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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내는 방식은 사이트에서 이미 공개되었던 원고를 취합, 재편하는 일이다.

따라서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사이트에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수정과 새로운 글 두어 편이 추가되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 사이트 글을

인쇄용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원래 원고보다 줄어든다. 특히 사진은.

책장사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공개되어 있는 것이 판매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예고편처럼 맛보기만 보여주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편집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항상 지금 당장 공개되지 않을 글을 나는 쓸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러하기도 하다.

보다 더 노골적으로는 지금 당장 공개되지 않을 글을 쓸 필요가 있나?’가 정확하다.

지난 1주일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원고를 뽑아 낼 궁리를 했지만

생산량이 시원찮다. 역시 지금 당장 공개되지 않을 글을 쓸 필요가 있나?’ 라는

오랜 습관이 가장 큰 장애다. 오늘에서야 겨우, 각기 다른 두 권의 책 프롤로그 원고를

1차 완료했다. 60매와 80매 정도니까 대략 140매 정도를 쓴 것 같은데 일단 여기까지

두 권의 진도를 같이 나갔고 8월말 까지는 한 권을 완료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힘들게 쓰여 진 글은 읽기도 힘들다. 쉽게 쓰여 진 글이 읽기도 편하다.

일단 오늘 프롤로그를 원고를 공개하지만 최종 탈고 때 힘을 좀 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책에 대한 원고 공개는 없을 것이다.

나도 이제, 지금 소용되지 않는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훈련에 돌입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 그로부터 여덟 번째 봄이 지나고

 

착륙 -

2006530일 아침까지 서울 연신내 골방에서 컴퓨터를 켜 두고 있었다.

작업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로부터 24시간 후에 나와 마누라는 전라남도 구례군 읍내에 있는

서울우유 대리점 2층에 이삿짐을 풀고 있었다. 사다리차가 아닌 레커차 와이어에 위태롭게

매달려 올라오는 냉장고 뒤로 노고단이 보였다. 그것은 참 생뚱맞은 이미지였다.

와이어에 매달린 냉장고, 창 밖 멀리 지리산 노고단, 그 그림 속에서 나는 면장갑을 끼고

냉장고를 붙들고 있었다. 지난 48시간 동안 수면시간은 4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와이어에 매달린

냉장고는 분명히 현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지?’ 라는 의아함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200661일을 기준으로 나는 마흔넷의 결혼한 남자였고 늙은 웹디자이너이기도 했다.

그런 사실은 2014년 현재까지 유효한 사실이다

 2006년을 분기점으로 이전 6년과 이후 8년 동안 나의 직업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사는 곳이 바뀌었다.

서울에서 전남 구례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것은 내 기준으로 보자면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에서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으로 이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 구체적인 생각이나 긴 시간의 고민

그리고 치밀한 준비를 하면서 도시에서 시골로 거처를 옮긴 것이 아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서울에서 살아봤자 나의 살림살이가 그다지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확하게는 지금의 생활수준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려면 그에 걸 맞는 모양을 갖추어야 했다.

뭐 흔히들 그러하듯이 사무실을 마련한다거나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업종으로 밥벌이를 전환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나는 그런 예정된 수순을 진행할 의지가 희박했다. 화폐와 스트레스를 교환하는 것이 과연 남는 장사인지,

무엇보다 내가 그런 경쟁에 뛰어들기에 적합한 인종인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살아 온 이력을 살펴보면 대충 답이 나오는 일이다. 그런 경우 나는 난 할 수 있어라는 식의

결심을 하기 보다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잠깐의 외면은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거듭하는 수인囚人의 시간을 벗어나는 지름길이었고 눈앞에 닥친 일,

이를테면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을 준비하지?’와 같은 미션을 해결하고 나면 밤이 오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가 지나간다. 매일 매일의 일은 수북한 상태였다. 코앞의 일들만 스쳐지나왔는데도

마흔이 넘어버렸다. 비슷한 일상을 지내다보면 남은 나의 시간도 흘러 갈 것이다.

순간과 일상은 충분히 재미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데 굳이 애 써 조금 더 먼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나의 지금을 갉아 먹는 짓이다.

