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13


일전에 마이와 함께 방문한 캔지씨로부터 구례 방문 소감에 관한
메일이 간접적으로 전달되어 왔다. 메일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왜 이곳으로 내려왔나?"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유독 뭔가 정리된 이유가
없는 듯 하다. 뭐 그것이 항상 논리 정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시 '나부터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
나와 주변이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첫 걸음은 나부터 행복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행복에서 내가 주체가 될 수 없다.
주변의 행복 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이다.
행복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감정인지,
어떤 추상적인 마음 속의 충만감인지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을 문자로 표현할 때,
'아, 행복해'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느낌의 이름이 '행복'인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그 느낌을 더 자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한번
분석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것이다.
결국 이곳에서 그 느낌을 더 자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직관이 강하게
작동해서 구례로 내려왔다고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참으로 허술한 나의
구례行의 철학적, 사회적, 경제적, 그 모오든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 따위 분석을 하고 있겠나.
그냥 좋은 것이지.

24시간 행복할 수도 없고
365일 행복할 수도 없다.
어제 오후에만 해도 나는 불행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가까운 이들의 불행한 상황을 전해 들었을 때 나 역시 불행한 감정에 지배 당한다.
통화를 하다가 벽에 기대어 놓은 문짝을 놓쳤고 유리창이 깨어졌다.
전기공과 통화가 되지 않아 연이어 기분이 좋지 않았고
깨어진 유리 파편을 치울 생각을 하니 짜증스러웠다.
작업 진도도 형편 없었다.

오늘 나는 몇 차례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이른 아침에 오미리 사무실로 출근했다.
일부러 상사와 하사마을을 거쳐 오미리로 들어왔다.
짙은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그 공기의 color는 명백하게 녹색이다)
'아, 좋아!' 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9시 무렵까지 인터넷을 켜지 않고 작업을 우선했다.
그래서 부진했던 어제 진도를 어느 정도 만회했다.
주변 할머니들에게 '장에 가실 분들은 10시 까지 집합!'을 외쳤다.
두 분의 할머니를 모시고 장으로 갔고 국밥을 먹고 다시 할머니들을
태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댓가로 나는 오늘 감자와 양파와 살구를 얻었다.
나는 할머니들과 나의 거래가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 차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할머니들은
미루어 두었던 마늘, 양파, 설탕 등을 모두 한포씩 구입해서
아방떼 트렁크에 담아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살구 몇 개를 얻었다가 집에 있는 과일순이가 생각나서
옆집 할머니 마당에서 시작하여 골목으로 뻗어 있는 아주 큰 살구나무 꼭대기에
대나무 작대기를 넣어 흔들었다. 한번 후려칠 때 마다 길 바닥으로
살구가 쏟아져 내렸다. 경사로를 따라 굴러가는 살구들을 포획하기 위해
대나무 작대기를 골목 어귀에 장벽처럼 막아 두었다.
살구나무를 흔들기 조금 전 까지 나는 분명히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오가며
맥박수를 높이고 있었다. 백개 정도 되는 살구를 포획해서 살구나무 주인 할머니와
이웃 할머니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 평생에 처음으로 살구를 직접 따 본 경험이었다는
경이로운 행복감이 느껴졌다.
좁은 사무실에 오후 내내 살구향이 지천이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정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새로움이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새로움은 web2.0 이 아니라 이런 것인 듯 하다.
하여, 나의 구례 살이는 캔지씨가 짐작하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보다 넓은 범주에서의 행동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기약하지 않고, 좀 더 나의 감정의 범위를 확산해 나갈 생각은 있다.
그러다보면 캔지씨와 나의 생각은 일치할 것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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