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1 21:21

雜說 / 편지-02

4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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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家族 또는 식구食口

 

 

영후에게, 그리고 오늘 편지는 영찬과 영무에게 메일로 함께 보낸다.

오늘은 할머니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해야겠다. 지난 추석에 영찬이나 영무는 집으로 돌아왔으니

여름 동안 할머니가 보인 몇몇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6월 작은집 제사 때만 해도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기에 큰 아빠가 나를 눈짓으로 불러서

들려 준 이야기는 나 역시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소리였다.

몇몇 이야기들 중에서도 여름 어느 날, 김치 재료를 거실에 널어놓고 두어 시간 동안 김치 담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멍하게 앉아계셨다는 소리는 듣는 순간 무슨 결정적인 증거 앞에 할 말을 잊은

범인처럼 다리가 풀렸다. 할머니 연세 금년으로 칠십칠 세시다.

명절이 끝난 다음, 큰 아빠가 부산에 있는 관련한 병원 중 가장 큰 곳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갔지만

예약부터 원하는 검사까지 한 달 정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혜 아빠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의 병원으로 바로 진료를 잡았다. 영찬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924일에 할머니와 삼촌은

서울에 있었다. 진료만 하고 바로 내려와야 했었기에 학기 중인 영찬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신경과와 정신과 두 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신경과는 치매에 대한 진단을 하고 정신과는 우울증

여부에 대한 진단을 한다. 통상 하루에 끝나기 힘든 진료와 검사를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오전부터 몇 시간 동안 밀어붙여서 진행했다. MRI 촬영이 끝나고 오후 2시 무렵에 두 과의 소견을 모두 들었다.

치매초기 증상이라는 신경과 소견을 들었다. 가벼운 우울증이 있다는 정신과 소견도 들었다.

두 의사는 모두 내가 하루 전에 병원장을 통해서 전달한 할머니의 간략한 라이프스토리와

최근 몇몇 현상들에 대한 프린트 물을 진료기록지 아래에 깔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전달한 것은 문학이 아닌 팩트fact’ 중심의 글이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일은 끝나고

할머니는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나는 남부터미널에서 구례로 제 각각 내려갔다.

 

해질 무렵 서울의 불빛이 하나 둘 발화할 때 빠르게 흘러가는 고속도로 풍경에 머리를 기대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신경과 의사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고 해석했다.

담당의사는 아니지만 역시 신경외과 전공인 원장의 의견도 되씹었다.

설문방식의 서류와 묻고 답하기 방식, MRI 촬영 결과를 두고 진단을 한다.

모니터에 MRI 화면을 띄워 놓고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시커멓게 나온 부분은 뇌세포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다른 장면을 보여주면서 좌우대칭의 해마 모양 부위를 설명했다. 주변으로

역시 까맣게 나온 부분은 죽은 세포라고. 해마라는 놈은 기억력을 담당한다고 했다. 할머니 연세에 비해

전반적으로 죽은 뇌세포의 면적이 약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류와 묻고 답하기 검진 결과는

MRI 촬영 결과보다 좋다고 했다. 치매 진단을 여섯 단계로 나눈다고 했다. 5, 6단계는 확실한 치매,

1, 2단계는 양호한 상태. 할머니는 3, 4단계에 해당하는 치매 초기 증상으로 보인다는 의견이었다.

아주 초기 증상이라 일찍 잘 오셨다고 했다.

치매예방약을 복용하면 대략 7~8년 정도 지연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치매인지 아닌지 불확실 하군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는 아이고 내가 치매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의사가 의학적, 임상적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했다고 생각했고 할머니는 치매라는 표현 자체에 무게를 두었다.

진료 중간에 내려와서 상황을 지켜 본 원장은 점심과 커피를 함께 하는 동안 의견을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것이 위로의 말씀인지 냉정한 의견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몇 년 동안 치매에 대한 진단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고 했다. 방어적 진단 추세 때문이기도 하고

치매예방약의 비용과 제약회사와 병원의 관계 등에 대한 구조적 문제도 언급했다.

원장의 의견은 우울증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치매 아니야, 외로우신 거라니까였다.

