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09/03
2004.9.2



힘든 여름이었다.
다른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날씨로부터 나는 자유롭지 못했고
많은 시간을 작업을 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흘려 보냈다.
지하철과 극장과 비디오로 보낸 시간이 많은 듯 하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에는 영후가 부산에서 올라와야 할 시간이었다.
매년 여름 일 속에서 허우적 거렸던 기억이 또렷한데 이번 여름은 어찌보면
참 한가롭게 지나갔다.
하지만 한가로움은 나에게는 항상 불안함이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 일들을 만들어 왔고 그 일들이 많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기대했던 큰 계약건을 놓치고 나는 숨길 수 없이 좀 허탈해졌다.
대기 중이던 작업팀들에게 'cancel' 을 통보하면서 놓친 대어에 관한 아쉬움 보다
뭔가 단추가 잘못 채워진 일의 시작과 끝을 대안 없이 해석하고
팥빙수를 먹을 다름이었다.






4년을 사용해 오던 카메라가 고장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부실한 상태가 되었다.
니콘 쿨픽스 950. 지리산을 가기 전에 나는
'다른 사람들 무지하게들 카메라 들고 올 것인데...'
라고 말했지만 윤진은 테이프와 고무줄로 밧데리 접속불량을 수리할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몇장의 사진을 건졌지만 이제 근본적으로 연신내 950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담이 형 개인전을 개막하는 날.
이제 주변의 카메라는 무진장 좋아졌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950을
들고 집을 나섰다.
경복궁 길을 지나칠 때 마다 찍고 싶었는데 항상 게으름으로 지나쳤다.
어제는 햇볕도 좋고 한적하길래 몇장 찍었다.






이 포커스가 마음에 들길래 몇장 찍었는데 마음에 쏙 들어오는 사진이 없다.
아마도 카메라 눈이 좀 더 컸어야 했을 것이다.
퇴색한 녹색은 여름이 수명을 다해 간다는 전주곡이다.
사람들은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의 양차선 중간의
화단을 다듬고 있다. 환경미화원일까, 구청 취로사업일까.
그래도 여전히 따가운 햇살 아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분히 사진으로 담아 둘 만한
것이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도촬도 필요 없는 무방비 상태의 좋은 셔터 포인터였지만
찍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을 뜯고 있는 저 도드라진 목뼈의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사내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인가, 아버지에게 기타를 빼앗기고 흠신 두들겨 맞고 난 이후
자신의 꿈을 갖지 않기로 결심한 아픈 기억을 가진 사내일지도 모른다.






삼청동 학고재 옆 길로 빠져 정독 도서관 쪽으로 걸어간다.
일행들이 아트선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
정독도서관 부근도 습관적으로 내가 살기를 꿈꾸는 동네들 중 한 곳이다.
짧은 서울 견문에 내려진 결론은 서울은 사대문 안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광화문, 정동길, 삼청동에서 가회동, 재동으로 이어지는 산길,
광화문에서 삼청도 지나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길들과 마을들이 눈에 들어오는
곳들이다.
살풍경스러운 은평구 주민은 그 길들을 지날 때 마다 '이왕 서울에서 산다면' 을
머리속에서 곱씹지만 막상 평생을 살아 온 부산에서도 나는
가장 살고 싶은 해운대 달맞이길과 청사포길의 예쁜 마을들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너무 비싸거나 막상 살기가 불편한 지역인 것이다.
아이가 없다면이라는 전제에서 이런 저런 머리를 굴려보지만
나는 아이가 있다.






일행들과 커피를 마시고 다시 삼청동쪽 학고재화랑으로 돌아왔다.
학고재 옆의 작은 공방이다.
비슷한 감성 가진 사람들은 셔터를 누르고 싶은 길 모퉁이다.
살아 오면서 인상적인 길 모퉁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햇볕 좋은 날 그런 곳에서는 한나절은 앉아서 시답잖은 농담과 노변희롱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릴 적에는 동네 어귀 구멍가게 평상에, 늘어진 런닝 차림으로
시간을 죽이는 그런 거사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 힘들다.
다들 경마장으로 갔는지.






담이 형이 전시회를 한다.
5년 만인가? 시간이 빠르다. 세월이 갈 수록 시간은 더 빨라진다.
마치 나를 잡아봐라는 식으로 달아나 버리는 녀석의 뒷통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헐떡이며 쫓아온 길을 힐끔 뒤돌아 보니 망할놈에
사십고개를 지나버렸고 형은 이제 쉰이다.
저 사진이 1992년 7월 어느날 전주교도소에서 형이 3년 만에 세상구경하러 나오기 직전의
모습이니 12년 전이다.
저 당시 나는 직접 형을 알지 못했고 전국에서 모인 수백명의 환영인파 속에서 조직의 두목을
기다리고 있었던 미래형 관계였다.
그날 나는 세상으로 풀려나는 두목을 맞이하는 흥분에 떨고 있었다.
주먹은 꽉 쥐어지고 형의 매서운 눈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종일관
멀리 한점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학고재 전시 관계로 이런 저런 자료를 챙겨야 하는 작업 중에
이 사진을 마주하고 시간의 역류를 경험한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92년 7월, 자정이 넘은 전주獄 앞마당을 추억한다.
나는 많은 맹세를 지키지 못했고
많은 실천을 방기했고
그렇다고 심기일전할 마음의 태세를 여분으로 남겨두지도 못했다.
가슴의 한 각이 무너지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다.






