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25


원래는 24일 초파일에 이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비가 온다는 소식에
하루 앞당겼다. 이사 자체의 시간과 장소와 방식도 갑작스러웠고
실행은 더 후다닥이었다.
22일 화요일 밤에서야 나는 몇 개의 박스에 CD와 책을 담았고
기계들을 해체했다.
약속한 일들이 있는데 전부 말 없이 연기되었고 여기 내려 온 이후
가장 정신없고 바쁜 날들을 보낸 3주일 뒤끝이라 대략 정신 없는 상태였다.







23일 새벽에 사무실은 도착하였다.
말 그대로 집이 도착했다.
이 역시 지난 주에 일본으로 건너 가기 전에 형이 순천에서 맞추어 둔 사무실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재료로 한, 집이라기 보다 '시설물'이다. 대략 7.5평 정도의 사무실이다.
완제품 상태의 이 사무실을 새벽에 트레일러로 운반해서 크레인으로
낙하 지점에 안착시키는 것이 이사의 절정이자 최대 고비이다.







하루 전에 원래 밭이었던 땅의 위치에 흙다짐을 해 두었고
나는 이 사진의 순간에서야 내가 사용하게 될 사무실 자리에 처음 와보는 것이다.
전기선과 전화선을 넘어야는 곡예와 같은 크레인 운전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이 공사에 형과 박선생님, 오미리의 몇몇 주민분들이 함께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냥 감상하는 것이다.







집과 텃밭 사이 좁은 골목길로 트레일러를 후진해서 마무리 운반을 한차례 더
하면서 사무실 배달은 끝이 났다.
트레일러 후진 과정은 정말 mm 단위의 틈을 비집고 차를 밀어 넣는 곡예와 같았고
골목길 포장이 좀 깨어졌다.
그렇게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이사의 90%를 차지하는 공정이 끝이 났다.
역시 이것은 동네에 '구경 난' 상황이었고 처음 만나뵙는 분들에게
나는 무조건 일단 머리부터 숙이고 씨익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제 원래 읍내 사무실에서 짐을 가지고 오면 되는 미션이 남았다.
한 숨 돌리고 쉴 참에 옆집 앵두나무가 유난하고 주인 아주머니는
'먹을 사람이 엄써!'를 강조하시고 계셨다.
그래 언화는 정신 없이 앵두를 따 먹고 사진을 찍었다.
마당에 앵두가 소복하게 열려도 따먹을 사람이 없다.
손 닿지 않는 곳의 앵두는 말 할 것도 없다.







30여가구. 이곳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五美里다.
다섯가지 아름다움을 가진 동네라는 뜻이다.
조선팔도 3대 명당 자리 중 하나라는 바로 그 운조루雲鳥樓가 있는 마을 오미리다.
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조만간에 아주 자세하게 이곳에서 다룰 것이다.
여튼 오미리 들판을 눈 앞으로 두고 우측으로 100m 위치에 운조루가 있고
배달된 사무실은 오미리 정 중앙에 딱 자리하고 있다.

장날이라 꿀꿀이집에서 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형 트럭으로 이사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꿀꿀이집에서 한 장면. 각자 차로 도착해서 시간 차이를 두고
들어 선 우리. 국밥 두 그릇은 기본이고 형이 평소답지 않은 내용을 발설한다.

형 / "아주머니 듬북 주세요."
아주머니 / (국자 놀이를 하다가 눈을 내리깔고 혼자 말로)"머시라 하는 소리여..."
형 / "배 고픈게 허벌나게 많이 달랑게요."
3초 침묵 후.
형 / (나에게)"간만에 쎄련되게 서울말로 해불랑게 안묵히네..."

이날 알게되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꿀꿀이 국밥집 돼지국밥을 '똥국' 이라고 했다.
고기 한 점 없이 내장만 있는 국밥인데 아무리 그래도 똥꾹이라니.
맛있는데...
대략 오후까지 형의 트럭과 내 차로 이삿짐 운반을 위한 읍내- 오미리간
허벌난 반복 운행이 계속되었다.