할머니의 증상에 대한 나의 판단에는 희망또는 두려움이 개입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문가 의견보다 나의 느낌에 디딤발을 두고 있다.

이것은 외과적이거나 내과적인 장면이 아니다. 사람의 머리와 마음에 대한 판단이다.

그것이 우려스러워 미리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A4 두 장의 서머리summary를 전달했지만

몇 장의 뇌 사진과 수십 문항의 설문, 십여 분의 묻고 답하기로 칠십칠 년 인생의 지금

판정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구례까지의 세 시간 십 분 동안 내 머리에 머문 생각은 주로 가족이었다.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너희들, 영찬, 영무, 영후에 생각이 많이 머물렀다.

그것은 가족으로서 너희들의 시간이 너희 앞 세대보다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정할 수 없는 제 각각의 시간을 소진하고 나면 우리는 과거가 될 것이고 너희는 여전히 현재일 것이다.

시간은 미래를 향하지만 우리는 할당받은 미래를 과거로 만들어 가고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우리 가족이 엄청난 고난에 맞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힘겨움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다르니 그러하다. 나는 통상 최선보다 최악과

대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나의 태도에 대해 캐나다 고모는 최선을 목표로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가벼운 타박을 하기도 했다.

같은 부모에서 생겨났지만 이렇듯 생각을 조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하여간에 나는 우리가 고난의 가족사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세상의 모든 가족은 그 정도 아픔은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이었기에 아프기는 했다.

 

내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대학 후반기였을 것이다.

나이로는 대략 스물 대여섯 무렵이었다. 이미 영후나 조카들이 알고 있듯이 나는 일시적 운동권이

아니라 다소 직업적 운동권을 지향했다. 그런 불안정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역사 공부를 한다.

현대사의 어느 대목을 실감한다는 것은 우리 세대조차 힘들다.

꼰대들의 고리타분한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씀은 그저 빨리 끝나야 할 잔소리에 불과했다.

영찬이 영무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서류상으로 너희들의 친삼촌이 아니다.

삼촌은 너희들 증조할아버님의 네 아드님 중 둘째 아드님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있다.

물론 얼굴 한 번 뵌 적 없고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분이다. 할아버지의 둘째 형님이지.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네 분의 형제가 계셨고 할아버지가 막내였다. 할아버지의 첫째와 둘째 형님은

1953년 전쟁 말미에 빨치산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너희들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선산은

지리산 동쪽 자락이다. 그때 이미 네 형제분은 편모偏母였다. 해질 무렵이었다고 하는 데 여름 초입이라

마루에서 저녁밥상을 받다가 일을 당했다고 한다. 그들은 식량을 구하러 내려왔을 것이다.

몸을 피했지만 총에 맞았고 둘째는 그 자리에서 장남은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집에서 내가 유일하게 양력 생일상을 먹는 것은 두 분 중 한 분의 기일과 겹치기 때문이다.

내가 양자라는 처지를 실감한 것은 부선망독자父先亡獨子사유로 현역이 아닌 방위 판정을 받았을 때였다.

나는 그 유명한 전설의 육방이다. ‘앗싸!’ 했지. 도시락 싸다니면서 6개월이면 빨래 끄읕~’이니까.

어쩌면 그때 내가 이 집 아들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기도 했다.

또한 대학에서 학점 2.0만 넘기면 등록금이 면제되는 보훈대상자였다. 그때 ?’ 라는 생각을 했고

집안 이력을 알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나에게 2.0이란 학점은 넘사벽이었다.

어느 해 추석에 성묘를 갔을 때 내가 별 생각 없이 절을 올리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누워 있는 땅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았다. 이태의 남부군이라는

책에서 언급되는 이른바 빨치산 루트에 해당하는 지명 속에 선산이 있다. 나는 이미 땅에 누운

이들의 핏줄이었지만 내 핏줄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람들 이야기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아이러니였고 비극이었다. 그때, 역사는 책이 아닌 내 몸 속에 있다는 자각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왔다. 지금의 나는 수백 세대를 이어온 모든 몸과 마음이 담긴 총합이라고.

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총합이 소중한 것이다. 가족 말이다.

