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09/11
2004.9.10

다시 길을 나섰다.
대단한 길을 나선 것이 아니라 부산과 광주를 돌아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며칠간 집에서 일하고 스스로도 칩거하는 형태의 시간을 보낸 뒤라 역마살 있는
인생들은 이런 식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길을 나선다.






수요일 오후 3시 기차로 부산으로 향했다.
나는 이제까지 10여차례 KTX 라는 것을 이용했는데 전반적으로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는데(나는 비행기 값에 육박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요시간이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부산이 두시간 오십분 정도라면
이게 무슨 고속철돈가 하는 생각이고,
무엇보다 좌석이 답답하고 불편하다.
새마을보다 좌석간 간격이 좁고 의자는 뒤로 재껴지지 않고
앉은 엉덩이를 앞으로 약간 빼는 방식이다.
대략 국내선 비행기를 탔을 때 느끼는 답답함 같은 것이다.
악명이 자자한 역방향 좌석에 걸렸을 경우는 정말 괴로운 것이고.
가장 괴로운 것은, 한번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역방향과 순방향이 만나는 가운데 좌석은
서로 좁은 탁자를 비무장지대로 하고 마주본다.
당시 나의 맞은편은 대구에서 내린 세련되 보이는 아주머니였고,
대각선은 일본사람, 내 옆은 투피스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방식으로 의자를 마주본 두사람이 모두 앞으로 빼면 무릎이 닺게 된다.
그런데 대구에서 내린 세련되 보였던 아주머니는 수원을 지나자 사정없이 가랭이를 벌리고
잠이 들어 버렸는데 나는 정말 고문을 받는 자세로 허리를 곳추세운 긴장한 비서 자세로
대구까지 내려가야했다.
옆 좌석의 투피스 정장은 팔꿈치가 부딪칠세라 곳곳한 자세로 있고
대각선의 일본양반은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는...
그날 밤 부산에 도착해서 몸살을 했다.
다른 열차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새마을은 동일하거나 조금 오른 가격에서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역이라는 역은 모두 정차하는 이전 통일호가 되어 버렸고
무궁화는 변한 새마을 덕분에 가격대비 성능에서 탁월하기 때문에
하늘에 별따기다.
기차 속에서의 커피값도 새마을 시절에는 다방커피로 즉석에서 타 주는 놈으로 1,500원이었는데
지금 KTX는 3,000원이고 뭔 유기농 커피라고 주장하면서 맛은 더 없다.
내가 싫어하는 헤이즐넛도 나온다.
그놈에 향기는 꼭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같아서 두통을 유발한다.
프랑스놈들하고 멍청한 계약을 해서 향후 몇년간 열차 개조를 할 수도 없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날은 열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기 위해 밖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뽑아서 들어갔다.






대구 지나서 잠에서 깨어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고무줄 카메라를 끄집어 내었다.
색깔이 좋았다. 약간 흐린 날씨와 약간 퇴색한 녹색, 5시를 넘긴 시간은 좋은 셔터타이밍이다.






대구 지나 경산터널을 넘어서서 부산 인근 물금역까지는 경부선에서 가장 좋은 경치를 제공한다.
이날은 내가 앉은 자리가 좋은 풍경 반대편이라 그냥 셔터를 눌렀다.
여튼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 올 경우 구포역 지나 물금역부터 청도까지의 40분 정도는
시각적으로 즐거운 곳이다.
물금에서 밀양까지는 낙동강의 완만한 흐름을 즐길 수 있고 유장함까지 느낄 수 있다.
밀양을 지나 청도까지는 좁아지는 골짜기와 변화가 많은 수목군, 전형적이랄 수 있는
촌락 풍경을 볼 수 있다. 참 까다로운 주문이지만 밀양을 지나서 청도까지에서는 약간의
경쾌함과 우울함을 함께 가진 크랜베리스의 음악이 딱 어울린다.
청도를 지나 경산터널을 넘어서 이른바 경북으로 진입하면 살풍경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러면 눈을 감고 잠을 자거나 KTX(이전 레일로드라는 철도잡지)를 읽는다.

