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7 00:04

雜說 / Still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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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251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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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601.jpg



2005년 10월 14일에 내 손에 들어 온 기계다.
eMac 이라고 한다. 애플의 마지막 CRT기종이다.
iPod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01년,
iPhone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07년.
그 사이에 만든 기계이니 잡스는 eMac에 큰 애정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나의 밥을 해결해 준 기계다.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포맷하지 않았다.
개 같은 AS 수준에도 불구하고 기계와 시스템의 견고함은 애플의 장점이다.
1994년 첫 컴퓨터로부터 지금까지 나의 작업 컴퓨터는 오로지 Mac이었다.
20년 동안 Mac을 사용해 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진열대의 최상위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 시기 Mac 제품 중 낮은 가격대의 제품만 사용했다.
특별한 철학이 아니라 그냥 형편이 그러했다. 그리고 불만이 없었다.
정말 고사양의 처리 속도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내 기계의 속도에 불만이 없었다.
그래서 내 모니터 사이즈는 항상 작았다. 역시 작아서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편리함을 일상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아주 큰 사이즈의 이미지 작업을 일러스트로 불러들일 때 간혹 긴 시간의 기다림이 있다.
또는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파일은 1년에 다섯 손가락 안이다.
무엇보다 나는 2004년 이후로 영상 작업을 하지 않았으니 절박한 답답함이 없었다.


겨울 동안 난로 있는 앞방에서 노트북으로 글 작업만 주로 했기에 Mac이 놓여진
이 방 책상에는 거의 올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방은 창이 너무 넓다.
그래서 모니터 환경이 항상 난반사로 피곤했다. 골판지로 이리저리 시간에 따라
햇볕을 차단해 가면서 작업했다. 불편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그런
불편을 잘 참고 나의 궁여지책이 큰 문제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잘 참는다는 것은 나의 장점이기도 하고 내 삶의 핸디캡이기도 하다.
내 책상을 본 손님들 중 몇몇은 가볍게 신음을 뱉기도 한다.


“아유, 이장님 컴퓨터 바꾸셔야겠습니다.”
“와! 아직도 이맥을… 당연히 아이맥 쓰시는 줄 알았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오백만 원 이상 작업비용을 받은 몇 번의 일을 할 때 마다
‘이번에는’ 기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용카드가 없고 할부를 하지 않고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몇 백만 원의 기계를
바꾸는 일은 그런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나 그때 마다 나는 항상 일상적 삼겹살과 순대에
눈이 멀어 기계를 교체하지 않았거나 인생사 돌발 상황에 항상 돈을 투여했다.
할부를 하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장만할 때 깨졌다.
컴퓨터보다 훨씬 비싼 기계를 36개월 풀 할부로 내리는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시골에서 차가 없으면 나의 모든 일상이 심대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그 할부가 7월 말로 끝이 난다. 36개월 동안 차의 노예가 되어,
가급이면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버티던 연재 원고도 두 차례 수행했다. 차 때문에.
차를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가 전한 말에 의하면,
“권산이가 오미동서 마이 해 묵고 이번에 차를 바꿨다아~”
라는 소문도 들었다. 「맨땅에 펀드」해서 또 돈을 제법 만졌다는 소문도 들었다.
오미동에 있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또한 내 소유라는 이야기는 직접 자주 들었다.
오미동에서 마이 해 묵고 펀드도 운영하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까지 소유한 나는
계속 컴퓨터를 바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 마다 내 대답은 항상,


“나쁜 소문은 아니네.”


최근에 간혹 iMac Retina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작업자로서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자태의 기계다.
Retina를 채택하면서 망할 놈에 것이 100만 원 더 up되었다.
메모리 보강하고 저장도구 하나 더하고 와콤도 이번 기회에 바꾸고…
저 기계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까?
Mac과 PC를 오가는 일이 귀찮지 않아?
작업 효율이 훨씬 높아질 거야!
27인치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왕좌의 게임>을 보면 끝내 주겠지!


지난밤에는 잠자는 마을에 단수가 되어 오미동 작업장에서 잠을 잤다.
거의 한 달 만에 eMac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
미루어 둔 작은 사이트 디자인을 해야 했다. 사용하지 않았기에 책상은 좀 지저분했지만
해야 하기에 디자인을 완료할 때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아이튠즈 라디오를 켰고 포토샵을 열었고 일러스트도 동시에 열었고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도 해야 했다. 기계는 가끔 몇 초 동안 고개를 저었지만
이상 없이 가동되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밥 시거의 오래 된 노래 <Still The Same>.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흥얼거리게 된다.
아직 그대로냐고 계속 묻는다. Still The Same…
2005년 10월 14일에 지금 사용하는 eMac이 들어 온 날 쓴 글을 찾아보았다.


나에게 기계는 내 식구들의 일용할 양식이자 옷이자 지붕이다.
소중한 것이다. 그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나와 저놈이 함께 혹사하는 수밖에 없다.
몇 년 함께 고생해 보자.


