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2



네이버 지식검색을 참고하자면 이렇다.

청사포는 '골매기 당상'의 김해 김씨 할매 신화에
푸른뱀이 등장한데서 지명이 유래 되었다.
1900년까지는 청사포(靑蛇浦)라 이름하였으나 뱀 사(蛇) 자(字)가 좋지않다 하여
맑을 청(淸) 모래 사(砂)를 써서 청사포(淸砂浦)라 하였고
1927년 4월 이 곳에 있었던 의숙서당이 청사서당(靑沙書堂) 이라는 현판을 건데서
오늘날까지 청사포(靑沙浦)라 불리게 되었다.

하여 나는 제목을 푸른뱀이 나왔다는 그 전설 그대로 '靑蛇浦'로 표기했다.
낮에 양갱의 블로그에서 청사포에 관한 포스트를 보고 리플질을 하다가
오늘 내 할 일의 주요부분이 사진을 찾는 일이라 손을 댄 김에 컴퓨터와 CD에 있는
청사포 사진도 보이는 대로 재껴두었다.
그 중에서 고른 것이 아래 사진들이다.
나와 게시판 인연이 긴 사람들은 이미 휴먼아이 시절에 본 사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위 사진은 정확한 청사포 마을 전경에 해당한다.
이런 시점을 제공하는 포인터는 달맞이고개 중에서도 송정 쪽으로 넘어서는 꼭대기인데
정확하게는 아젤리아 호텔 커피숍이 view point다. 하지만 지금은 호텔은 있고
객실 건물의 옆의 조용했던 커피숍은 문을 닫았다.
물론 전망은 확보할 수 있다.






글 제목이 굉장히 건방지다.
아시다시피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라는 제목은 우현 고유섭 선생의 수필 제목이다.
'가장 좋아한다'
'가장 뛰어나다' 는 표현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원래 '가장'은 상황이 강제하기 마련이다)
나는 우현 고유섭의 글을 나의 짧은 문자경험에서 최고의 것으로 삼고 있다.
고유섭이라는 이름을 접한 것도 얼마되지 않고 그의 글 조차 작은 문고판 한권뿐이었지만
나는 완전히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는 고유섭 선생이 개성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
경주를 방문해서 추령을 넘어 감포바다에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바로 감포바다다.
내가 감포 바다를 경험한 것은 아마도 1992년 경이었을 것이다.
울산에서 국도를 따라 포항쪽으로 오르는데 바다가 깊고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풍경은 원래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남의 최고는 첫만남이다.
그때는 역겨운 아이템의 문무대왕 해릉인 대왕암을 지나 감은사지 쪽으로 해서
추령을 넘어 경주로 들어왔었다.






94년 경에 우현 고유섭 선생을 최열 형으로부터 강권받았다.
이전에 나는 그런 사람을 몰랐다. 외람되게도.
몇년간의 연구 프로젝트로서 고유섭이라는 학자를 연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형의 강권이었다. 형은 근대조각가이자 탁월한 문예활동가였던 김복진을 스스로의
스승으로 모시기를 이미 수년이 지난 다음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대자보 같은 미술관련 글조차 계속할 기미가 보이질 않자
아주 긴 숙제 같은 내면서 글을 쓰게 하는 동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혼자 생각을 해본다.

여튼 나는 고유섭을 그렇게 만났다.
몇권의 책을 전해 받았고 읽을 수 없었다.
신문을 읽는 수준의 한자로 해결될 책들이 아니었다.
논문에서 삼국유사를 인용할 경우 선생은 삼국유사 원전을 그대로
인용을 하니 내가 읽어 낼 재간이 없다.
힘들게, 그리고 운좋게 가벼운 주제의 한글판 문고판을 구해 읽고 나는
글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글이란 것은 그냥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고유섭의 책에서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를 읽고 나는 그 바다가
나 역시 인상적이었던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일제시대 경주에서 목탄차를 타고 힘들고 추령을 넘어 만난 선생의
감포바다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97년경, 새벽 경주.
석굴암에 올라 일출을 볼 요량으로 4시 쯤에 도착했지만 가능성이 희박해보여
추령쪽으로 내려와서 대종천을 따라 감은사에 도달했다.
가을의 새벽 감은사는 묘사의 덧없음을 절감하게 했다.
그리고 5분 거리의 감포 바다로 향했는데, 감포바다에 대한 나의 감상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거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다는 쉽게 갈 수 있는 바다가 아니다.






