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8 13:41

五美洞日課 / 토요일

4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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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901.jpg



토요일. 혼자 국수를 삶았다.
월인정원은 워크숍 진행으로 집 나갔다.
금요일 저녁의 원고 작업 실적은 형편없었다.
할 말이 많은 주제였고 시퀀스는 난무했고 나는 가닥을 잡지 못했다.
2박 3일 동안 글쓰기에 집중할 계획이었지만 하루는 산만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종료하였기에 토요일은 끝장을 보고 싶었다.
국수를 삶으며 전의를 불태운다.
금요일 오후에는 결국 읍내 이정회 내과로 갔다.
며칠째 몸이 가렵다. 벌레? 쥐벼룩?
가려움으로 병원을 간 적도 없고 그 정도 가려움으로 병원에 가지도 않지만
글을 쓰기 위해 국수를 삶듯, 글을 쓰기 위해 병원을 갔다.
알레르기? 내가? 봄철 건조한… 약 받아와서 시킨 대로 조치를 취했다.
가려움이 일단 사라졌다. 그러면 글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TV를 켰던 것이다.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자정이 가까웠다.
샷 추가 아메리카노 여섯 잔 정도를 주입해 두었던 탓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요즘은 모니터를 오래 보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결국 오래 노려보고 있다.





15032902.jpg



국수가 중심이 아니라 이 천연조미료? 여하튼 다싯물을 내는 물건을
테스트하는 것이 국수를 삶은 목적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받은
선물이었기에 몇몇 한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가늠해서 우선 다싯물을 뽑았다.
2분 정도 끓이라는 소리 같은데 정말 2분에 국물 맛이 난단 말인가.
티백주머니 스타일 봉지 하나를 끓는 물에 던져 넣고 잠시 후 맛을 보니,
오! 젠장 이미 국물 맛이 나잖아. 가다랑어 향이 느껴졌다.
4분 정도 끓였다. 국물이 더 짙어졌다. 괜찮다.
돈 안 되는 글 같은 것 말고 이런 거 수입해서 팔아 볼까?
아냐, 여기서 천연조미료를 만들어서 팔아볼까.
그러면 가공 허가를 얻어야 하고 공장과 시설, 표준화…
그냥 돈 안 되는 글 쓰는 것이 좋겠다. 나는.





15032903.jpg



수육 삶아서 국수에 올려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도에서 어찌하건 말건 나는 간혹 수육을 삶으면 식혀서 하루 지나고
그 다음 날 낮에 이렇게 국수에 올려 먹는 경우가 많다.
냉장고를 뒤진다. 무순은 아마도 일주일 전에 우리밀빵 어쩌구 순영이 형 특강 때
남은 식재료로 추정되는데 우리 집 야채 칸에 들어 있네.
기타 등등 자투리 야채 몇 가지 올린다. 그러나 면이 중요하다.
중면을 선호하는데 토요일은 소면을 샀다. 그러니까… 잘 못 산 것이다. -,.-
나는 국수 심이 익기 20초 전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찬물에 행군다.
그것은 삶고 있는 면발을 들어서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20초만 더 삶으면 교과서적으로 잘 익은 상태가 되기 전의 면 상태에서
중단해야 그릇에 담았을 때 적정한 면발을 유지한다.
면발의 적절함은 한 가닥을 뽑아 들고 뺨을 때렸을 때 끊어지지 않으면 된다.
점심이 첫 끼니라 많이 삶았다. 원래 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 먹고 죽는 줄 알았다. 일단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뿌렸다.
더구나 2년 전 순영이 형 고춧가루다. 내 혀를 마비시켰던 그 김장의.
그러나 엄청난 맛이었다는 진실은 은폐하기 힘들었다.
설거지 끝내고 모니터 앞에 정좌한다.
쓴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럭저럭 진도를 나간다. 할 말이 많다.
글의 길이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눈이 피곤하다.
저녁을 어찌할까. 그냥 나가서 사 먹고 올까, 찬거리를 사오나?
그 고민을 하는 중에 습관적으로 쌀을 씻고 있다. 해 먹어야는군.
읍내에 장보러 가기는 귀찮다. 그냥 된장찌개에 스팸.
많이 먹었다. 그 밥을 다 먹을 줄 몰랐는데.
설거지 끝내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끌려간다.
배가 부르다. 잠도 오고. 더구나 11시 5분에 EBS 명화극장을 봐야한다.
두 시간 정도면 한 꼭지 원고를 끝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를 포기할까?
영화 보는 게 좋나, 글 쓰는 것이 좋나?
영화 보는 거.
영화는 자정 넘어 1시 조금 더 넘겨 끝이 났다. 좋았다. 그러나 글을 쓰지 못했다.
잠과 원고 사이에서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다시 컴퓨터를 켠다.
새벽 3시 30분에 항복했다. 끝이 나지 않았다. 아니 끝을 결정할 수 없었다.
40매 전후 한 꼭진데 70매 정도 달렸다. 헛심 원고다.
자체 검열에서 제외된 글들은 다른 목차에서 소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관을 결정.
새벽 3시 30분에 잠시 다시 국수를 삶을까? 하는 갈등을 잠시 겪었다.
낮에 뽑아 둔 국물이 있으니 면만 삶으면 된다. 안 된다. 참아야 한다.
거의 하루 종일 최근에 볼 수 없었던 긴 시간 집중을 했는데도
원고를 완료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밀려왔다. 뒤이어 잠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일요일 아침. 늦잠 알람을 맞춰 뒀는데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지난밤의 마지막 문장이 새 아침에 가장 먼저 머릿속을 점령했다.
밤새도록 잠 자리가 어수선했는데 내가 쏟아 낸 말들의 아우성이었던 모양이다.
일요일 점심은 국수가 아닌 떡라면으로 결정했다.