2백만 원짜리 기계는 지난 10년 동안 대략 사오억 원 정도 일을 했을 것이다.
eMac의 주변기들은 더 오래 되었다. 스캐너는 15년 정도 되었을 것이고
와콤은 플라스틱 펜촉이 완전히 마모되어서 한 번 바꾸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에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현재의 물건이다.
필요한 것인가 소유하고 싶은 것인가.
조금 더 같이 가자.






*  <Still The Same>을 듣고 싶다면 여기로  https://youtu.be/jfoufXs01KU


4dr@naver.com



Atachment
첨부 '1'
  • 율이맘 2015.03.17 00:19
    마지막 문장에 초큼 뭉클해집니다.
    그나저나 4월 초에 구례서 한 일주일 지내다 올라고 해요.
    내려가서 뵐게요. 봄꽃 원없이 볼수 있으면 좋겠네요. ^^
  • 4dr 2015.03.17 11:45
    산에사네? 얼라들은? 여튼 오시면...
  • 붕어 2015.03.17 05:44
    음. 나는 반여동 시절, 형이 맥 사자마자 계속 yes 눌러서 거시기 했다는 기억이 문득. ㅎㅎ
  • 4dr 2015.03.17 11:45
    붕어라뉘... 반여동이라뉘... 뭔 쥬라기도 아니고...
  • 월곡 2015.03.17 12:13
    200백만원? ㅎ
  • 4dr 2015.03.17 14:10
    예?
  • 월곡 2015.03.17 20:26
    200백만원이면 2억이라
  • 살진반달 2015.03.17 21:43
    ㅋㅋㅋ 글쓴이는 아직도 모르고 있군효!

    요즘들어 이장님 글이 자주 올라오니 좋네요.~
    이 분위기 쭈~욱 가는 겁니까?^^
  • 4dr 2015.03.17 23:49
    두 분 모두. 아! 수정했습니다. ㅎ
    이 분위기는... 그때그때 달라요.
  • 3류브로카 2015.03.18 22:23
    포기하면 편해...를 꽤 신묘한 인생꼼수라도 되는 양 한번씩 쓱 날리기도 해서, 이제 포기인생족 입문은 했거니 했는데 분명 간판은 지원센터라고 걸고 있는 조직에서, 팀장 완장을 꿰찬 인간이 이 바닥에서 통하는 셈법으로 구구단 이단쯤 되는 사안을 가지고 갑질 비슷한 것을 하며 반토막 말을 찍찍 내뱉기에 한바탕 둘러엎고 닦아세우고 나서 아직도 포기 안되는 나란 인간의 미련에 쳇머리 흔들다가 퇴근하고 들렀더니만 ㅋ 노래가 아주 죽여줍니다요. 반박불가. 맨날 그 꼬라지라니. 오늘 구례는 마을 뒤로 빗방울에 산수유꽃이 노랗게 번져 흘렀겠네요. 손구락에 노랑물 들게 담배나 피우면서 그 비를 봤어야 하는데 전주와서 뭐하는건지...(이번주말엔 방해 안할께요 ㅋㅋㅋㅋ)
  • 4dr 2015.03.19 01:18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만 년에 한 번 정도는.
    이틀 째 쓰는 글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인데...
    글 길이 예정했던 길이 아니라 샛길로 빠지는 통에 고민하다가 그냥 샛길로
    가기로 하고 낮 동안 끄적거리다가 집으로 와서 컴으로 옮기는데
    A로 B를 덮어야는데 B로 A를 덮는 참사를 저지르고 몇 초 동안 망연자실 하다가
    사라진 글이 기억나지 않아 세 시간 정도 악전고투 하고 이러고 있소.
    낮에 저지르고 밤에 반성까지는 아니고 후회 정도 하고
    다음 날,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나’라면
    우리 그냥 편하게 그러려니 인정합시다. 비도 오고 꽃도 피는데 까이꺼.
    토, 일요일 순영이 형 집에서 스무 명 정도 모여 그 영감 농사 이야기 듣는
    자리가 있어 나는 밥하러 가요.
    토요일에 오후부터 밤늦도록 그곳에서 같이 밥 먹고 봅시다. 시간 되면.
    따라서 주말에 나를 방해해도 된다는 정보.
  • 무얼까 2015.03.22 20:27
    저거 버리면 내꺼임.
    이맥을 왜?맥으로. ㅎ
  • 4dr 2015.03.23 18:56
    안 버린다니까!
  • 비눗방울 2015.04.02 15:46
    요즘 물건 별로예요
    지금 30개월 막 지난 폰이 먹통되기 일보직전이예요
    아이폰 새로 장만할려했더니 100만원이 넘는데 다들 말리는게 그 뭐같은 A/S때문이죠
    소위 애플빠가 보면 기절 할 구형이겠지만 스피커 빼곤 깨끗하게 보이는데요

    몇년전에 TV겸용 모니터 하나 해먹었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짝 스크러치 한번 했는데 그게 액정을 완전 깼답니다 겉만 멀쩡한거라고~!
    버리지 않는거에 한표 보탬니다 ㅎ
  • 4dr 2015.04.02 16:10
    아니 너무 오래된 글에 댓글 달지 마셈!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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