청사포는 내가 쉽게 찾을 수 있는 바다였다.
사진들은 모두 2000년부터 2002년에 걸쳐서 찍은 청사포 사진들이다.
그 시기에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청사포를 찾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세장의 사진은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새벽부터 아침까지 찍은 사진이다.
제일 위의 사진 두장은 위 사진 하루 전날 청사포 방파제에 앉아서 찍은 것이고
그날 오후에 청사포는 아주 흐렸다.
그날 밤을 달맞이고개에서 보낸 나는 다음날 새벽부터 같은 지점에서 청사포 바다를 찍었다.
작심하고 머문 하루동안의 촬영이었다.
어쩌다 청사포를 찾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같은 하늘을 만날 확률은 아주 낮다.






사진으로 보이는 산봉우에서 나는 방위병 생활을 했다.
1984년이었으니 나와 청사포 바다는 오랜 인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뷰포인터는 항상 군이 장악하고 있다.
저 봉우리 바다 쪽으로 레이더 기지가 있는데 나는 그곳에서
부식을 다듬거나 바다쪽을 향해 있는 낡은 전차포 옆에서 바다를 경계하는
것으로 하루종일을 소비해야 했다.
저곳은 달맞이고개 중에서 가장 높고 돌출된 전망을 제공하는데
부대가 없어지기 전에는 다시 들어가서 바다를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없어진 아젤리아 커피숍 창가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이 바다가 나온다.
아무런 저지선이 없는 바다를 제공한다.
아주 맑은 날 중앙으로 직진하면 대마도에 도달한다.
이곳에서는 눈으로 대마도를 확인할 수도 있다.






다시 청사포 포구로 내려가자.
바다를 보면서 왼편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저 능선을 넘어 서면 231이 살았던, 지금도 본가가 있는 송정 바다로 이어진다.
송정을 지나면 대변, 월래...






청사포 포구 정면을 응시하면 저 등대가 보인다.
무인등대고 동하계시 점등 시간은 달라진다.





원래 청사포는 요주의 마을이었다.
정확한 통계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산 인근에서 가장 많은 불순분자들이
집결해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실향민들이 자리를 잡았었고
실제 이곳을 무대로 한 간첩선 사건은 6~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 까지
있었던 일이다.
장기수 선생님들 중 몇몇 분들도 이곳에서 오리를 키우며 생활하시기도 했다.






내가 청사포를 찾는 경우는 세가지다.
돈이 많을 때, 청사포의 횟집들은 광안리에서 먹는 것 보다 두배는 비싸다.
부산 밖에서 손님이 왔을 경우, 몇년 전 부터는 나를 찾아 온 손님의 대부분은
청사포를 청한다.
힘들 때, 해운대 사무실 시절, 마을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면 청사포에 도착한다.
바다를 보면서 뭘 생각한다는 것은 힘들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그곳을 간다.






청사포는 슬프다.
청사포에 대한 나의 소견은 그렇다.
해운대의 세련된 해안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청사포는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그냥 작은 포구마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들겨 패서 뭔가 있지 않냐하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걸어 내려간다면 더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집과 집 사이로 보이는 파란색은 바로 옆의 해운대 바다와는 다른 색깔을 보장한다.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면 청사포에는 모텔이 하나뿐이다. 블루비치.
그것은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지역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도 청사포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전문 커피숍도 없다. 포장마차 커피숍이 하나 있을 뿐이다.
해가 지면 열고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했는데 음악은 하사와 병장 시기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지금도 그 아저씨가 장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단골횟집이었던 '신선장'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긴데
청사포 앞 선착장을 기준으로 매립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지자체 선거에서 이 지역 출마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린벨트 해제를 첫번째 공약으로
들고 나온다.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린벨트는 하나의 재앙인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철학이 없는 개발 국가에서 저런 아름다움을 테마로
지역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희망이다.
신선장 아주머니도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이 해안이 개발되기를 원하고 있다.






나와 윤진의 철없는 계획으로는(사실 계획이라기 보다 공상에 가깝지만)
좀 더 세월이 흘러서는 저 곳에서 살아보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공상이든 계획이든 청사포가 존재할 때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앞으로 몇년을 더 이곳 서울에 존재할런지 모르겠지만,
호적 상의 고향과 살아 온 고향이 다른 나에게 있어
체험적으로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인 청사포(靑蛇浦)의 예정된 상실이
사실로 확인되는 날은 아주 깊은 슬픔에 빠질 것 같다.
자주 권했지만 오늘도 벗들에게 청사포 바다를 권한다.
나는 나의 바다가 있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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