대략 여기까지가 나의 2005년 봄까지의 사고방식이었다. 이후로 극전인 사고의 전환이 있었느냐?

아니다. 그런 사고의 연장선에서 나의 거처를 옮기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사를 가자.

어디로?

시골로.

?

생존비용이 저렴할 것 같으니까.

 

그러나 이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진술하면 조서를 꾸미던 수사관은 얼굴을 찌푸리고

까치발 타이핑을 멈춘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것이다.

 

그것뿐이야? 더 극적인 이야기나 반전은 정말 없는가?

없다.

소비만 하는 도시에 환멸을 느꼈나?

원하는 만큼 소비할 형편이 안 되어서 억울할 다름이다.

느린 삶을 추구한 것 아닌가?

내 스스로 생각이 빠듯한 사람이다. 특히 느린 것 참지 못한다.

지속가능한 거시기 같은 거에 관심이 꽂혔나?

그런 말은 시골에 내려와서 주변 사람들 책꽂이에서 봤다. 모르는 말이다.

 

20063월에 서울 전월세 집을 내어 놓았고 5월에 구례읍내에 방을 구해 두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이사했다. 이삿짐을 푼 다음 날 인터넷은 연결되었고 이틀 후부터

당시 개인 사이트에 구례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 정리로 며칠을 보내고

어느 정도 세팅이 완료되었을 때부터 이전 6년 동안 해왔던 웹디자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과 다른 미술관 전시회 사이트를 주로 맡아서 진행하던 시기였다.

구례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밥벌이로서 그런 작업들은 계속 되었다.

장 뒤뷔페, 마리오 마리니, 뭉크&롭스, 소정 변관식, 아람미술관의 모딜리아니,

예술의 전당에서의 클림트, 아시아 리얼리즘

어쩌면 여러분들이 한 번 정도 보았을지도 모르는 입장료 비싼전시회 사이트들은

구례에서 디자인되고 업로드 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제법 재미있었다. 와이어에 위태롭게

매달려 올라오는 냉장고 뒤로 노고단이 보였던 것만큼 생뚱맞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하게 바뀐 것은 모니터에 코를 쳐 박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면 베란다 빨래 사이로

손바닥만 한 하늘이 보였던 서울 시절과는 다르게 시선을 가로 막는 건물 없이 멀리 노고단이 보였다.

서울 시절에는 세 평 골방에서의 재택근무였지만 구례에서는 십오 평정도의 사무실을

혼자 사용해야 했다. 집과 사무실은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였기에 구읍의 정취를 느끼며

느린 걸음으로 출퇴근하는 맛이 있었다. 그 이외에 일상이란 것은 서울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부부싸움의 주제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서울 일감을 받아서, 서울 돈으로 먹고 살았다.

엄밀하게 분류하자면 나는 사는 곳의 사람들과 같은 리그에 속해 있지 않았다.

먹잇감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면 같은 리그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 사람은 뭐해서 먹고 사나?’ 라는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정체불명이며 그래서 더욱 외지 것일 수밖에 없다.

 

 

잠입 - 마을

읍내에서의 생활은 어느 정도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나름 인구 과밀지역(일만 명 정도)이라 원래 살던 사람들이 볼 때에는 관광객인지 외지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이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시골, 즉 면 단위 마을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웬만해선 마을길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마흔 중반이 되었지만 확연하게 젊은 놈에 속하고

당분간 요시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놀이터 지리산닷컴(www.jirisan.com) 사무실은 20075월에 읍내에서

오미동으로 옮겼다. 작은 밭을 임대하고 그 땅에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던져 놓은 것이다.

문제는 거처하는 집이었다. 읍내에서의 살림이 예정보다 길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에 빈집이 많다는 이야기는 완전한 헛소리다.

시골에는 빈집이 가끔 있지만 수리 없이 즉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빈집은 없다.

남자 홀몸이거나 경제적으로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골의 모든 빈집

수리를 필요로 한다. 도시적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 비용이 일천만 원 넘기기는

담배 한 갑 사기보다 쉽고 이천만 원 넘기기는 잠시 한눈팔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읍내가 아닌 인근 면 단위 시골마을에서 집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매매가 아닌 임대에 그렇게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소리는 수리 없이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을 마침내 구했다는 뜻이다.