원래 인호형 작업장이었던 공간을 1년간 강탈했는데
이제 이렇게 비워졌다. 일단 이사짐을 옮기는 것 까지 끝내고
나는 거의 뻗어 버렸다. 수요일은 날씨도 제법 더웠다.
초파일인 목요일 아침에야 내가 1년 동안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실내 청소를 끝내었다.
컴퓨터 들어내고 책상도 원래 있던 것을 제외하고 모두 옮기고 나니
공간이 좀 허하긴 하다.
작년 5월 31일 아침에 이곳에 짐을 풀었다.
그날 새벽 3시경에 구례에 도착했었고 게임방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바로 이사짐을 풀었었다.
이후로 구례를 찾는 나의 손님들은 보통은 '구례보건소에 오셔서 전화주세요.'
라는 나의 안내를 들었는데 이제 이 공간과 작별이다.
이 공간은 나에게는 각별하게 고마운 공간이었다.
서울 생활 마지막 2년은 연신내 집에서 모든 일들이 벌어졌는데
간만의 이런 공간은 나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 주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기엔 과분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 만난 집 주인 인호형과 몇몇 사람들은 나를 참 따뜻하게 받아 주었었다.
서울에서 전원으로 내려 오는 대부분의 준비된(철학과 경제가) 사람들과
달리 나는 딱 방울 두개만 달고 있었고 뭔 대책과 전망을 궁리하는 것은
딴전이고 열쉬미, 정말 열쉬미 1년 동안 구례를 알기 위해 피나도록 놀았다.
내려왔을 때 지리산형에게 '1년은 놀고 싶소.' 라고 말했었고 그 1년은 훌쩍 가버렸다.
2년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
여튼 그렇게 인호형의 공간과 형식적 작별을 고했다.
고맙소 인호형. 1년 동안 잘 놀았소.
그 주차장은 계속 사용허고 텃밭 땜시 형 화장실에 있는 물통하고 각종
농사 장비는 둬야것쏘이잉.







청소 해 놓고 옮긴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래도 아침 9시가 되지 않았다. 며칠째 게으름뱅이가 일찍 눈을 열어야했다.
화엄사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읍내 도로변에는 각종 사인물들이 있다.
이 플랭카드들에서 때로 중요한 정보를 취하기도 한다.
어느집 막내딸 행정고시 '1차 파스' 내용부터 행정 관련 고지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있다.
구례북초 동창회라... 꽃뜨루 가서 구라치면 밥 얻어 먹을 수 있겠다.
그런데 5회면... 혹시 최소 육순 이상 노인들 아닐까.







남은 몇 가지 짐들 옮겨 왔고 이제 컴퓨터 셋팅하려는데
사무실 옆집 아주머니(엄니끕)가 오후에 비 오기 전에 당신 마당의 앵두를
딸 수 있는 한 모두 따 가란다. 비 오고 나면 그만이라고.
그래 만사 미루고 앵두 따기에 돌입했다.
의자 놓고 손 닿는 곳 까지 가지를 손바닥으로 쓸어 내렸다.
박스로 떨어지는 놈들이 2/3 마당으로 떨어지는 놈들이 1/3.
그래봤자 전체 앵두의 1/20이나 될까. 여튼 염치는 모르겠고
최대한 수거했다. 빵순이에게 전달했으니 토요일은 앵두아주머니에게
앵두파이가 배달될 것이다.







셋팅은 어차피 내 몫이고 몸이 좀 묵직하다.
하지만 금요일에 전화랑 인터넷이랑 들이닥칠 것이니 셋팅을 완료해야했다.
벽의 저 사진도 거의 1년 만에 제 자리를 찾았다.
인호형 사진인데 지리산닷컴의 메인사진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좁다. 이전에 사용한 공간이 15평이었으니 그 절반 좀 못되는 평수이니
손님들 앉을 공간이 불편하다. 방석에 작은 개다리상이나 놓고
방바닥 모드로 들어가야겠다.
이 배달된 사무실은 필름단열 방식으로 이를테면 전체가 구들장이다.
헨젤형은 오후에 비도 오고 '구들장 테스트나 해보까.' 하고는 책상 아래로
뻗어 버렸다.







싱크대도 있다. 원한다면 가스를 연결해서
간단한 요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라면도 끓일 생각은 없다.
커피와 차 정도 마시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인호형 공간에서의 수납장은 절반으로 잘라서 2단인 아닌 4단으로 재구성되었다.
저 CD들을 어떻게 정리해얄 것인데...







똥도 싸고 뜨거운 물 샤워도 할 수 있다.






