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08/06


2004.8.6

지금 볼 수 없는 것, 지금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누구나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
애틋함의 본성은 지금 이룰 수 없는 갈망의 대상이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장례식이 오늘 있었는데 요 며칠 그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몇몇 글들과 까페에서의 글들을 읽고 마지막 방송과 어제 밤의 추모방송을 다운로드 받아서
들어보니 '사람들'은 '애틋하게'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알지 못한다.
작년인가 금년인가? @lche의 옛홈페이지에 그녀가 복귀한다는 글을 읽은 듯한데
그것이 @lche의 키노 정성일에 관한 애정이었는지 조차 정확하게 기억하질 못한다.
90년대 초중반 무렵 나는 부산에서 정은임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듣지 못했다.
새벽 2시면 하였던 전영혁의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들었는데 정은임의 프로그램은 듣지 못했다.
아마 서울, 경기에서만 방송을 하였던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한다.
여튼 나는 요 며칠 인터넷을 열면 그녀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면 읽어 본다.
사람들이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의 실체가 잡혀질 것 같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역시 사람일 것이다.
그것에 관한 감정의 폭은 살아온 경험과 제 각각의 감정의 폭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지만
역시 혈육과의 이별이 가장 애틋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 것에 관해서 뭔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무겁다.
의도적으로 눈물바다를 만들기 위한 글이 아니고서야...

지금도 내가 애틋하게 그리워 하는 물건이 세가지 있다.
우선 하나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6월 2일 해질녘부터 2시간 정도 그린 첫 뎃상이다.
아그리빠라는 석고상이었는데 화실에 첫발을 들여 놓고 일종의 테스트시험 성격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며칠 후 나는 제대로 된('제도화 된'이 정확하겠지만) 뎃상수업을 며칠 받고 난 후
그 그림을 슬며시 말아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태워버렸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나서 나는 내가 태워버린 그 그림이 그리웠다.
못나면 못난대로 간직하고 있어야 했는데 내가 만든 그 무엇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태워버리고 찢어버린 것이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이다.
원래 자신의 문제에 있어 잘난 것 보다 못난 것에 대한 스스로의 박대는 극심한 것이고
남들에게 사진을 보여줘도 이른바 잘 나온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 아닌가.
하지만 나를 이루는 것이 어찌 明만 있겠는가, 어둠 저편에 밝음이 있듯이.

나는 도대체 언제, 어느 장면에서 그 파이프를 잊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연극인 추송웅의 나무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린, 하지만 당시로서는 뭔가 정통 연극인이라기 보다 싸구려 광대가 아닌가라는
의심 속에서 살고 죽어간 똑순이 아빠 추송웅의 나무파이프 말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무슨 생각으로 추송웅의 일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러
부산 시민회관 소극장으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 언론에서는 추송웅의 빨간피터에 대해 말들이 많았고 나는 이 연극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렷하진 않지만 아마도 서면 학생백화점에 있었던 대형화방 겸 문구점에서 예매를 했었다.
다니던 중학교가 서면에 있었던 나는 표를 예매하고 일요일이었던 공연 당일 시민회관 소극장으로 갔다.
극장은 사람들로 꽉 찼고 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보는 설래임과 열기가 있었다.
앞에서 보고 싶었던 나는 맨 앞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아카데미의 회원 여러분..." 이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빨간피터는 시작이 되었고
나는 곧 연극 속으로, 사실은 추송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중반 즈음 펄쩍 뛰어서 난간에서 내려 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왼쪽 양복 포켓에 있었던
무엇이 떨어져서 무대를 통통 튀어서 내 발 앞에 떨어 졌다.
나무파이프였다.
나무파이프의 둥근, 잎담배를 채워 넣는 부분이 쪼개져 있었다. 떨어지면서 파손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살짝 나가서 무대 위에 올려 놓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중2년 남학생은 예민하지 않은가.
곧 이어진 연기에서 그 파이프는 소품으로 필요로 한 것이었다.
추송웅은 에드립으로 그 장면을 넘어 갔다. 그냥 손으로만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시늉으로.
연극이 끝난 후 나는 내 손에 쥐고 있는 깨어진 나무 파이프를 돌려줄 것인가라는 고민 보다
어떻게 그 말을 할 수 있나, 어디로 가서? 나는 고민 때문에 그냥 들고 와버렸다.
상당한 시간 동안 추송웅의 깨어진 나무파이프는 내 서랍 속의 보물 1호로 자리했다.
상당히 낡은 것이었고 뭔가 물건 자체의 사연이 느껴지는 그런 파이프였다.
어느날 추송웅의 죽음을 듣고 그 파이프를 찾아보았지만 그것은 보이질 않았다.
그 파이프는 정말 애틋하게 그립다.

