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7/06/19

2007.6.19


반백수가 6월 포스팅 갯수가 좀 부족하다.
갯수 따지냐? 따진다.
가능하면 매일이라도 이곳을 채우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자 하기에 그렇다.
나는 습관맨이기 때문이다.
작업이 바쁜가?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작업 자체만으로 이곳을
건너 뛰는 경우는 초를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없다.
뭐랄까... 정신이 좀 산만했다.

장모님은 작년에 이곳을 처음 방문한 이후 구례를 유난히 좋아라 하셨다.
내 알기로는 여행을 다니신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가을 무렵부터 이곳에서 사시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 오셨다.
내 의견을 심히 많이 염두에 두시는 듯한 장모와 큰 딸의 분위기였지만
큰 사위의 입장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사시고 싶다면 사시면 되는 것이다.
같이 살아도 관계없지만 매입할 때 부터 제법 늙은 사위가 오뉴월 염천에
빤스만 입고 방과 화장실을 들락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도의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집을 구하는 문제가 생각 만큼 쉽지 않았다.
돈이 풍족하다면 모든 상황, 모든 장소에서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
일찍 혼자 되어 두 딸과 아들을 키워오신 분이 뭔 여유가 있겠는가.
집과 땅은 많고 돈은 적다.
우리들 집 문제로 지난 1년 동안 드라이브를 겸해서 이 마을 저 마을 들쑤시고 다녔다.
우리는 항상 제로 상태이니 사실 집을 알아본다는 것은 별 강력한 의미는 없다.
이를테면 정말 마음에 드는 뭔가가 나타나면 도시로 나가서 편의점 몇 개 털어보거나
마음에 드는 집의 주인을 살해하는 방법 정도가 방안일 뿐이었다.
하지만 장모님 집 구하기는 일정한 액수를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선에서
물색을 해야하니 실전이다.







시골집이란게 그렇다.
빈집은 많다. 하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시골 빈집들은
도시로 나간 자식들에게 꼭 '팔아야 할 경제적 가치' 가 빈약하고
가지고 있자니 간혹 신경 쓰이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아주 간혹, 도시로 나간 이들이 돌아올 최후의 방벽으로
남겨 두어서 매매가 성사되지 않기도 하다.
적당한 산수 속에서 마음에 드는 몇몇 쓰러져 가는 농가들이 있었지만
주인과의, 정확하게는 도시에 살고 있는 후손들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나 매매 의사가 없었다.
구례에서 표준적으로 가장 비싼 마을은, 읍을 제외하면 사무실이 있는
오미리로 보면 될 것인데 이게 다 그놈에 조선 최고의 명당설,
'금환락지'설에 기인한 탓도 많고 사실 오미리 자체를 보면 살고 싶게 생기기도 했다.
오미리도 장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평당 15만원 보면 된다.
시골 땅값은 그 마을 논값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더 비싼 땅도 있다.
골짜기 쪽으로는 이곳도 1억 2억 정도씩의 집터와 집들이 있다.
주로 별장이나 민박집으로 활용하는 경운데 나는 이런 살이를 '주민의 길'이라
생각하지 않고, 골짜기는 도시인들도 많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 열외다.
다음으로 제법 한다하는 마을이 상사마을이다. 장수마을로 유명하고 물이 좋다.
쌍산재가 있는 마을이다. 쌍산재를 알게 된 것도 상사마을의 위 사진 속의
집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장모의 큰딸은 상사마을에
어머님을 모시기로 작정했고 상사에서 결판을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략 2개월 정도 실랑이를 벌였나? 3개월 정도 걸렸나...
여튼 마을 약간 윗쪽에 위치한 이 버려진지 10년이 지난 집을 수리해서
일단 사시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돌아다니다 보면 '수리해서 살 수 있는' 집은 드물다. 거의가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상황의 집들이다. 허물고 다시 짓는다면 재료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최소한 평당 200만원은 들어간다. 벽돌집의 경우. 조립식 주택보다 싸다.
15평 정도 지어도 집짓는데 3천만원은 최소한 소요된다.
땅값은... 뭐 상사마을 같은 경우는 7~10만원 정도 보면 된다.
이곳을 보시는 분들 중 누군가 '시골에 가서 산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니 이런 이야기들도 정보 차원에서 나열한다.
그러면 서울에 앉아서는 이런 식의 산수를 할 것이다.

- 우리집 전세금이 5천만원이다.
- 상사에 100평 짜리 땅을 사면 1천만원.
- 15평 벽돌집(시골에서는 가장 흔한 집의 로망) 짓고 마무리하는데 3천만원.
- 아니, 1천만원 남자나?
- 된다! 서울 반지하 탈출!

그러나 시골 땅이란게 서울이나 인근 한적한 택지 처럼 그렇게 마련되지 않는다.
밭이나 논이 딸려 있기 마련이다. 집만 달랑 매매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결국 매매의사 없는 이 집을 수리해서 몇년간 사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매매는 힘들어도 이런 방식이 가능한 집들은 제법 많이 있다.
물론 상사마을에는 집주인과 접촉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협의할 수 있는, 현재로서는 마지막 남은 케이스다.







