마음은 같은 것이지만
그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 그 증명에의 요구가 전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라 월성정육점에서 좋은 부위로 불고기감을 준비해뒀다.
밥을 많이 먹는다.
그러면 된 것이다.
일년 만에 발견한 실내체육관쪽 체육공원으로 밤산책을 나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물소리, 바람소리...







다음날 아이는 늦잠을 자고 우리는 장에서 고추, 호박, 가지모종을 구입했다.
고추모종은 보통 세나무에 이백원인데 어떤 고추모종은 세나무에 이천원이다.
그것도 몇 나무 구입했다. 아삭하다고 하니 언화가 참지 못한 것이다.
월요일 오후에 비가 올 것이고 그날이 남은 밭의 공간을 처리할 길일이다.
토요일 장터는 번성했고 모종들이 많이 나왔다.
일제히 그렇게들 금년 고추농사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사무실로 올라와서 메일 확인 정도 하고 아이가 원한 재첩국수를 위해 집으로
내려와 모두 강쪽으로 나갔다.
원래 면 종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자라면서 식성이 변한다.
지난 겨울에 재첩국수를 먹기 시작하더니 어제 도착하자 마자
'먹어야 할' 음식을 미리 요구한다. 손님이나 아들이나... 쯔3







오산으로 이동했다.
가벼운(?) 등산을 하기로 했다.
사성암까지 차로는 여러번 이동했지만 등산은 언화 이외에는 처음이다.
구례는 감나무가 많다. 농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성암 아래 오산등산로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데
며칠 동안 나의 눈과, 그리하여 마음까지 잡아 당기고 있는 감나무밭이 펼쳐진다.
이미 정말 애틋한 연두의 순간은 지났다.
그 순간은 매화와 벚꽃의 절정 순간보다 짧다.
그것은 물론 이번 봄에 알게된 사실이다.
인호형과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었던 며칠 전, 어디의 감나무잎이 가장 예쁜지
의견 교환을 했다. 일치했다. 사람이 보는 눈은 역시 오십보 백보다.







날씨가 비교적 맑아 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하루 전에는 황사가 좀 심했다.
하지만 장날인 토요일은 비교적 맑았고 좀 탁하지만 파란 하늘도 보였다.
봄날씨는 대부분 이런 것이다.
등산로 초입의 농가가 마음에 든다.
저런 집 한채 구하기가 이리 힘드나.
금요일 오후에도 벼룩시장 들고 세곳의 집을 둘러보았다.
정답이 아니었다.







겨울 동안 약간 그로데스크하게 까지 보였던 오산의 음지는 봄이 되자
본색을 드러내었다. 보이는 정상까지 계속 저 각도로 올라가면 된다.
내리막 한번 없다. 약간 부담이 느껴지는 570m다. 마치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바라고 오르는 마지막 30분의 오름을 연상시킨다.







또 하는 소리지만 이 초록꽃을 따라갈 꽃이 없다.
지금 사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다른 어떤 색 보다 초록이 압도적인 땅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다. 당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혹 초록을 본다. 시각적 환경은 습관화되고
당연시 하는 경향으로 변화하는데  '나의 환경'을 불현듯 자각한다.







밀린 이야기의 대부분은 새롭지는 않지만 새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본격적인 각도가 시작된다.
사람 가까이 있는 산도 마치 입구인 듯 한 분위기의 장면이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인데 그나마 다행이다.
40분 정도 예상으로 장단지에 약간의 고통을 선사하는 시간은 시작되었다.







검은 현무암덩어리가 쏟아져 내리는 사면이 오산 가운데 부분을 이루고 있다.
큰 비가 오면 이 돌들의 하산은 좀 더 진행될 것이고
저 묵은 숲은 그것을 막아선 방벽이다.
때로 금지된 숲 속으로 들어가고픈 욕망이 생긴다.
칠선계곡이 개방된다면 원시림의 향연이 이떠할지 궁금한 최근의 욕망에서
비롯된 습관일 것이다.







