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1 02:58

雜說 /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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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평온했다.

영후는 멀리 있지만 객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조카들이 왔고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캐나다에 있는 누나와 자형은 언제나처럼 명절 아침에 전화가 왔고 안부를 나누었다.

자식들이 모두 미국에 자리 잡은 자형에게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흰소리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끈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종수님은 사십 년 교편생활을 지난여름에 그만 두었지만 역시 그녀의 역할을 포기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명절 아침 밥상에서 사촌 형은 언제나처럼 술을 모두 비웠고

평생 그의 삶을 강제한 견고한 도그마가 뱉어 내는 굳어버린 언어를 출력했다.

두 조카는 학생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했던 모양이고 고민 중인 문제를 의논해 왔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맏며느리 역할에 충실한 형수는 이제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린 듯해 보였고 형은 아이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여전했다. 그리고 여전히 제법 힘들게 당면한 일상의 긴장을 붙들고 있었다.

잠시 본 처제는 자라지 않는 큰 녀석과 빠르게 자라는 작은 녀석의 틈바구니에서도

견고해 보였으니 역경이란 참으로 상대적이란 생각이 만 번째 찾아왔다.

그 모든 사람은 집 밖이 주요한 일상의 무대이고 단 한 사람, 어머니만 집이 주요무대다.

며칠 전에 잠시 김치 담는 법을 잊어버린 어머니의 근황을 전하는 형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예정을 예감하며 나는 잠시 심장을 앙다물었다.

명절의 정해진 프로그램은 한 치 오차 없이 순서대로 진행되었고 저녁이 되었을 때 나는

형의 책장 앞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생각해 보면 명절 저녁이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연 중 나의 유일한 독서 순간이다. 지난 설에는 김훈의 흑산을 읽었다.

이번 추석에 내가 집어 든 책은 역시 김훈의 공무도하였다.

어느 때보다 더 건조한 문체로 이어 나간 삼백 쪽 넘는 문장들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소설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은 영혼이 빠져 나간 자신의 시신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으로 글을 쓴다. 그의 문장에서는 푸석거리는 먼지가 일고 핏기 없는

갈라진 입술의 여인이 보인다. 명징해서 더 아프지만 결국 그의 연민은 절절하다.

나는 나의 글에서 나를 놓지 못하기에, 김훈의 글은 문장이고 나의 글은 소리다.

화요일 오후에 돌아왔고 수요일, 온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True Detective라는

팔 부작 드라마를 보았다. 영상은 김훈의 문장을 닮아 있었다. 무대는 루이지에나였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 머릿속에 듬성하게 자리 잡은 지 제법 오래 된 영화가 한 편 있다.

무대는 물론 구례다. 구례는 채도 짙은 풍광을 찍기 좋은 마을이다.

부산과 소설과 드라마 속에서 한 결 같이 가족이 보였다. 존재로 부재로.

가족은 견고한 무리다. 그 견고함을 부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살아야겠다.

새벽 세 시네. 젠장.

 

 

 

 

 

 

 

 

4dr@naver.com

 

 

 

 

  • 문인화 2014.09.11 10:05
    역경은상대적이라는것 그 견고함을 부인할 수 없기에 사셔야겠다는 글이 마음으로다가오네요 이장님의 지난시간들이 글에 뭍어나는군요
  • 4dr 2014.09.11 22:01

    특별한 것은 없죠. 대부분 경험하고 그렇고 그런. ㅎ

  • 미나리 2014.09.12 07:36

    메튜 맥커.....라는 배우같은데..장면을 보면 기묘하고 예술적 가치가 드높다고 평가되는 덴마크 감독이 첨 떠올랐습니다만 아닐듯합니다.

    그담에는 ....뿔때문에 작은 울타리 우리 때문인지 동물보호? ^^  저 장면인지 사진인지 출처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궁금해서..^^

    대부분의  영화속에 가족의 얘기는 나오는듯합니다. 가족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것 같아요..

    소설이 젤 재밌는듯합니다.. 영화만큼요. 현실도 소설이나 영화같긴 해요 ^^

  • 4dr 2014.09.12 09:34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잡는 두 형사 이야깁니다. 십몇 년의 간극을 두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런 영화에서 얻을 교훈은 없지요. 킬링타임용이고. 영상미가 좋구요. 연기도 제법. 미국판 살인의 추억?

    이 드라마의 매력은 전개가 아주 느리다는 점입니다. 사진은 처음 발견된 희생자의 모습이구요.

    물론 범인도 가족이라는 저주 또는 보호 속에 있고 기독교가 뒷배경이지요.

  • 미나리 2014.09.12 11:25

    기독교가 뒷배경이인 그런 영화  괭장히 많죠...

    어쩌다 지루하다싶은건  참을수 있어요...기꺼이

    영상미는 정말 좋아보여요  시체라고 말하기가 싫었습니다...그냥 모른척...하고싶었던 제가 좀 웃기긴 합니다만 ^^

    아이가 화면을 잠깐 봐버려서 사슴이라고 급히 말했습니다...

    괭장히 잠깐동안 우울해했어요..아이라서 ^^

     

    검색해보니 정말 싫어하는 배우가 나오는데 이런류에는 어울리고 그전에도 찍은적이 있었죠 보면 가슴이 터질듯한 영화한편이 있습니다....러브스토리에 이배우 나오면 절데 못봐요..^^

    원작에서 유재하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대체 가능한 다른음악이 없을듯한 느낌이들정도...

     

     

  • 4dr 2014.09.13 00:49

    결국은 취향의 문제라...

  • 파르티잔 2014.09.12 09:58

    김훈 글이 좋아 열심히 탐독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땡기지 않는군요.

     

     

  • 4dr 2014.09.13 00:47

    불감증이라...

  • 재활중 2014.09.16 16:23

    명절의 분주함을 본지 같습니다. 친척간의 교류가 그다지 많지 않은 집안의 가풍(?)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번 추석도 읽자는 의지로 Real 관심 가는 하나 정도의 외부 약속 외에는 고립모드로 돌입.. 허나 ~~ 읽히더군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선택을 못한 저를 탓할 밖에..^^;

  • 4dr 2014.09.16 23:02

    선택이 문제가 있엇다면 바로 접어야지요. ㅎ. 저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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