20086월이 시작 되는 날 읍내에서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는 이미 구례군민이 된지 만 2년이 지난 때였기에 나름으로 협소한 인맥도 생길 무렵이었다.

이삿짐을 푼 상사마을 이장님은 진작 인사를 나눈 사이고 마을청년회의 몇몇 사람들도 안면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우선 취해야 할 외지 것으로서의 행동은 마을 <청장년회>에 가입하는 일이었다.

시골마을의 청장년회는 명문화된 조항은 없지만 대략 육십 세 이하면 모두 청장년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오 년 정도, 예비군 끝난 민방위 상태 같은 기간을 보내고 나면 육십오 세부터 마을 노인회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런 것 꼭 가입해야 되나? 물론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왜 마을의 그런 직능단체 및 상조회에 가입을 하느냐? 어울리기 위해서다.

형식 속에 들어가야 발언하고 들을 수 있다.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살던 시절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교회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나는 칩거하거나 은둔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다.

그런 타입 이었다면 어차피 지리산 자락인데 산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빨치산이 발견되지 않는 지리산 자락은 산으로 올라갈수록 지가地價가 더 비싸다.

그렇다고 토굴을 파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웹디자인이 주요한 밥벌이 수단이고 토굴은 인터넷 전용선 서비스가 힘들다.

 

청년회에 가입하자마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마을 일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았다.

당시 마을 이장은 마흔 초반이었고 청장년회는 젊은 이장을 중심으로 발언권이 짱짱했다.

마을 역사상 그런 시절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시골마을에 투입되

예산의 성격과 집행 방법이 최소한 한글파일을 만질 수 있고 메일로 첨부파일 정도는 보낼 수 있는

능력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 예산에 눈이 밝은 사람들이

마을로 돈을 끌어 올 수 있었기에 시절에 맞는 기획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마을 일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변화의 와중이었기에 나는 마을 일에 소용될 수 있었다.

잠을 자는 마을인 상사마을과 사무실이 있는 오미마을은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예산을 같은 시기에 지원받았다.

지원액으로 보자면 마을 당 대략 20억 원 정도일 것이다.

녹색농촌체험마을, 행복마을, 지리산권문화관광마을그것이 2008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이니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마을은 극심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을신문, 마을 사이트, 마을 브랜드, 몇몇 농산물 판매 등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외지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 마을에서 모두 <개발위원>을 경험하고 있다.

시골마을 개발위원회는 회사로 보자면 일종의 임원회의에 해당한다.

마을 대소사를 결정하는 의결 권한을 가지고 있다. 나의 업무는 모두 시각적인 영역의 일이라

뭘 해도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그 과정의 이야기는 나의 책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나름 시골살이 시즌1’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을을 향한 내 언행의 목표는 마을의 이윤이 중심이었다.

그것이 마을에 이로운 사람이라는 평판을 위한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마을을 홍보하는 온오프라인 도구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었고

매체에서 접촉해 왔을 때에도 마을을 촬영 장소로 소개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마을로 어차피 투입이 결정된 예산에 대해서도 가급이면 실질적으로 소용될 수 있는

기획이 되도록 관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내 행동의 결과가 그래도 악화를 지양하고

양화를 구축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2년여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 내가 관여한

두 마을의 행복지수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없던 분쟁이 생겨나고

어제까지 잘 지내던 사람들이 오늘부터 갈라서는 꼴을 자주 보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을에 예산이 투입되면서 부터이다.

마을 주민 전체 모임 행사에서 밥을 할 수 있는 사람 즉, 자발적 부역이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일백 인분의 식사는 면 소재지 식당에서 배달되었다.

인건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마을을 위한 행사에 품앗이를 동원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충격이었다.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이어졌던 문화가 깨어진 것이다.

나는 나의 실수와 잘못을 비교적 순순하게 인정을 하는 편이다.

포기를 패배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더 나빠지거나 되지도 않을 일은

포기가 빠를수록 좋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었던 일들이 많았지만 개싸움도 많았다. 본능적으로 예산과 관련한 마을의 결정에

나의 책임이 더해지는 경우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개발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방법으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 혼자 놀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면서 내가 이른바 예산사업과 만날 일은 없었다.