중간에 두번의 쉼터가 나온다.
두번째 쉼터에서 이미 물은 바닥났다.
계속 30도 정도의 각도를 오르는 이 짧은 산행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영후는 여전히 벌레에 대한 관심이 많다.
오늘만 해도 이제 막 허물을 벗고 첫 비행을 시도하는 벌레들을 여러번 보았다.
넌 누구냐? 여치냐?







쉽지 않다. 더구나 몇 개월 동안 등산을 하지 않았고 역시 이 코스는 난감하다.
짧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
초행이라 그런지 나는 역시 땀을 비오듯 흘렸다.
마지막 동산에 당도하기 전의 나무계단은 역시 마무리 고통이다.







그리고 정상이다.
정확하게는 정상은 아니고 페러글라이딩 출발점이다.
더 위에서의 전망이 오히려 이곳보다 좋지 않다.
그래 여기가 종착점인 것이다.
모두 맨발이 되었다. 뜨거워진 발바닥을 식히고 발가락 사이로
바람을 넣어준다.







역시 벌레를 찾고 있다.
부산에서 타란튤라를 키우고 있는데 이곳의 벌레들은 이를테면 자연산 아닌가.
영후가 어릴 때 부터 벌레를 '돈'을 주고 사서 키웠다.
벌레를 돈을 주고 사서 키운다는 것은 참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참 '고대적'으로 생겼다는 합의를 본 녀석이다. 장수벌레 계통이겠지.
햇살은 초여름 같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잠시 머물다가 하산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구례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이다.







죽연마을 서쪽 끝자락이다. 좀 더 왼쪽으로 이동하면 동해마을, 그 옆은 마고실마을이다.
오산을 중심으로 크게 휘어지는 섬진강가의 가장 예쁜 위치에 자리한 마을들이다.
이 구비에는 고기가 많이 잡히는 모양이다.
자운영은 여전하고 보리들은 씩씩하다.
감나무잎을 지난 바람은 자운영 꽃잎을 빠르게 흔들어주고 보리이삭 사이로 빠져나가며
그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풍문을 전할 것이다.
그러면 보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단 가늠을 할 것이고
그 바람에서 비냄새를 감지할 것이다.







역시 늦은 오후로 넘어가는 역광의 감나무잎에 나는 눈길을 빼앗긴다.
손님은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다음 주에 오겠다고.







집으로 돌아와서 언화가 준비한 간식으로 피자토스트를 먹고 온천으로 갔다.
어두워지는 노천탕에서 아이와 나는 주로 우스개 소리를 나누었다.
나는 역시 강한 경쟁력을 요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나는 이렇지만 너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은 역시 아닌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 이곳과 어울린다고 아이가 이야기한다.
시네마천국 OST를 켜두고 있었다.
저녁찬은 아침장에서 비싼 갑오징어를 준비했다.
더 비싼 집의 아주머니曰, "그 먹물 터진 비슷하게 생긴거는 다 일본산이여!" 라고 말했다.
그 일본산을 샀다. 세마리에 만원이다. 비싼 아주머니의 '진짜' 우리나라 갑오징어는
한마리에 만이천원을 달라고 했다. 한우보다 비싸다. 하지만 참 좋아보였다.
영후에게는 '장터에서 제일 좋은' 오징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나와 언화의 마음이 그랬던 것이다.
연신내시절 불오징어를 좋아했던 아이에게 비싼오징어로 불오징어(맵다는 뜻으로)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과연 일본산이건 국산이건 여튼 비싼 그 오징어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는 '오징어 스테이크다!' 라는 극찬이었다.
다른 손님들이 와도 넣는 같은 양념들이지만 나는 마음을 좀 더 담아 저녁 밥상을 준비한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내 어머니가 나에게 차려 주는 밥상을 이렇듯 생각하지
못하는 '자식일 때의' 내 모습이다.
반복된다.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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