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09/08
2004.9.7



햇볕을 좋아했다.
84년부터 86년 까지 부산 광안리 지하 작업실에서 생활하는 동안 햇볕은 항상
그리운 것이었다.
"햇볕 쬐러 가자"
그때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던 우리들 세사람은(변동은 있었지만)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는 걸어서 5분 거리의 광안리 바닷가를 자주 나갔었고
그때 광안리는 조용했다.
지금과 같은 까페 불야성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하던 미술학원 역시 해변을 따라서 15분 정도 걸어서 출근을 했다.
학교는 가지 않고 작업장과 화실, 바닷가만 들락거렸던 그때가 참 편한 시절이었다.






연신내 집도 햇살이 들어온다.
영후방은 아침 햇살이 좀 강한 편이라 일요일 아침이면
이불을 뒤집어 쓴 영후를 종종 본다.
며칠째 일이 한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가한 집에서
늦은 아침과 커피를 마시고 일을 시작한다.
환경에 맞게 살림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지라 우리집의 풍경은 옹기종기하다.
일요일 밤에 손님이 다녀간 이후 나는 마음 먹고 몇장의 음반 CD를 꺼내어
듣고 싶은 곡들을 mp3로 만들어 20여곡 계속 듣고 있다.
수삼일째 계속 몇몇 아삼삼한 클라식들이 듣고 싶어
간만에 이런 저런 소품들을 듣고 있다.
지금 나오고 있는 헨델의 곡도 그렇게 만든 곡이다.
90년 즈음에 참 지겹도록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여름을 넘긴 와인을 일요일 밤에 손님들 핑계로 마개를 뽑았다.
나는 칠레산 와인이 좋다. 와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우리들이 마시는 와인이라는 것이 대개는 칠천원에서 삼만원이 한계라
더더욱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간혹 못마시는 술이지만
와인은 홀작거린다.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라 그런지 칠레산 와인이 좋다.
salk02는 그렇게 권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가 당기는 것은 아옌데와 하라와 같은 이름들이
새겨준 흉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을 넘긴 와인을 아주 당기는 기분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 전에 남은 한잔을 마셨다.
영창이 형의 스파게티 면이 남아 있다.
넓은 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껴먹을 심산이다.






나는 모기향을 피운다.
독하다.
그래서 방밖의 베란다에 피워둔다.
요즘은 모기가 거의 없다. 금년 여름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생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기 아닌 약한 것들이 시체로 누워 있는데
아침 청소 소득의 반은 하루살이와 머리카락이다.
다세대 주택. 3층. 7가구가 모여산다.
나의 책상 옆, 모기향 건너편으로 보이는 작은 쇠쪼가리 모서리가 대문인데
나는 하루 종일 이 집 사람들의 들락거림과 택배와 소포, 등기을 배달하러 온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모두 듣고 있다.
하지만 단 한명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집은 우체부가 누를 벨도 없다.
대개는 우리집이 만만한지 없는 집의 택배는 우리집으로 맡긴다.
소문이 난 모양이다.
"그 집에 맡겨두세요. 그 집 남자는 항상 있어요"
일년 삼백육십오일 대문은 열려 있다.






지리산을 다녀 온 이후 등산화들은 바짝 구워지고 있다.
모든 집의 사각지대가 그렇듯이 우리집 또한 기계박스와 배달되어 오는 물건의
껍질들은 베란다 구석으로 던져진다.
마음 먹고 정리해 두지만 곧 몇개의 적합하지 않은 박스가 도착하면서
정렬은 헝클어지고 무질서가 자신의 패튼으로 자리잡는다.
습기찬 곳이면 썩어 문들어져 냄새를 풍기겠지만 아직은 그런 일은 없다.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뭘 내다버리지만 역시 쌓여가는 속도를 따라가기에
버리는 작심은 충분하지 않다.
왜 버리지 못할까.
내일은 나서는 길에 아버지의 지포라이터에 기름을 넣어야겠다.
아껴둬봤자 사용하지 않는 시체로 남아 있을 뿐인데.
작고 가벼워서 챙겨둔 것인데 사용해 버리자.






모든 가사일을 마다하지 않는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일은 빨래를 만지는 일이다.
이상하게 빨래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햇볕 좋아 빨래 말리기 좋은 날이다.
낮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더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추석이 지나면 베란다 큰창을 닫게 될 것이다.
올해도 몇년째 가을과 한가지로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겠지만.






아무도 없는 오전. 막연히 카메라를 잡고 햇볕을 찍고 싶었다.
모니터 전원은 꺼 둔 상태에서 음악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이상하게 햇볕이 인상적이고 내 생활공간이 새로워 보인다.
몇십분을 10m도 되지 않는 주방에서 방까지를 오가며 이곳 저곳을 보았다.
대학시절, 지하실에서 나와 간혹 학교를 갈 때면 학교 밑의 '하얀집' 이라는
가정집을 개조한 커피숍 2층을 자주 이용했었다. 학교 아래에서 커피값이 가장 비싼
집이었는데 나는 그 집의 햇볕과 정원이 좋았다.
그 2층 편안한 쇼파에서 나도 책이란 것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지.
그리고,
마흔이 지나면 어떤 노동도 하지 않고 햇볕 좋은 집에서
클라식을 즐길 것이라고 희망했었다.
나에게 클라식은 항상 오전이고 오전은 햇살이다.
하지만 마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옛 꿈 조차 그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들어면서 추억해 낼 뿐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가.
까짓것 십년만 뒤로 미루도록 한다.
포커스를 녹색에 두었을 경우와 포커스를 방충망에 두었을 경우,
사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두가지 사진 중 위의 사진을 고르는 내 마음을 나는 이해하자.
20평도 되지 않는 연신내 궁전에서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햇살인듯
혼자 황홀한 나는 스스로 백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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