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08/09


2004.8.9

만약에 내가 힘을 가졌다면 내 주변을 위해서 기꺼이 사용하겠다.
인간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싸우고 화해하고 어쩌구 하는 짓거리의
본질적 목적은 자신과 가까운 주변들이 잘 살기 위한 것이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놈들은 항상 자신들의 주변에 그 혜택을 주어왔다.
지금의 강남이 생기게 된 동기 자체가 박정희가 제 주변의 졸따구들을
살찌우기 위해서 기획한 땅이 아니었던가.
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실질적인 힘 가진 놈들 또한 지나간 수십년의
군사독재시절과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에 빌붙어 살던 집안의 족속들이
서로의 힘을 나누고 돈을 나눈 것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모든 부와 권력에 대해 이런 색안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8할은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놈에 고고한 운동권 출신들이 미약한 힘이나마 일정 부분 확보하게 된 이후,
그 망할놈에 도덕성 빼면 시체라고,
우리가 어떻게 지나간 시절 악당들 처럼 파이를 나누겠냐는 정신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만약에 내가 힘을 가진다면 이런 개소리는 무시하고
나와 내 주변을 살찌우는데 사력을 다하겠다.
모든 이권과 권력 가진 자리는 나하고 친하고, 내가 믿을 수 있고,
내가 봐서 '이 자식 정말 고생 많이했다' 싶은 녀석에게 다 나누어 주겠다.
내가 만약 힘을 가진다면 밤마다 나와 가까운 이들을 불러
성대한 만찬의 밤을 즐기겠다.
내 주변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능력 되는 놈으로 보좌하게 하고
가능하면 내가 줄 수 있는 파이의 최대 분량을 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
그리고 이런 것이 이치에 맞지 않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어쩌구 하는
주둥이가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하여 사망 여부 조차 알 수 없게 처리해버리겠다.
화염병을 들고 있었던 시절에도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 는 개소리였다.
폭력은 애시당초 정당화를 증거하기 위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에서 '이긴 폭력'이 항상 정당화 되었을 뿐이다.

작가들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성담이 형의 판화와 강훈이의 일러스트는
17~8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쓰러져 개밥 먹고,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한,
포괄적 '우리의 처지'가
도덕군자가 되기 위한,
이를테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연한 희생이 되는 따위의 결말을 원치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 세상이 좋은 세상이란 말인가?


4dr@naver.com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