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3


매주 월요일.
사무실로 입장하면 나는 항상 구례군청 사이트로 들어가서
구례군의 '금주 행사 계획' 파일을 내려 받는다.
군청의 금주 행사 계획이라 관변적 요소가 대부분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를 건지는 수가 있다. 목요일인 오늘 오전 10:30으로 '매천사 제향' 이라는
일정이 보인다. 제사 지내는 것이지.
누구 제사?
매천야록으로 유명한 매천 황현 사당에서 일년에 한번 모시는 제사를 말하는 것이지.







매천사는 항상 지나치는 곳이지만 한번도 방문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한번 방문해야 할 곳이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황현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월요일에 인호형이 왔을 때, '가요?' 라고 물어보니 '갈껄.' 이라고 하길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오늘은 쉬기로 한 날이기도 하고 해서 아침에 전화해서 확인하고 인호형 차로 이동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2.11~1910.9.10)에 대해서 아무래도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겠지. 나도 일제시대에 열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비라는
정도만 알고 있고 '매천야록' 이란 책이 유명하단 것 정도의 정보 이외에는...
매천사당은 광의면 수월리에 있다. 검색해보니 매천은 광양 사람이다.







네이버에게 물어보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 대목이다.

... 중략...
29세 때(1883년) 부모의 소망을 풀어들이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시골출신이라 하여 2등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단념하고
전남 구례에 칩거하며 시작(詩作)과 저술에 힘쓰다... 중략...

사실이라면 열받을 일 아닌가. 그래서 구례에 칩거하셨구나.
예나 지금이나 시골살면 대접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요즘 나도 사무실 전화로 후배들에게 전화하면 안받는다.
061 찍히면 이것들이 받지 않는 것이다. 하여, 매천의 서러움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자결할 사안은 아닌 듯 하고 061번호 전화 받지 않는 후배들을
절단낼 가능성이 더 높다.

황현은 1910년, 나라를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9월 10일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구례는 어차피 매천을 모시기에 가장 적절한 땅이다.
무엇보다 매천사라는 이름의 사당은 황현이 살았던 집 그대로다.
엄밀하게는 사유재산이고 한 집안의 문제이지만 관리권은 구례군이 가지고 있다.
물론 현손들이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정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정확하게 10:30에 제를 시작했다.
입구 행랑채에서 여인네들이 음식을 차리고 있었고 대략 눈대중으로 봐도
오륙십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석한 듯 하다.
제관을 맡은 어르신은 간만인지 좀 어색한 느낌이었고 어차피
행사 자체를 군청과 마을에서 주관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그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업무로서 기획실의 두 사람은 스틸과 동영상을 남긴다.
촬영하는데 바닥에 깔아 둔 은박지의 반사가 많이 힘들게 했다.
마당에 들어서서 입시하고 있는 사람들 삼십여분과 밖에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신의 포지션은 자신이 지키는 듯한 익숙함도 있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상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
자료실에 해당하는 한채가 있는데 매천야록을 비롯한 황현의 저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인 개방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별 의미는 없을 듯 하다.
결국 일상적 개방은 누군가 상주하면서 이곳을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 것이니 결국은 예산상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한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장사가 남는 장사만 하는 것은 아니니 그 방법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영토와 역사 분쟁으로 시끄러운 시기이고 그를 틈 타 주몽류의
역사물이 판치는 대세가 있기는 하니까.







한 집안에서 조차 제사를 모시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한 일인지
가늠하기 힘든 시절이다. 물론 그 행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제하고 말이다.
간혹 오래된 고택을 지키고, 그 고택들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막상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본다. 사유재산이지만 공공재로 분류되고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집 안에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다.
공공재로 분류하면 그에 상응하는 문화재로서의 지원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지원은 눈꼽인데 정신력은 축구국개대표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략 한시간 정도의 진행이 끝이 났다.
뭔 그림이 나올 것이라 참석한 것은 아니다.
그냥 진행 상황을 보고 싶었고 기록으로 몇 장의 사진을 남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 나는 자발적인 공무원이자 자칭 구례통신원이고 구례홍보대사다.
중간에 담배 한대 피러 나갔을 때 뭔가 차가 도착하고
그릇들이 들어왔는데...







제사 음식은 집안에서 준비한 것이고 음복은 인원이 많으니 주변에서
시킨 모양이다. 비빔밥이다. 마당에 상이 차려지고 돼지도 삶았더라.
흐미 좋아라~ 인호형이 빨랑 '한 그릇 하세' 라고 이야기하기를 기다리는데
보이질 않는다. 대문 밖에서 어떤 어르신과 이야기 중인데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이 매천의 현손이시다. 매천선생이 고조부란다.
동영상 인터뷰를 질문 두개 정도 진행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려 했던 목적은 바로 이 그림에 있다.
물론 이 그림은 복사본을 배접해서 족두리형식으로 모셔 놓은 사당의 영정이다.
원본 그림은 충분히 존경해야 할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의 작품이다.
채용신을 모르신다면 이곳에 내가 이전에 비슷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244번 글에 있다.
http://www.iam1963.com/bbs/view.php?id=day&page=10&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24
지금 가서 읽어보시는 것이 내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하는 지름길이다.
좀 길지만...

여튼 도판으로만 보았던 채용신의 작품 '황현초상'은 이곳 사당에서 복사본으로 아주
좋지 않은 상태로 영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실제 작품보다 어둡게 변했고 영정을 모신 나무벽 자체도 일상적으로 열어두지 않다보니
습기와 구김이 심했다.







매천 선생이 남긴 유일한 사진 한장.
밖으로 들고 나와 유리 액자 그대로 촬영을 하니 말이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사무실로 들고 와서 저 사진도 충분한 사이즈의 평판 스캔을 받을 생각이다.
결국 나의 오늘 방문 목적은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조선말기, 근대기의
탁월한 초상화가 채용신의 작품을 제대로 매천사당에 반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계획에 있다. 마침 현손을 만나 순천으로 찾아가서 인호형이 대형 필름으로 촬영하고
내가 보정하고 출력 및 디스플레이 방법을 고민하고 작업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이 과연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내가, 가진 기능으로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면 그렇게 했으면 한다.
뭐 도시의 시간과 다른 곳이니 금년 중에 어떤 결과가 있겠지.







짧은 인터뷰 마감하고 언제 순천으로 찾아뵙겠단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조만간 채용신의 그림을 실견할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이 오기를...
그러나,

'아니 저 거시기 저 비빔밥은... 인호형! 그냥 가는거야...'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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