앞서 언급한 미술관 등의 일에서 사이트 제작비용은 주로 스폰서나 공동주최를 맡

 언론사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직접 관청과 결재를 두고 대면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나는 개인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급이면 프리랜서로서

원천징수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인구 이만 칠천 명 정도의 마이크로 지자체를 굴리는 돈의 대부분은 예산이다.

시골에서 액수가 짭짤한 견적의 일은 예산사업 이외에는 없다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니다.

마흔 중반까지 도시에서 내가 만난 공무원의 수는 교사를 제외하면 열 손가락 안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면서 나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는 공무원들과 점심 약속을 한다.

특별한 일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 생태지도가 그러하다. 이만 칠천 명 정도의 인구 중

유관 기관까지 해서 공무원의 수는 육백 명 정도이다 보니 확률적으로도 그렇다.

구례의 점심 밥그릇 숫자를 이천 그릇 정도라고 한다. 월급쟁이들 기준일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 온, 몇 권의 책을 쓴 사람은 시골에서 먹어주는대우를 받게 되고

마을 일이나 관청의 필요에 의해 간혹 차출당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골 인맥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두 자리 억 단위 예산이 지원되는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얽히고설킨다.

20121월에 마을반찬사업 1억에 대한 쇼핑에 부득이하게 긴급 투입되었다.

마을에 분란이 생겼고 이장은 교체되었다. 잠시 행정공백이 있었다. 이월된 예산은

소진해야 하고 돈을 쓰지 못하면 담당공무원과 마을은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쇼핑 목록을 작성해야했다. 2주일 만에 쇼핑하고 납품 업체들로부터

증빙자료 받고 인터넷으로 구매한 소액 물품들은 내가 디자인한 스티커를 부착해서

포장디자인항목으로 정리했다. 그 지출자료는 내가 가진 개인사업자등록증을 사용했다.

물론 그 과정은 상의할 수 있는 마을개발위원들에게 보고하고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쳤다.

마을반찬사업 1억 지출을 담당하면서 나는 한 업체 당 스무 장 정도의 서류를 중간에서

정리해서 제출해야 했고 총괄 이백 장 정도의 서류를 담당공무원에게 만들어 주었다.

왜 그런 서류들이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짜증도 자주 내었지만

담당은 알고 지내는 면 출신 후배였다.

그 일이 끝나고 나는 수년 간 내가 가지고 있던 개인사업자등록증을 없애버렸다.

관청 일이란 것이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지긋지긋했다. 내가 자료를 끊을 수 있는 근거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 말은 시골에서 내가 제법 짭짤한 견적의 일을 수의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잘라버렸다는 뜻이다. 나는 토지와 집을 소유하지 않았고 소속된 영농조합법인이나 작목반,

지역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설립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관청의 예산을 직접 지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가 된 것이다. 그런 결정으로 인한 불편함은 지금까지 겪고 있다.

자초한 일이고 현재로서는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유지할 생각이다.

서울에서 시골로 거처를 옮긴 이유 중 정색하고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기존 시스템과의 거래를 내 삶에서 줄여나가는 것도 포함이 된다.

그들이내 삶에 영향을 끼치거나 결정권을 행사하는 꼴을 가급이면 줄여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몇 개 월 지나고 마을의 후배가 웃으며 말을 전해줬다.

 

형님 욕하는 사람도 있습디다.”

누가?”

읍내 동아식당서 막걸리 마시는데 옆자리서 형님이 오미동 반찬사업으로 떼돈 벌었다고

 

마을회의에서 투입되는 예산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경우 대개는 총대를 메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젊은 사람들은 점점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총대 메면 돌라 묵었다(횡령)’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어느 시점부터 나도 의도적으로 개발위원회를 두 번에 한 번 꼴로 출석했다.

참석해도 밥 먹자는 발언 이외에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지가 없다

노골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주소지를 상사마을에서 오미마을로 옮겼다.