고등학교 시절 한동안 방황하다가 몇몇 고등학교 녀석들이 함께 만든 독서클럽 활동을 했다.
주로 했던 일은 독서토론회였다. 양지촌이라는 모임이었고 '양지소리'라는 글모음집을 두차례 발간했다.
발간이라...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만든 그 첫 발간이란 등사기를 사서 우리들이 직접 밀어서
만든 것이었다. 잉크는 번지고 가장 글씨 잘쓴다는 녀석이 손으로 쓴 그 필사본 등사기 글모음집은
사춘기 시절 우리들에겐 기념비적인 '출판'이었다. 나는 시 두편과 단편 소설 한편을 수록했다.
처음으로 내가 대면한 '죽은 사람'인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번째 글모음집은 2학년 겨울에, 역시 사람의 손으로 종이 위에 쓴 것이었지만 큰 차이는 이번에는
등사기가 아니라 그 시절 서서히 세상을 놀라게 한 발명품 제록스였다. 그때는 복사기라 하지 않았다.
제록스는 곧 복사기였다. 피자헛이 곧 피자이듯.
그 글모음집에서 나는 시 한편과 단편소설 한편을 수록했다. 개인적으로 그 단편소설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원고였다.
"계급은 세습되는 것이다" 는 말로 시작한 그 소설의 제목은 '아버지의 팔목'이었다.
빈민가에 사는 '나'는 어느날 마을 아랫 길에서 아버지가 차에 치어 죽었다는 또래들의 전언에
한걸음에 달려내려가 경찰서와 시체공시소를 오가며 결국 아버지의 시체를 팔고 그 돈으로 고픈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름대로 그 당시는 비장했다.
숨길 수 없이 김승옥의 '거시기 겨울' 이라는 소설을 모방한 것이 틀림없는데 새끼 글쟁이는
그런 것을 모방이라고 도저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을 가고 작업실을 옮겨 다니는 난해한 이사의 시절에도 나는 항상 두어권의 위 글모음집을
항상 챙겨서 들고 다녔는데 어느 해 여름 한철, 지하 작업실에서 완전히 곰팡이 덩어리가 되어 버린
그 종이뭉치를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친구들과 소통하지 않고 있었던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그 친구들과 만났을 때
그 글모음집의 존재유무를 먼저 물었는데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두번째 글모음집 표지에 그린 표지화를 기억한다.
침묵하고 있는 꾹 다문 입을 박스 속에 넣어서 반복해서 나열한 그림이었는데 볼펜으로 그린 것이었다.

충분히 감성이 날카로운 시절의 기억이 담긴 세가지 물건은 그래서 내 손에 없고
그래서 충분히 애틋하다. 허긴 수없이 버려진 그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는가.
그 물건들이 나를 기억할리도 없고. 결국 애틋함이란 애증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憎의 점유율이 높아질
무렵 상처를 예감하면서 후회를 예비하기 위해 버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애증과 애틋함의 기억이 사람으로 옮겨 오면 열병과 담배, 커피를 동반한 회한으로
변환되기도 하나니... 어리석음 없이 노회함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노회함의 이면엔 수없이 많은 칼날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는데,
내 안에서 가해와 피해가 서로 공존하면서 노려보고 있으니...

4dr@naver.com

사진은 청사포 바다인데 나에게 항상 연상을 불러 일으키는, 결국은 애틋해질 작은 포구다.
수년 내로 그린벨트는 해제될 것이고 저 작은 포구는 매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족 하나 / 정은임 아나운서 95년 마지막 방송과 어제 추모방송

http://www.iam1963.com/last.mp3
대략 25MB 정도 되구요. 95년 마지막 방송입니다.
(2004년 10월 30일 현재부터 다운받으실 수 없습니다)

http://www.iam1963.com/choomo.mp3
대략 52MB 정도 되구요. 어제 진행된 정은임 추모 방송입니다.
(2004년 10월 30일 현재부터 다운받으실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간의 전체 방송을 mp3로 다운 받고 있지만
그런 사이트들의 서버가 아무래도 최근 시달리다보니 다운 받는데
시간이 엄청 걸리더군요.
그냥 제 방에 한동안 둘 생각이니 필요하신 분은 다운로드 받아서 들으십시요.
혹, 열기 또는 저장하기를 묻지 않고 바로 미디어플레이어가 작동을 하시는 분은
메뉴 - 다른 이름으로 대상 저장하기 를 클릭해서 다운 받으시기를...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