 

광안리 소방서 아래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2000년 전후다. 너희들의 경험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1998IMF 사태는 우리 집안도 비켜가지 않았다. 영찬·영무 집은 간명하게 정의하자면 그때 도산했다.

너희들 엄마가 직접 설계했던 언덕배기 그 예쁜 2층 집 서재의 책들이 박스 속으로 들어간 시절이다.

큰아빠는 이후로 몇 년간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 집이 한 집이 되었다. 할머니, 영찬이네, 영후네가 합가했다. 할아버지는 1996년에 별세하셨으니

그 시절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할머니는 자주 하셨다.

큰아빠는 그런 이유로, 나는 이혼을 했기에 변변찮은 살림들을 합쳤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너희들 셋을 돌 본 분이 할머니다. 간혹 있었던 원망과 회한 가득한

할머니 말씀이 싫었겠지만 할머니가 계셨기에 나와 영찬이 엄마가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버스에서 내려 이십 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던 그 어두컴컴한 언덕길에서

나의 발걸음도 지독히 무거웠다.

나는 기억을 하는데 영찬과 영무도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삼촌이 느릿하게 언덕길을 오르는데 저기서 아이들이 치고받고 있었다. 너희들이었다.

영무는 옆에 서 있고 영찬이가 어떤 덩치 좋은 녀석을 두들기고 있었다. 아주 제대로 펀치를 날리더라.

그 아이의 엄마가 등장했다. 당연히 두들겨 맞은 아이의 엄마는 열 받을 수밖에 없고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니들이 영찬이 영무지? 니들 한두 번도 아니고 유명하더라!”

삼촌은 가해자 집안 대표로서 피해자 집안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집으로 걸어 올라갔지. 덩치가 영무를 먼저 건드려서 영찬이가 두들겨 팼다고

변명을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앞 선 증언에 의하면 너희들이 초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삼촌이 너희들에게 그랬다.

잘했다. 형제는 그래야 한다. 앞으로도 누가 너희를 건들면 같이 두들겨 패라.”

그리고 몇 년간 나는 하나의 명제만 가슴에 품었다.

포기하지 말자.”

아들과 조카는 다르다. 당연히 나의 조카인 영찬과 영무는 삼촌이 그 시기에 너희들과 보낸 시간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변명이겠지만 삼촌은 그 시기에 최대한 너희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나름 노력했다. 비록 영찬이가 게임을 멈추지 않아서 컴퓨터 콘센트를 몇 번

뽑은 적은 있지만 함께 해야 할 날은 함께 할 수 있도록 항상 달력에 체크를 했다.

너희들 아버지가 없었던 시기에 삼촌은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할아버지가 그리 하셨다. 머리가 커고 난 이후 나는 너희들 할아버지와 지독하게 불화했지만

광안리 시절에는 할아버지를 많이 생각했다. 그의 술과 폭력의 근원은 바로 가족이었다. 막내로

태어났지만 홀어머니와 자신의 처와 새끼들, 세상에 없는 두 형님의 유복자 조카 둘과 큰 형수님을

건사해야 했던 사람이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고통이 술주정과 주먹으로 돌출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지금 나는? 할아버지를 단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옹이로 남는다.

나는 할아버지의 화난 얼굴만 보았지 그의 쓸쓸한 뒷모습과 갈라진 가슴을 보지 못했다.

물론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같은 것을 한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딱 10초만 서 계실 수 있다면 나는 사랑한다

고급 용어보다 이 말을 하고 싶다.

알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족家族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나는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식구食口: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입 구자다. 같은 구멍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인류학적으로 최초의 가족이 했던 일은 함께 먹는 일이었다.

’, 먹는다는 행위는 행복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 너의 구멍이나 내 구멍이 아니라 우리들의 구멍이다. 그래서 집밥이다.

그래서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살림이라고 한다.

가족은 함께 공간을 하고 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핏줄의 관계망이다.

식구는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쓸데없는 분류지만 우리는 지금 식구로서 밥상은 일 년에 서너 번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한 밥상의 기억은 수백 번 존재한다.

그 힘으로 제 각각의 객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여 앉을 공동의 밥상, ‘돌아갈 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곳은 아파트건 다음 달에 이사할 집이건 위치적 좌표가 아니라 마음의 좌표다.