오미마을회관이 새로 지은 한옥으로 옮겨 가면서 원래 사용하던 마을회관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로부터 제안이 있었고 본질은 일종의 이적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상사마을 개발위원을 그만둔 것이 어제인데 나는 다시 오미동 개발위원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혼자 놀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마을과 함께 기획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마을과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그 결정과정이 지난하고 결정이 결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 이야기 할 적에 나는 없었어야!” 라는 큰 소리 한 번이면 이전 회의는 도루묵이 되곤 한다.

마을 일은 몇 년간 예산지원이라는 땅 짚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렇게 지원받은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본적은 없다. 나랏돈이니 재산상의 손해를 볼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눈 먼 돈이다. 그러나 운신의 폭은 제한되는 돈이다.

마을의 요청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아니라 결정된 예산을 어느 마을이 지정당하는일이다.

이런 예산의 특징 중 하나는 하드웨어는 좋아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관청이나 담당 공무원의 한계를 지적하기 전에 어쩌면 마을회의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가령 소진해야 할 오천만 원의 예산이 있다. 내가 그 예산으로 마을 CIP를 포함한

마을안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돈을 사용하자고 설득하는 일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충돌에 가까운 일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칠순 노인들이다. 이때 마을정자 개보수론이나 담장보수론이 등장하면 나는 백전백패다.

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만화 이끼에 등장하는 이장 정도의 권력을 가진다면 가능하다.

현실에서 힘드니 만화나 영화로 만든 것 아닌가.

간섭받지 않는 놀이 방식이 필요했다. 그 고민 속에서 만든 것이 이른바 맨땅에 펀드.

1년 만에 운용기금을 모두 소진하는 이 펀드는 농산물, 농부, 시골마을에 연간 1구좌 30만 원이라는 돈을

투자하고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배당받는 펀드다. 외형적으로 농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펀드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으니 농사 결과에 따라 단 한 톨의 쌀도 배당받지 못할 수 있는

투자위험 완전 1등급 펀드다. 이 펀드의 두 가지 특징은, 소비자가 생산자(공급자), 품목, 가격에 대한

선택 또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과 사이트를 통해서 주 단위 펀드 상황을 중계한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항상 자신의 돈이 어떻게 허망하게 소진되는지 사이트를 통해서 목격할 수 있다.

이 펀드는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 보다는 대한민국 농촌 현실이라는 콘텐츠를 팔아먹는 일이었다.

맨땅에 펀드 2012는 일백 명의 경제 개념 없는 투자자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했었고

맨땅에 펀드 2013은 삼백삼십사 명의 투자자를 유치했다. 상징적인 1억 원을 채우는 것으로

투자자 수를 제한했다. 이 야릇한 펀드에 가입하기 위한 경제 개념 없는 투자자들의 문전성시로 경쟁률은 3:1 정도였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나는 1년 동안 1억 원의 돈으로 대리쇼핑을 할 수 있는 툴을 기획한 것이다.

오미동의 연간 농산물 판매(정부수매가 주축이지만) 수익은 1억 원을 넘지 않는다.

마을과 함께 기획하지 않지만 마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재미로만 충만할 것 같았던 2년 동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많이 지쳤다.

외부적으로 비춰지는 성공 이미지 이면에는 그늘이 있었다. 그리고 눈덩이는 구를수록 덩치가 커진다.

눈덩이가 더 커지기 전에 나는 갑자기 멈추어 섰다.

내 삶의 근본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지경이 되어서는 곤란했던 것이다.

그것은 시골살이 시즌3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요구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I'll be back? - 다시 나로부터

나는 아침이면 편지를 보낸다.

운영하는 사이트인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에서 내가 거의 매일 하는 일은

얼굴 모르는 지리산닷컴 주민들(우리는 회원을 주민, 회원가입을 전입신고라고 표현한다)에게

아침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그 편지의 상단 귀퉁이에는 ‘ps 행복하십니까라는 헤드카피가 새겨져 있다.

물음표 없는 행복하십니까는 절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있는 지리산닷컴 주민들의 일상적 안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근본 방향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물론 정해진 답은 없다.

정답은 제 각각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생각한대로 살고 계신가요?” 라는 질문이

좀 더 노골적인 의미일 것이다. 제 각각의 상황에 따라, 그 편지를 받은 어느 아침의 기분에 따라

편지 내용보다 헤드카피에 시선이 머문다는 답신을 간혹 받는다.

