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6 21:54

五美洞日課 / 신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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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2601.jpg



626일 오후.

읍내 어느 인쇄소로 나간다.

그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그 발성의 부드러움으로 인해

샌니임~’으로 들린다. 아주 급할 때는 회장님이라고 불렀던 적도 있다.

아주 급할 때란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경운데 이를테면,

인쇄물 표지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이거나 사진에 뽀샵질을 해야 하는 경우다.

그는 어린 시절 문선공에서 출발해서 마스타인쇄의 전성기 시절에 고향에

조그만 인쇄소를 차리고 돈을 좀 만진 듯하다. 그러나 세월은 무상하여

마스터인쇄는 추억의 한 자락이 되었고 옵셋을 넘어 디지털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다음에서야 군청이나 의회에서 관내 업자들 로테이션

방침에 따라 의회 자료집 따위를 맡게 되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경이

되어 버린 세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세상은 그의 기능과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불신지옥이 되어 버린지 오래고 그는 예수천국의 독실한 백성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정확하게는 그의 낡은 마스터 기계와 작두 형의 제단기를

보았을 때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그 기계들이 하도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셔터를 부르는 자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그는 나에게 별 다른

아우라를 느끼게 하지는 못한 탓에 기술 점수 9점에 예술 점수 3점 정도의

편차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8월 즈음을 예정으로 새롭게 진행할 책의 성격 상

어쩌면 그를 구체적으로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그의 전화를 받는다. 어찌 그리 한 번 방문하지 않는가 라는

정겨운 타박과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살테니 가게로 한 번 들리라는 참으로

고전적인 초대의 말씀이 항상인데 그때 마다 나는 다음 주에는 한 번이라는 뻔한

소리로 1년을 넘기곤 했다. 마침 얼마 전에는 축협 하나로 마트 계산대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반색하며 김밥집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오후에는 언제나처럼 나의 필요에 의해 그의 가게를 참으로 오래간만에 찾았다.

일천 장 정도의 출력물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항상 미색모조지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아는 나는 그에게 많은 양의 출력을 부탁할 요량인 것이다.

인출기에서 10만 원을 찾아서 봉투에 담고 그의 가게에 들어서자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내용의 말로 나를 맞이하고 일천 장의 복사를 처리하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달달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에게 나는 약간 별종의 인간형으로 보이는 듯했다. 하긴 나에게 그도 그러하다.

일은 금방 끝이 나고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그는 테이블 옆의 신문지 두 장을 펴서 익숙하고 야무진 손놀림으로 일천 장의

A4 복사지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박스에 담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노끈으로 포장된 신문지를 역시 야무지게 묶었다.

이상하게 그의 그런 동작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참으로 오래간 만에 보는 포장이다. 수십 년 전에는 그렇게 포장을 했었다.

읍내 한갓진 낡은 인쇄소 테이블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나이가

중학생 정도로 느껴졌다. 그는 내가 건낸 봉투를 한사코 거절했다.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반반씩 합시다로 타협하고 다음에 짜장면 한 그릇 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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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어진 2015.06.27 13:13
    감정 이입 제대로 됐어요^^
  • 4dr 2015.06.27 19:14
    음... 이 댓글에 대한 재치 있는 대댓글이 뭐가 있을까...
  • 비눗방울 2015.06.27 21:26
    와 마스타인쇄~!
    전 그쪽일은 암껏도 모르지만 부산골목길을 좀 누벼봤던 그때에
    대체 저게 뭐지? 할 정도로 많던 그 이름이네요
    저 작은일에도 이런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분이 더 대단하신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부는 아닌걸로~!
  • 4dr 2015.06.29 00:49
    향수가 불러 일으켜진 것인가요. 흠...
    아부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곳이죠. 여기는.
  • 미야씨 2015.06.30 09:59
    저는 왠지 아름다운 풍경같은 과거가 사라지는 안타까움?? 뭐 이런생각이 드네요.

    친정동네에 빼곡하던 마당있는 알만한 할매들이 살던 정겨운 다가구 주택이 사라지고
    아파트에 익숙해진 젊은사람들이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이사오곤 할때마다
    또는 옆옆집에 원룸같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설때마다 그런생각을 했더랬죠.
    친정갈때마가 같은 위치에서 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두고 싶다...라는 생각.
    하지만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는...다녀올때마다 아차~!! 하고 무릎을 치는 것밖에는....^^;;
  • 4dr 2015.06.30 17:44

    한 장이라도 찍어두세요. 나중에 자료가 됩디다.

  • 서연아제 2015.07.02 16:14
    마스타는 7080회관에서 올갠치는 삼춘아닌감
  • 4dr 2015.07.03 08:53
    그렇긴 한데요... 심야식당에서도 마스타고요.
    기계나 사람이나 처지는 비슷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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