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6


일본인 친구 마이&캔지가 구례를 방문했다.
최근엔 손님 방문 이야기는 이곳에서 거의 하지 않거나
지극히 간략히 하는 편이나...







4일 오후에 교또에서 인천으로 들어 온 캔지('상' 이라는 존칭 생략)와
어차피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마이가 5일 아침 첫 고속버스로 구례행.
오후 1시 좀 전에 도착해서 일단 재첩으로 점심 먹고 쌍계사 지나
의신마을 쪽 계곡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교또 인근의 시골 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라 좋아라 하는 분위기.
일본의 농촌과 이곳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누다.







대략 이 부부는 직접 해 보는 편이다.
계곡의 모습이 일본과 다른 그 무엇이었는지
기어코 내려가서 발을 담근다.
좋았다. 햇볕 좋고 모처럼 하늘도 맑고 공기야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언화 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와서 다 함께
남원 육모정으로 해서 지리산 종주도로를 오르기로 했다.
휴식과 종주도로 중 택일 하라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종주도로를 택했다.
어차피 캔지가 이곳을  다시 방문할 가능성은 좀 낮은 편이니
나도 지리산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래 실로 간만에 육모정 쪽으로 해서 종주도로를 타고
성삼재 즈음에서 석양을 볼 생각으로 출발했는데...

육모정 지나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고 계기판의 엔진온도가
H 부근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긴장했다.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차 안은 경치를 구경한다고 즐겁고...
최대한 천천히 산을 올랐다.
계속 계기판을 보면서 중간 귀착지인 정령치휴게소 직전의
급경사를 아주 천천히 오르며 나 혼자 간이 콩알만 해졌다.
(제발 조금 만 더... 일단 쉬면서 엔진을 식히고...)
그리고 극적으로 H에 도달한 계기판보며 정령치휴게소 주차장
턱을 넘어 서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은 연기로 자욱해졌다.
그리고 차는 멈추었다.
엄청난 연기가 앞대가리에서 품어져 나왔고 차 안은 한 순간
멍해질 수밖에...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사람은 나 뿐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는 어리둥절한 차 안의 분위기...

"우리 차야..."

핸들에 고개를 쳐박고 나는 비장하게 내 뱉었다.







그리고 구름과 산안개가 몰려 왔고 산 아래와는 완전히 다른 날씨가
전개되었다. 일단 차를 열어서 상황을 살폈다.
냉각기 계통 다 날아갔다. 일단 보험회사와 우리를 구조하러 올 차량을
수배해야했다. 그러나 핸드폰은 아예 안테나가 뜨질 않는다.
이리 저리 안개가 몰려 오는 정령치휴게소 주차장을 이동하면서
전화를 시도했다.
그때 일행들은...







우리집 손님들의 특징은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먹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 인호형!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다시 시도.

"형! 전데요, 지금 정령친데요. 차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여곡절 끝에 인호형과 보험회사에 연락하였다.
보험회사와 인호형과의 교신을 위해 나는 계속 전망대쪽에서
몇 분만에 옷이 축축해지는 구름 속에서 핸드폰만 부여잡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날은 어두워졌고 무엇보다 항상 이 지리산 북서사면은
기상변화가 심하다.
그러나 마이&캔지는 도무지 불행해 뵈질 않는다.
마누라는? 이런 상황을 계속 디카질 중인 것이다.






지니가 알라딘의 램프에서 나올 때의 소리와 연기 사태는
한시간 정도 경과한 후, 역시 남원에서 견인차가 올라오는 것으로
일단락났다. 해발 1,170m 에서 견인당해봤나?
퇴근하고 운동하러 가기 직전이었던 인호형은 난데없이 애마를 끌고
구례에서 정령치로 오는 난리통의 구원투수로 등장했고
구례의 퇴근 하려는 카센터 직원을 잡아 두고 우리 차량 상태를 전하고
부품대기, 사람대기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음... 한국적 해결방식이었다.
무엇보다 남원으로 가는 것이 경제적인 해결책이었지만 바로 차를
고쳐서 계속 놀아야 한다는 명제가 더 긴급했던 것이다.
보험회사 기본 서비스 10km 를 훠얼씬 벗어난 곳까지 메르세제스지만 아반떼는
실려갔다. 그 견인차에는 내가 타고 인호형 차에는 언화와 마이&캔지가
실렸다. 가자! 우리의 본부 구례로. 일단 가면 뭔가 해결될 것이야!

구례에 도착했을 때 이미 8시가 넘은 상태였고 카센터 직원은 퇴근이
중단된 상태이라 기분 좋을리는 없지. ㅎ
바로 진단 나오고 수리에 돌입.

캔지 / "지금 바로 수리한다고?"
마이 / "한국에선 원래 그래."







원래 저녁밥은 봉동리키친에서가 원칙이지만 이미 시간이 지났고
나는 저녁상을 준비할 여력도 없는 상태였다.
조만간 소개할 새로운 발굴 식당
'전주미가(061-783-8362 / 콩나물국밥, 강된장비빔밥 등... 화엄사 방면 도로변)'에서
밥을 먹었다. 원래 이 식당은 다음날 점심으로 기획하고 있었는데... -,.-
차량은 수리해서 카센터 앞에 두기로 했고 우리는 이동해야했으니
당연히 인호형은 계속 인질 상태에서 김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 후 쌍산재로 이동. 지리산형과 결합해서 술자리를 가졌다.
나으 제 45회 생신기념파뤼였다. 물론 사람들은 몰랐지만.
쌍산재 주인장은 이제 암담할 것이다.
"자주 놀러 오세요." 라고 말했는데...
나는 쌍산재가 시킨 그대로 하루에 평균 3회 정도 방문하고
내 손님들의 찻집이자 술집화 되어 가는 현 상황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6월 5일, 그 인상적인 하루가 저물어갔던 것이었다... -,.-
"어무이!"







잠을 잤다기 보다 집으로 돌아 온 우리와 손님들은 기절을 했을 것이다.
물론 차는 찾아서 왔지... 놀아야니까.
오전에는 계산리쪽 강을 따라 드라이브 하다가 보성강으로 올라갔다.
돌아오는 길 원두막에서. 원두막엔 중국집 전화번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역시 한국적인 장면의 진수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차를 좀 진정시켜야함에도 문수골 700m로 올랐다.
사실 지난 저녁의 '펑!' 사태는 나만 알고 있는 원인이 있다.
나는 지난 겨울 부동액 넣을 때 말고 지금까지 냉각수를 확인하지 않았다.
차는 지난 밤의 수리 사태에서 흘린 오일류 등으로 가열되면 계속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괘안아. 메르세데스자나. 우리 차야! 2편이 발생하면 인호형한테 다시 전화하면 된다니깐!"







요놈들 많이 컸다.







문수골 형의 계곡으로 갔다.
꽃잎이 흘러내려가고 있었고 물은 차가웠다.
탁족. 후...







캔지는 이곳을 좋아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어차피 지역 개발 프로젝트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 이곳의
풍광과 농업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심히 재미있었쏘이잉!







다슬기집에서 좀 늦은 점심 먹고 이 부부들은 서울로 갔다.

"가을에 교또에서 보자. 식당 좀 알아두고이잉."
"슨배. 재밌었어. 우리 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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