시선이 머문 그 순간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잠시 주변의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소리와 행동을 멈춘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를 보는 것이다.

어쩌면 지난 8년 간 나는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기준을 설정하고 마을과 사람들을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할 것이야가 그 허상의 주춧돌이었을 것이다.

그런 설정은 마치 어른들이 만들고 어른들이 골라주는 어린이 책과 같은 것이었다.

넌 이것을 좋아할 거야’, 아니면 넌 이것을 좋아해야 해!’ 같은 것.

요즘 나는 내 일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여 지는 방식과 보여 지지 않는 방식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나를 드러내는 일은 나의 생계를 위한 매출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아가는 쉰이 넘은 디자이너는 당연히 노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생각을 시각화하고 그 결과물을 팔아먹는 방식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장담하기 힘들다면

마을의 대평댁이 대평댁으로 살아가듯, 지정댁이 지정댁으로 살아가듯 일상의 고단함을

일생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방편을 강구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 몸은 너무 게으르고 몸으로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불규칙했고 불안정했고 그런 나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살았고 그것을 즐겼다.

이런 나를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나는 여전히 생존 자체 또는 수단에 관한 고민이 아니라 생존에 임하는 자세 또는 태도에 관해 고민한다.

그것이 어느 방향이건 결심한다고 그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또는 어디로 튀건 어차피 나 일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인생 핏fit이 간지 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틀림없다

 ‘나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우리를 양 손에 올려놓고 가늠한다.

아홉 번째 김장 전에 결정해야 할 문제다.

 

 

 

 

 

 

 

 

4dr@naver.com

 

 

 

 

  • 무중 2014.08.05 12:21

    꼬불쳐 두시기 전의 마지막 글이라 그런지 더 맛있어요.^^

    이장님 글은 인터넷과 책으로 몇 번씩 봐도 재밌어요. 곳곳에 와사비와 초고추장이 숨어 있다고나 할까.^^

  • 4dr 2014.08.06 01:03

    몇 번씩 보면 아무래도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완전히 꼬불쳐 두기야 하겠습니까. 지 버릇 개 못준다고...

  • 까칠한콩쥐 2014.08.05 22:24

    어느날 부터 이가 시렸는데...'곧 괜찮아겠지~~' '곧 괜찮아져야해!'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오늘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사진을 찍고 제 이를 살펴보던 의사샘 왈~~1번 임플란트 2번 신경치료 중에서 선택하라고...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고 하려다...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 그냥 신경치료(완치확률50%)로 선택해서 치료를 받았답니다.

    어찌나 아프고 힘들던지...T.T (신경치료는 처음이었거든요)

    앞으로 한달 정도는 더 고생해야하고...생각지 못했던 목돈이 또 들어가네요.

     

    아...정말 인생은 불확실한 선택의 연속!!!

     

     

  • 4dr 2014.08.06 01:04

    좋은 의사네요. 역시 도시야!

    여기는 바로 뽑아요. 걍. 신경치료 귀찮아서 대부분 살릴 가망 없다고 주장함서 걍 뽑아요. 무서버요.

  • 파르티잔 2014.08.06 11:00

    읍내 사무실에서 오미동 여기 저기에서 뵈었으니 꽤 오랜 인연이군요.

    저도 여전히 생존 자체 또는 수단에 관한 고민이 아니라 생존에 임하는

    자세 또는 태도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피곤합니다. ㅎㅎ

     

  • 4dr 2014.08.06 13:59

    2006년 가을 무렵인가 처음 보았지요. 아마. 읍내에서.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수단에 집중하세욘.

  • 앞산곰이 2014.08.06 12:31

    생존자체 또는 생존수단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사는 저를 포함한 범속한 도시인들이

    생존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늘 고민하시는 이장님의 삶에서 위안 또는 대리만족을 얻게되서 고맙지만

    이제는 이장님의 생존수단과 노후도 고민하셔야 할거 같은데..  ㅎ 이거 너무 주제 넘은 건가...

    여튼 어제 뵙게되어 반가웠고요..  말씀하신대로 8월.. 대구에서.. 연락 주십시요..   