며칠 전에 캐나다 고모와 통화를 했다. 할머니가 그랬다고 한다.

당신의 정신이 멀쩡할 때 부탁하는데 나중에 절대 자신을 요양원에 넣지 말라고.

나의 늦은 밤은 고모의 늦은 아침시간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나의 밤과 고모의 아침은 부인할 수 없이 슬펐다.

가족은, 식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찬, 영무, 영후. 할머니를 포기하지 마라.

그녀는 머리가 아닌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 치유는 신경과나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없다.

식구食口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ps1 / 오늘 이렇게 아빠 또는 삼촌이 각 잡고 썰을 푸는 이유는 간단하다.

1주일에 한 번씩 꼭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려라. 일상적으로 너희들은 전혀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영후는 군에 있고 영찬, 영무도 객지에 있으니 더욱 안부 전화가 필요하다.

건성으로 전화 드리지 마라. 오늘 있었던 일, 내일 있을 일을 재잘거려라.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더라도 사랑한다는 말도 간혹 덧붙인다면 최선이다.

할머니에게 매주 확인하겠다. 이 미션을 어기는 놈은 이제까지 내가 너희들에게 준

대략 1억 원 상당의 용돈을 3년 안에 상환 받을 것이다.

삼촌은 매일 전화를 드릴 것이다.

지금까지는?

안했다 왜!

 

 

 

 

 

 

 

 

 

4dr@naver.com

 

 

 

 

 

 

 

  • 김용근 2014.10.01 21:25

    실물보다 사진이 잘 나왔어요. 사진발 이장님.....!!

  • 4dr 2014.10.02 10:13

    그럴리가요.

  • 2014.10.01 22:05

    좋아요. 100번 누르고 싶어요.

  • 4dr 2014.10.02 10:14

    어떠케하지...

  • 파르티잔 2014.10.02 13:56

    머리만 짧게 깍으면 지금과 비슷할 것 같군요.

     

    일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에게 전화하기 2년동안 실천중입니다.

     

    별로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그것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하면 할 수록 할 말은 자꾸 늘더라구요.

  • 4dr 2014.10.02 19:50

    길건 짧건 그놈이 그놈인데 당연하죠.

    저는 1주일에 2번 이상 전화를 하시니...

  • 송's 2014.10.02 14:04

    치매는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겨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때를 통칭하는 말로 그닥 큰 일이 아닌데..저희 아버지도 혈관성 치매로 딱 2년 앓고 돌아가셨는데 ..이장님의

    의견에 저는 약간 다른 의견을 보태자면 일부러 살뜰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른이 느낄만큼 챙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그게 가장 중요해요. 내가 아프니까 손주들이 챙기는구나 느끼시면 더 쓸쓸해하실지도 몰라요. 정말 내가 아프구나 도장 받는 느낌이랄까..그래서 저는 일부러 아버지께 장난도 많이치고 농담도 많이했어요. 것도 시간 지나니까 아예 표정자체가 없어지셔서 잘 안 먹혔지만. 미리부터 아프신 분 챙긴다는 느낌으로까지 챙길 건 아니라고 봐요. 자연스럽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중되면 다 눈물이 마를 날 없고, 한숨이 가실 날 없거든요. 제가 뭐라고 하면 맨날 입으로는 '이년이' 하시면서도 만면에 미소 지으셨던 아버지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일부러 농담도 하시고 장난도 치시고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4dr 2014.10.02 19:51

    치매는 아닌 듯해요. 겨울까지 함 보고요. 여튼 알겠습니다. ㅎ

  • 오리 2014.10.03 06:52

    가슴 바닥까지 따뜻함이 차오르네요.

    이름 바꿔요.

    요즘 네 자 이름이 대세이던데 오성권산이나 매력권산으로 ..ㅎ

    따땃함에 대한 답례로..

     

    24476E35542DD676355EE6


    25488735542DD6BE35CBB8


    23791933542DD7183041B3

    마을마다 문 닫아건 콩꽃 핀 가을날.
    數村門掩豆花秋

     

    경남 거제에서


  • 4dr 2014.10.03 15:58

    매력을 숨길 수 없다뉘.