배달된 사무실의 전모다.
몇 가지 손볼 대목들은 토요일까지 이어서 마무리할 것이다.
나는 이 배달된 사무실을 보는 순간 형과 나의 나이를 생각했고
장난감집 같은 모습 속에서 우리가 헨젤과그레텔이 도착한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47&45의 뒤늦은 헨젤과그레델 놀이.
처음에 컨테이너박스라 하길래 말 없이 그냥 그렇겠거니 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의 사무실이 배달된 것이다.
옮기고 싶다면 크레인으로 들어서 다른 마을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골목에서 현관으로 들어서는 땅에 뭔가 질퍽거리지 않을 보강을 해얄 것이고
약간의 조경 아닌 조경도 해얄 것이다.
바로 앞으로 빨래터고 개울이 흐르니 뭔가 시각적인 장치를 해얄 듯 하다.
이왕 하는 헨젤과그레텔 놀이라면 좀 더 어처구니 없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예쁜 우체통을 하나 사서 입구를 시작하자는 아이템은 합의를 본 상태다.







비가 온다.
오전부터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후 늦게야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 속에 뛰어 나가 몇 컷 찍었다.
운조루쪽으로 바람이 심했고 렌즈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미리 사람의 99%를 차지하는 노인분들이
이 헨젤과그레텔의 장난감집에 계속 관심을 보여주셨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나는 두번이나 허브차를 만들어 밭일 끝나고
기웃거리시는 할머니들과 방담을 나누어야했다.







"뭣 하는 곳이여?"

설명드리기 참 힘들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지리산닷컴의 컨셉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산수가 딱 떨어지는 기획안이 불가능한 아이템인 것이다.
우습게도 형과 나는 그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몇 년간 간혹 툭툭 던지는 화두 같은 소리들만 확인하고
생각이 같음을 확인한 것 뿐이다.
그렇다. 모든 사업과 기획이 정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획안 자체가 부정형의 아메바 같은 경우도 있다.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우습게도 우리에겐 굉장히 또렷한 상이 존재한다.
사무실 정면으로 전개된 오미리들판과 대숲은 나의 작업을 지체시킬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도 나의 작업을 지체시킬 것이다.
뭐랄까...
이틀 동안 나는 굉장히 흥분된 상태다.
상사마을과 오미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하면서
길가의 풀 하나, 스치는 바람 결에도 소름이 돋는 오르가즘을 느낀다.
읍내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다.
읍내는 일정하게 도시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더구나 이곳 사람들은 읍내를 '시내'라고 표현한다.
읍내에서는 궁금증은 있지만 정면으로 물어오지는 않는다.
시선을 대체할 수 있는 주변 행인들도 있다. 진행 방향이 있어 앞만 보고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외면할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입장을 꼭 표명해야 한다.
이곳 오미리에서 3일째 나는 호미를 들고 장화를 신은 할머니들을
정면으로 맞이한다. 인사하고 웃고 나름의 기준에서 소통한다.
지난 1년이 자위 수준이었다면 어느 마을로 진입한 이 순간은
마치 난생 처음 삽입성교를 하는 상태와 같은 기분이다.
나는 이곳에 내려 온 이후 항상 이곳의 '주민'이 되기를 원했다.
도시에서 내려 온 그렇고 그런 전원생활을 꿈꾸는 젋은 사람이 아닌
이곳으로 녹아 드는 주민이 되고 싶었다.
이제 그 첫발을 시작한 것이다.
사무실은 금연이고 길가에 나가서 담배 피기는 참 힘든 분위기다.
온통 노인분들 뿐이다. 앵두나무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할머니 마당을 내 흡연장소로 합의했다.
앵두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담배를 가려가며 날려 보내는 연기는
마흔다섯의 그레텔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사라지려는 로마법을 따를 생각이다.







사무실 내 자리 인터넷용과 작업용 PC와 mac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다.
대학시절부터 이 마을은 내가 무수히 들락거린 마을이고 이곳에 내려 온 1년 동안
이곳을 백번은 아니더라도 수십번은 지나친 들판이고 대숲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미리 정 중앙, 헨젤과그레텔의 집에 앉아 바라보는 오미리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어제 셋팅을 끝내고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형에게 말했다.

"오미리 들판에 내 mac을 셋팅하고 대숲을 바라보는 이 현실은 나에게는 하나의 아이러니다."

세상의 어떤 디자이너가 이런 창을 가질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았지만 형에게 하고 싶었던 나의 다음 말은 이것이었다.

"헨젤, 정말 고마워.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줘서."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길 위에 빵부스러기를 뿌려두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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