  • 4dr 2014.08.06 14:01

    대구에서 녹색당으로 시장 출마 하는 것으로 수단을 작정해 보려구요. 힛.

    8월엔 대구가 최고죠! 8월 대구 번개!!!

  • 나무와숲 2014.08.07 10:17

    이런 긴 글은 모니터로 보기 힘들어 지네...흠흠.

    눈도 아프고, 사무실이라..


    책 나오면 찬찬히...

  • 4dr 2014.08.07 19:39

    ㅎㅎㅎ 중간에 사진도 없으니 더 그렇죠.

  • ok3eboy 2014.08.11 12:02

    이탈-혼자놀다의 글의 상황을 저도 경험해봤네요.

    '결정이 결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와 '수니파와 시아파의 충돌'은 공감 100배!

     

    책으로 나오면 소장하려 구입하게 될텐데

    맨땅이 펀드와 같은 요절복통 분위기는 아니겠군요. 쪼금 아쉽습니다 ^^

  • 4dr 2014.08.11 16:16

    저 심각하고 무거운 사람입니다.

  • 비눗방울 2014.08.12 21:27

    거기가서 반찬장사 하면 갑부가 될까요? 우히힛~~ㅋ

     

    누가 그러더군요

    사람사는데 다아~ 거기서 거기라고..

    사실 시골이 돈에는 더 야박 할 수도 있다고

     

    이나이가 되서 인심과 돈은 다른거란걸 몸소 느끼고 살지요

    소태보다 더 쓴 인생살이에 말입니다

     

  • 4dr 2014.08.12 21:32

    이 시장의 주요기능은 돈벌이로 보이지는 않아요.

  • 송's 2014.08.14 12:55

    책 출판 후 연재했던 내용은 비공개로 돌리면..좀 야비한가요?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하더라구요.

    혹시 새로 나올 책에도 사진이 실릴 예정이라면 편집자에게 잘 전달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색감 좀 예쁘게 잘 빼라고. 책으로 보는 게 편집이나 가독성 면에서는 좋은데. 사진 색감이 사이트에 못 미쳐서 늘! 늘! 아쉽습니다. 색감이 늘 칙칙해요. 책은. 

  • 4dr 2014.08.14 19:12

    야비하다기 보다는 그냥 성격 차이?

    사진은 아무래도 모니터가 좋겠죠. 빛으로 보는 것이니. 인쇄는 그러니까... 운이어요  ㅎ

  • 대구이씨 2014.10.04 21:40
    이 움직임에도 곁눈질 한 번 요

    http://jirisanproject.net/
  • 4dr 2014.10.05 01:48

    그 일에 엮일 뻔 했는데 다행스럽게 만나지 않았지요. 제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일이죠.

    일부 사람들은 제가 저런 일을 좋아할 것이라 짐작하더라고요. 전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저런 류의 행사 기획을 보면 토 나옵니다. 이 댓글을 다는 중에도 화가 나려고 하고요.

    저게 도대체 뭐하자는 짓인지. 점잖은 사람들의 자위행위죠.

  • 대구이씨 2014.10.05 10:51

    ㅎ 그제 얼마나 고리타분 할란가 확인차 

    산내에 들렸죠 

    뭐 그랬죠

    담에 격하게 함 토 하시죠 얼글보고

    저는 아직 탐색 모드

  • 4dr 2014.10.05 11:55

    주범들은 아는 人들이어욘. 대구 이씨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니니... 생각해보니 좀 그렇네요. ㅎ

    송구하니 말이 길어지려는데... 다음에 기회 있을 때... 꾸벅.

  • 진토 2014.10.13 16:38

    그렇군요..맨 정신에.도 토가 가능할 만큼 .. 아이쿠..동감 토! 라고 해야나 아님 토2? 토3?..

  • 4dr 2014.10.13 18:54

    여튼 뭐 싫다는 이야기죠.

  • 게꿀 2014.10.13 00:48

    뭔가 한번 뒤집어 보겠다고 했는데 그럼 뒤집힌거야?

  • 4dr 2014.10.13 18:49

    다시 본문을 읽을 수 없으니 뭔 말인지 모르니 걍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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