    거제 함 살아보까...

  • 오리 2014.10.04 05:58

    노후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제주, 거제, 남해, 경주를 꼽았더랬습니다.

    때가 오니 땅값이 다락같이 올라버려 그냥 있는 곳에서 죽기로 했습니다.

    그냥 따뜻함은 매력이 없습니다.

    진정한 매력은 따뜻함을 품은 기개에서 나오지요.

     

  • 아원(兒園) 2014.10.05 01:03

    제주, 거제, 남해, 경주 버금하게 좋은 구례..

    구례는 아직 다락값은 아니랍니다. ㅎ

    함 고려해보심이...... ^^

  • 오리 2014.10.05 10:36

    아원님댁 방 한 칸 세 얻는다니까요..ㅎ

  • 느티나무 2014.10.03 10:23

    아침부터 눈물바람 ㅠㅠ

  • 4dr 2014.10.03 15:59

    오늘 확연하게 바람 방향이 서풍으로 바뀌었어욘. 가을 분기점으로 정해도 좋을 바람.

    뭔 소린지...

  • 소리로 2014.10.03 17:16

    따뜻한 마음이 잔잔히 이곳까지, 온 세상을 덮어버리네요


  • 4dr 2014.10.04 00:47

    제가 따뜻한 심성의 대명사잖아욘.

  • 바다봄 2014.10.04 02:34

    부모님이 키운 농산물을 택배로 받아먹고 있는 자식가운데 하나입니다.

     

    몇 해 전 받은 택배 안에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비닐약봉지에 마늘이 담겨서 왔는데,

    부러 그러진 않으셨을 테고, 그 크기가 맞춤해서 그곳에 담아 보내셨을 텐데,

    그 약봉지를 들여다보다 코가 매캐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분은 뇌졸중으로, 또 한 분은 심근경색으로

    평생 약을 드셔야하는 부모를 두고 있는 자식은..

    오늘도 잊지 않고 약을 챙겨 드셨는지 부모를 걱정하고,

    부모는 타지에서 끼니나 거르지 않는지 자식을 걱정하며 지냅니다.

    그것이 천륜으로 얽힌 부모와 자식의 맘이겠지요.

     

    나이 70을 넘긴 이 땅의 부모들 중...

    아프지 않고 멀쩡한 육신을 가진 이 몇이나 될까요.

    모두 한, 두 곳은 치명적이거나 꽤 오랜 고질병으로

    습관처럼 아침, 저녁으로 약들을 챙겨 드실 테지요.

     

    나이 40이 넘어지면서 주변 친구나 지인들과 만나게 되는 자리가

    누구 부모의 장례식장이나 입원한 병실일 때가

    술집이나 밥집보다 많아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듯

    어쩌면 나이든 부모는 자식의 무릎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삶의 이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집 안방 문갑마다 가득한 부모의 약봉지가

    도시에 나와 살고 있는 자식들의 마음에

    토해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명치끝에 체기처럼 걸려있을 지라도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그리 믿으며 사십시다...

     

    이장님께 이 노래를 위로의 선물로...드립니다.

     

     

    http://youtu.be/sjlb_8uaXeI

  • 4dr 2014.10.04 16:27

    그럼요.

    감사합니다.

  • 아원(兒園) 2014.10.05 01:02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가게 되네요..

    꽤 긴 글인데...

    이장님 마음속에 이런 따뜻함이 있는거지요.....ㅎ

    가족, 식구

    힘의 근원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중심이죠...

    조카들이 삼촌의 명령을 거역못하겠는데요.... ^^

  • 4dr 2014.10.05 01:53

    그럼요. 돈이 걸린 일인데.

  • 김은희 2014.10.06 00:06

    가족이란 게 참..어찌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하기도 뭐한 어떤 것인 듯요.. 

    관계라는 말을 하기도 뭐한 뭐 그런...

    아버지가 올해 82이신데 작년 늦봄부터 달라지셨죠. 여름 두어 달 하루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 

    두어달을 기다려 대학병원에 가서 문진 검사를 했는데, 두 달치 약을 먼저 드시고 다시 오라고 하더라구요.

