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출옥이다.
처음에는 공판 끝나는 2개월 후에 집행유예로 나올 줄 알았는데 실형으로 6월을 살았다.
오후에 헤아려 보니 840매 정도다. 180일로 환산하면 하루에 200자 5매도 못된다.
하루 5매는 지리산닷컴이 가동될 때 댓글 보다 적은 글 양이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뭔 글을 쓰면서 완료하고 단락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재배치하는 경우도 이번이 처음이다.
늙은 나이지만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글 쓰는 일이 지난 10년 이상 참 쉬웠는데
이번에는 그 일이 참 힘들었다. 15년 이상 앞에 사진을 두고 긴 캡션을 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만들어 온 버릇 탓인지 이미지 없는 빈 한글 페이지 앞에서 나는 지난 몇 개월간
고개를 자주 숙였다. 내일 사이트에 올릴 글도 아닌데 더 목을 죄어 왔다.
글을 위한 글을 쓴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글 쓰는 사람들이
짐 싸들고 옮겨가서 요양하듯이 글과 싸우는 일이 이해되고 그렇다.
작년 10월 이후로 별다른 돈벌이 일도 하지 않았고 내 계좌는 원래 허허로운데
도대체 우리집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복기가 되지 않는다.
2014년은 안식년이라는 휴식도 없는 타이틀 만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해가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전투력과 목적의식을 상실한 일상을 허우적거렸다.
대략 ‘이 책 원고 끝나면…’ 이라는 핑계로 많은 결정을 유보했고 피해왔다.
사람들은 내가 바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나는 사람들의 그런 인식을
그때그때 잘 활용했다. 나는 전혀 바쁘지 않았다. 그저 게을렀을 뿐이다.
그러나 많이 민감해졌고 이런저런 조건과 환경에 대해서 까탈스러워졌다.
그러나 일단 출옥이다. 젠장. 이제 어디서 무슨 핑계를 찾을 것인가.
글 감옥 벗어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유보한 몇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결정을 내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렇고 그런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어쩌면 지난 16개월 동안 그런 훈련도 되었다. 실제 대상 불문하고 많이 귀찮고 그렇다.
실질적으로 개점휴업 상태인 지리산닷컴을 어찌할 것인지가 아무래도 당면한 결정이다.
양치기 노인 짓을 몇 번 해서 이제 뭔가를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도 힘들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귀해서 다시 습관을 들이는 방법이 가장 무난할 것이나
무슨 일을 벌일 수 있을지는 스스로 미지수다.
점심 무렵에 마지막 원고 끝나자마자 어찌 알았는지 부탁 파일 보낸다는 기별과
형님 그거, 부탁한 거 팔아 달라는 전화가 오고 그렇다. 악양에서 글 관련해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담배 한 대 피는데 앵두가 익어가더라. 앵두를 보니 지정댁 된장을
팔아 주기로 한 일이 생각났고 엄니가 많이 서운한 상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정댁은 앵두나무 집이다. 주 중에는 지정댁 집으로 가서 앵두도 촬영하고 된장도 체크해야겠다.
카메라는 가방에 그대로 있겠지. 그건 썩는 물건은 아니지. 또 방전은 되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