KBS 외주 프로그램인듯 이름이 익숙한 프로덕션의 촬영팀들이 전시장을 찍고 있다.
달리가 깔리고 모니터가 셋팅되고 조명팀들이 발끝에 쥐가 나도록 힘을 주고 서 있는
촬영현장을 볼 때면 항상 AD 이하 몸조들의 피곤이 느껴진다.
그 피곤함을 버티어 나가는 힘은 아마도 필시 몇년 후에 지금의 자신과 같은
몸조들을 데리고 지긋이 모니터를 지켜보는 오야지를 염두에 둔 것인데
열에 아홉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다시 아까 도로변 화단의 풀뽑기를 하던 검게 탄 야윈 목선의 사내가 생각이 난다.
나는 안다. 그렇게 보이는 사내들의 나이란 것이 대부분 내 나이란 것을.
작년 이맘때 쯤 고등학교동창모임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본
내 동기들의 두려울 만큼 늙어버린 모습들.
어디 어디 회사 직책 거시기 따위의 캡션이 달린 녀석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와 각별했던 몇몇의
고등학교 시절 꿈을 알고 있었다.






절반의 아는 사람들과 절반의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전시회 뒷풀이란 것을 진행한다.
이런 자리를 항상 피했다. 하지만 오늘은 피할 수 없는 자리 아닌가.
몇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요즘 뭘하는지 묻고 명함을 교환한다.
반가운 만남도 있고 어색한 만남도 있다. 불편한 만남도 있다.
인사를 해얄지 모른채 해얄지 어중간한 눈의 교차도 있다.
몇십분 동안 서너차례 교차하다가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서
학고재 이주헌 선배에게 인사를 건냈다. 93년 민미련 해소 총회장에서
당시 한겨레 미술기자였던 이선배를 초청했었고 '조직 해소를 결의합니다' 라는
만규형의 선언에 굳어버린 총회장에서 눈물을 흘리던 객관적이지 못했던 기자였다.
당시 비디오 테입을 가진 사람은 역시 당시 비디오를 찍었던 나뿐인데 간혹
낡은 필름을 돌리듯 그 테입을 볼 때 마다 나는 잠시 그 장면에서 리모컨의 PAUSE 버튼을 누른다.
호스트는 아니지만 내 몸을 흐르는 접대의 피는 어쩔 수 없다보니
대면대면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옮겨 다닌다.
윤모 선생께서  또 항상 몇년 만에 볼 때 마다 하시는 질문을 한다.
"어이, 권선생, 요즘은 그래서 전혀 글을 쓰지 않나?"
"ㅎㅎ 이전에야 그냥 필요에 의해서 대자보 같은 글이나 만들었지 제가 애시당초 글쟁이가 아닙니다"
몇년이 지나 우연히 선생은 또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나의 과거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이런 날이면
몇몇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극소수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과거를 안주 삼아 웃음소리 흐드러진 테이블에서 나는 허허로운
추억담 주워담기에 더 이상 진력이 나버린다.
꼭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지금 뭔가 주머니에 채워 넣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테이블에서 나는 묵묵히 먹지 못하는 맥주병을 입에 대고
듣고만 있을 뿐이다.
자리를 빠져 나올겸 핸드폰을 핑계로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무는 내 등뒤로
보다 많은 사람들은 촛점 없는 눈길을 담배 연기에 던지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나는 아마도 그들과 동류에 속할 것이다.
잔치는 끝나 가고 포장을 걷고 마지막 국밥들을 마실 시간이 오면
3차를 희망하는 집요한 눈길과 2차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길바닥에 눈길을 둔
무리들의 헤어짐에 수십분이 소비된다.
모두들 잘 가시라.
단꿈과 선한 아침을 맞이하시라.






힘겨웠던 여름이 간다.
일전 지리산 여행에서 찍힌 사진인데 한솔로가 보내주었는지 문우선생께서 보내 주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만복대일 것인데...
메일로 사진을 받고 한참을 내가 나를 보았다.
나는 저런 모습인가보다 하고.
내 눈이 쫓고 있는 것이 잃어버린 꿈인지
이루어야 할 꿈인지 분간이 서질 않는다.
어제도 간만에 보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소리를 들었다.
"얼굴 좋다"
몇년 전 보다 살이 좀 붙었고 머리를 짧게 친 까닭인지
보기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좋은 일이다.
내 몰골을 보고 나를 싫어하건 좋아하건 신간 편한 인상을 받았다면
그들에게 어두운 인상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좋은 일이다.
"아 예..."
라는 짧은 대답 속에 '니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나를 알아' 라는 뾰족함이
담겨 있건 어쨌건 각자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만난 군상들에 대한
짧은 소견서를 작성할 것이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에서 집도 후 파리 거리를 바라보며 독주를 들이키는 라빅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좋아했다.
화려한 밤, 깔바도스를 홀짝거리며 웃음을 날린 조앙 마두의 웃음이 허허롭다는 것을
알아버린 라빅 또한 허허롭기는 한가지다.

4dr@naver.com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