    의사 선생님이 약을 잘 챙겨 드셔야 한다고 당부를 하시더라구요. 엄마와 저는 그 약을 기적의 약이라고 불러요. 

    밤낮으로 계속되던 이상한 행동이 싹 사라졌거든요. 기적일 수밖에요. 

    그리고 나서 MRI를 찍었는데 아직은 괜찮다고 하대요. 그 후 계속 약 처방을 받아서 드시고 있는데,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시는 듯해요. 

    엉뚱한 지하철 역에서 집으로 전화가 두 번 왔고, 두어 번 엉뚱한 곳엘 가셨다가 돌아 오셨죠. 

    얼마 전에 두 번째로 엉뚱한 지하철 역에서 제게 전화를 하셨을 때 전화를 끊고 나서 황급히 나갈 준비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대성통곡을 했어요. 

    마침 엄마는 다행히도 집에 안 계셨었죠.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날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딱히 슬프지도 않은데 나도 모르게 마구 울고 있더라구요. 

    내가 왜 울까, 그러면서 말이죠. 그렇게 울어본 건 아마도 평생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날 이후로 마음이 조금 달라진 듯한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슬퍼서 울었던 건 아니고 너무 쓸쓸해서 울었던 거 같아요. 마음이 너무 헛헛했어요. 그날 이후로 조금 착한 딸년이 된 듯하기도 해요. 아주 쪼금요 ㅎ 

    그런데 신기한 건 그날 통곡을 할 때는 마음이 참 시리고 그랬는데, 그러고 나서는 그 전보다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 듯하다는 거죠. 

    산다는 게 이런 건가봐요. 이러면서 어른이 되는 거겠지요 ㅎ

    쓰고 보니 신세 한탄 비스무리가 되었구만요. 에잇! 

  • 4dr 2014.10.06 01:35

    이미 어른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연식이구요.

    아주 쪼금 착해졌다는 것은 짐작하건데 옳은 평가일 겁니다. 아주 쪼금 이상은 힘든 분이시니.

    며칠 동안 <왕좌의 게임> 시즌1~4까지 40편을 달렸습니다. 따뜻거나 기묘하거나 막장인 가족동화더군요.

    씨족사회가 그리운 가을밤입니다.

     

  • 느티나무 2014.10.06 10:27

    아침에 또 눈물바람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었기 때문에요....

  • 4dr 2014.10.06 18:51

    뚝!

  • 미나리 2014.10.07 12:27

    치매가 그래도 염려스러우시면 혹시 매년 독감백신 접종을 하셨다면 이번 겨울에부터 독감백신은 꼭 안맞는게 좋겠습니다.

    독감백신이 그게 쫌 말이 안되는거거든요..

    지금 이쯤에서 백신이 뇌에 작용하면 불길될지 모르는 연기에 기름을 끼얹는꼴이 될수있어요.

    대신 감기때  대처방법을 적극적으로 하시고 잘 이기시면 될듯합니다.

    이런말은 하기가 참..힘들기도 합니다.. 종교같은 백신 인데다가 노인들은 (특히나 요즘은) 감기를 너무 무서워 하시더군요..

    요즘 선전 나오는 가수광고 그 백신도 물론,, 독감백신만이 문제라는건 아니예요..

     

  • 4dr 2014.10.07 12:31

    음... 보름 후에 만나면 병원장님 잡고 물어보겠습니다. 비교적 실토를 하시는 편이니... ㅎ

  • 게꿀 2014.10.13 00:33

    그 훤한 인물에 머리를 왜 깎고 사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네

  • 4dr 2014.10.13 18:48

    공감하지 않는 모양이죠.

  • 재활중 2014.10.22 13:49

    이장님, 오랜만입니다. 가족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으시군요. 개인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가족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부심, 용기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꼭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더라도 역사책에 들어갈 정도의 역사적 인물들이 아닌 다음에야 가족, 그리고 넓게는 친척들의 history를 나눌 기회가 회자된다면 그리 반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남은 글들도 시간 틈틈이 읽으렵니다. 비온 뒤 하늘이 맑습니다.^^

  • 4dr 2014.10.23 02:29

    자부심과 용기까지요. 걍 주절거리는 버릇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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