4dr@naver.com






Atachment
첨부 '3'
  • 무명씨 2015.03.30 09:10
    결국은 멸치똥이라는 민감한 사항을 비켜가시는군요.^^
    그래도 맛나게는 보이네요.
  • 4dr 2015.03.30 10:52
    보궐선거를 앞 두고 민감한 사안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 기타를 타자 2015.03.30 11:49
    일본말로 뭐라고 헌데요?
    제목 기억했다가 일본 갔다올때 사와야겠네요
    티비와 잠과 싸우는건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네요 ㅋㅋㅋ
  • 4dr 2015.03.30 18:37
    일본말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네요.
  • 나무와 숲 2015.03.30 12:35
    좋은 글 쟁이는 좋은 농부 만큼이나 훌륭합니다. ㅎ
    본인이 뭐라 생각튼 간에...
  • 4dr 2015.03.30 18:37
    좋은 글쟁이는 그렇겠죠. -,.-
  • 3류브로카 2015.03.30 18:05

    잠깐 근무시간에 월급도둑질을 하며 땡땡이 치는 중이기는 합니다만 일단 사용하신 국물내기 봉다리에 써진 왜말을 보니 우리가 아는 "멜다구"는 포함되지 않았사옵니다. 반사광 탓에 잘 뵈진 않지만 대략 가쓰오부시 쪼까리와 정어리,멸치와 사촌쯤 되지만 일본국에서는 몸값이 비싸고 대접받는 눈퉁멸(멸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는 청어과랍니다), 다시마, 천일염, 그리고 제품의 차별점이자 단가를 올리는 주력군으로 보이는 "구운 날치(작은녀석)" 가 들어간것으로 쓰여있네요. 따라서 멸치똥 논란은 부질없고 대충 가다랭이국물에 전라도 말로 "디포리" 구운것, 멜다구 사촌을 넣은 정도로 보시면 맞을 것 싶습니다.

    혹 같은 물건을 사고자 한다면 하카다산 "우루메이와시"에 "야기아고"가 들어간 다시를 내놓으라고 상점주에게 빳빳하게 날선 엔화 지폐장을 겨누며 겁박을 하면 내줄듯 싶습니다.

    벚꽃은 피는데 납품단가에 부가세 포함이니 미포함이니로 실갱이를 하며 봄날이 갑니다요 젠장.

  • 4dr 2015.03.30 18:39
    음... 정체가 파악이 되는군요. 언제 한 번 같이 맛 봅시다. 전주에서 출옥하면 기별 주오.
    이곳 꽃은... ㅎ 우리 마당 살구가 가장 장하오. 오늘 밤이나 올리리다. 염장이 되겠지만.
  • 절차탁마 2015.03.30 18:41
    전 아침을 반지락 국물에 소면을 넣어 먹었었는데....
    어쨌거나, 이장님의 강권 혹은 강압에 못 이겨 본 EBS 명화 잘 봤습니다.
    할아버지가 베개로 할머니를 안락사(?)시키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좀 아팠습니다.
    저도 요양병원에 모셔 놓은 모친이 계시고, 주변 특히 가까운 가족들의 눈치없는 질문이나 충고 등이 관계를 틀어 버리는 부분은 참으로 공감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 4dr 2015.03.30 20:39
    영화적으로 예정된 장면이었지요. 한 번 정도는 해봤던 이야기를 실행한 영화랄까요. 여튼...
    자발적 존엄사 인정 여부에 대한 생각이... 그렇습니다.
  • 게꿀 2015.03.31 08:20

    제품이름은 카야노야 다시
    자연주의 레스토랑 카야노야의 날치 구운것을 주재료로 출시한 다싯물입니다.

    http://www.k-shop.co.jp/products/items/syuukan/dashisu1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pk1730&logNo=220105153956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팔고 있네요.
    http://www.gmarket.co.kr/challenge/neo_affiliate/daum/daum_redirect.asp?target=http://www.gmarket.co.kr/challenge/neo_jaehu/jaehu_goods_gate.asp?goodscode=642345138&GoodsSale=Y&jaehuid=200002243&vkey=RLHIS0HZX24SKUXZ3933LKVUU4XMJ4


    서비스영상.... ㅎ

    https://www.youtube.com/watch?v=ocyHab9bAOo 

  • 4dr 2015.03.31 11:49
    다시에 대한 중년 남성들의 욕망이 강하군요.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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