5월 23일.
사무실인 헨젤과 그레텔의 집이 오미리로 배달되던 아침에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서도 집수리 공사가 시작되었다.
사무실에서 차로 이동한면 3~5분 거리.
지난 일요일에 장모님이 이사하셨으니 한달 가까이 집수리를 한 것이다.
막상 공사 시간은 1주일이면 되는 것이었지만 시골일이라는 것이 또 그렇다.
마침 모심기철이다. 인부들은 자신의 논 모심기도 해야하고
그래서 사람 구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그럴 듯한 건설회사에 맡기면 일주일에 끝이 났겠지만
비용을 줄이려면 그것도 여의치 않다.
설비 오야지를 한 사람 물색하면 그 사람이 줄줄이 미장, 보일러, 전기, 목수...
이어진다. 한 공정이 끝나면 다시 며칠 기다리고 하는 식으로 시간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3배나 늘어났다.
그리고 최초 목표 비용 보다 2배로 끝이날 것이란 예상도 비교적 적중한다.
도배, 장판, 기타 소소한 부분은 내가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림반푼어치도 택도 없는 헛소리. 날 더워지고 공정 늘어지니
방수(처남이 전문가다)와 칠을 제외하고는 결국 다 한팀씩 맡겨버렸다.
처남과 처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지만 부산에 존재하니
시작부터 이곳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선포를 해두었다.
자칫 사공이 많아지면 대략 좋지 않다.

이런 일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대략 앞으로 진행할 일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는 쌓인다. 하지만 진행 과정 자체가 피곤하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느린 진행, 늘어나는 비용, 마음에 들지 않는 일처리, 시골이라는
환경에서의 cancel의 힘겨움, 선택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자재 조건과 모델...
대세에 지장 없다면 웃고, 기분 좋게 일하고 빨리 지불하는 편인
내 방식 때문에 장모의 큰딸은 간혹 속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수리는 끝이 났고 대략 모두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정리되었다.
나의 지난 한달 가까운 시간은 이사한 오미리 사무실과 상사마을
집수리 현장, 읍내 집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다닌 시간들이었고
여타의 진행 하는 작업들이 지진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쌍산재 주인장은 여러 팀들을 연결해 주는 도움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쌍산재 사이트 개편 작업이 아직 완료되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다. ㅎ







지난 일요일인 17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부산을 떠나 장모님은 구례로 오셨다.
큰 딸과 사위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조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이런 결정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떠날 때 나는 좀 비장한 기분이었고
서울에서 구례로 떠나올 때 나는 서늘한 뒷통수와 따뜻한 앞통수를
동시에 느꼈었다.
장모님은 이른바 쿨한 스타일이다.
좀 골치 아픈 스타일이다.
평생을 도시에서 사셨고 젊은 시절엔 직장 여성이었다.
시골장이란 것을 작년에 이곳에 오셨을 때 처음 보신 분이다.
심한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이시다.
이곳은 전라남도 구례이고 상사마을은 오씨 집성촌이다.
외지인들은 가능하면 집성촌 보다는 여러 성씨 모여 사는 마을이 편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2007년 현재, 대한민국 시골마을에서
그것이 과연 뭔 소용 있는 격언이겠는가.
구례는 3만 좀 넘는 인구이고 인구의 35%는 65세 이상이다.
장모는 올 해 칠순이 되셨다.
상사마을의 어르신들은 전부 프로농부들이고 장모는 냉이와 엉겅퀴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방문하시는 마을 사람들과 당분간 계속될
반복된 질문들 속에서 장모는 힘들 수도,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밤에 장모와 장모의 큰 딸은 비로소 새 집에서 첫 밤을 보내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모기와 각다구 육백만 마리와 파리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TV 불빛 정도에 의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집정리의 피곤함으로 이곳 어르신들 처럼 아홉시 뉴스 시작과 동시에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오미리로 오셔서 앵두할머니의 하나 남은 매실 나무에서 매실을 땄다.
이 역시 장모로서는 평생에 처음인 일이다.
청매실 농원의 제품 매실액기스와 직접 따서 담은 매실원액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도시와 전혀 다른 정서와 환경 앞에서 당신은 아주, 아주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 나가야 하며 많은 것을 새로이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들이 작년에 처음 내려와서 느꼈던 것 처럼, 일상의 층이 아주 다르게
바빠지고 자연의 시간을 온 몸으로 느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마당을 꾸미려면 아마도 1년은 걸릴 것이다.
적은 돈과 느린 시간을 활용하는 작전을 구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쉬엄 쉬엄, 천천히. 그나저나 약속한 대나무 대문과 대나무 담벼락,
자갈로 채운 출입구, 잔디밭, 옆과 뒷마당은 블럭이나 적벽돌로 마감하고...
아씨 언제 다 하지...
이번 주말 즈음에 떡과 수박 몇 통을 마을 정자에 내어 놓을 것이다.
상사마을에서 진행될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김.수.연 여사의 구례입성을 축하드립니다.
상사마을 입구에는 쌍산재에서 만들어 놓은 수련밭이 제법 넓지요.
흰색이랍니다. 가을에는 백련차가 가능할 것입니다.

스페셜루다가 쌩스 투,
집 확보에 결정적 도움을 주신 오.덕.수 어르신
여러 가진 도움을 제공해 주신 쌍산재 주인장 오.경.영 님
행정적인 문제와 기타 도움을 주신 상사마을 오.철.수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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