기회가 된다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도 운문사를 목적으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한
인근 국도와 운문댐, 추어탕, 고동국, 가지산 단풍과 가지산 정상의 오뎅집을 즐길 필요가 있다.
물론 백수들이 누릴 수 있는 가을 평일이동권을 확보한 이들의 특권이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10여일 정도의 대한민국 단체생각여행을 조직하고 싶다.






부산역으로 진입한다.
부산역 못미쳐 부산진역 정도인데 서울로 보자면 영등포역 같은 곳이다.
물론 이 역 주변에도 사창가가 있어 밤이면 오가는 남자들의 팔목을 잡아 당기는
은퇴한 창녀들의 영업이 있다.
사춘기 때에는 일부러 이런 동네 주변을 지나다니기도 했지만
그 시절 창녀와 학생들 사이의 오랜 농담 말이다.
"총각 하고 가지"
"학생인데요"
"학생 ㅈ은 ㅈ도 아이가"
고등학교 때는 이런 곳 방문 적금모임도 만들어지고 그랬는데
70년대 소설에나 등장했던 이야기들이다.
고호가 자주 방문했던 라셀이라는 창녀를 그린 콘테화가 사춘기 시절 내 마음을 울렸는데.
그때 모든 고등학생들은 창녀와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누구나 꿈꾸었다.
비극은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요즘 세상에 고등학생들이야...






부산역 옆으로 바로 부두가 이어진다.
부산의 부두는 상상한 것 보다 광활하다. 부산 사람들도 막상 부두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내 기억에 부산역과 부두는 항상 컨테이너다.
부산 어느 곳이든 넓은 공터는 항상 컨테이너다.
컨테이너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영도다.
섬이고 두개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사진으로 나오지 않은 기슭을 따라 우측으로
산이름도 지랄 같은 '고갈산'이다.
영도에서 사진포인터가 제법 나올 것인데 아직 사진관련 사이트에서
그 구체적인 성과물을 보지는 못했다.






부산방문 목적은 장인어른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참석하는 제사이고 영후가 학기 중이기 때문에 항상 윤진과 나 두사람 중에
한명만 내려오게 될 것이다.
처음으로 보지 못한 장인의 영정사진을 보았고 사진에 담아 두었다.
처남은 장인어른을 빼다 박았다.
물론 당사자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






셔터스피드 문제로 어두운 조명에서 잡아내질 못했는데 제사를 끝내고 처갓집을
나왔는데 학생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뭔 일인가 실제 놀라서 있는데 인근에 새로 생긴 대형 학원에서 공부를 끝낸
학생들이었다. 그때 시간이 자정을 넘어섰다.
사진은 대기 중인 봉고아저씨들이다.
몇년 후 영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캐나다에 있는 누나네 아들과 딸은 행복한 것 같다.
이곳에 있을 당시 장남인 아들이 공부 일등이었고 둘째 딸아이는 그저 그랬다.
캐나다로 간지 4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그냥 우수하고 이곳에서 한없이
느렸던 딸아이는 그곳 영재학교에 입학했고 학생대표를 맡고 있다.
이곳에 계속 있었다면 그런 순위 변경이 가능했을까.
느리지만 자기 생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이 인정받고 자질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
밤풍경 앞에서 답답했다.






다음날 아침 광주로 출발했다.
지나간 일요일 낮에 학고재 전시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대면한 광주의
선배님 때문이다. 일을 마무리하는 방문이 필요했는데 나는 결재를 받고
차일피일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똥누기 전과 똥누고 나서 마음이 바뀐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처음 뵙는 형수님이 어머님의 안부를 묻고 '사이트 잘 부탁드립니다'는 적반하장의
겸손을 보이는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나는 경우에 맞지 않는 결례를 했었고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경우 마음의 부담은
없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부산 가는 길에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부산 광주는 고속버스 뿐이다. 기차는 허울이고 비행기는 하루 두번이다.
고속버스 속에서 나는 섬진강 휴게소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고속도로 휴게손데 공사중이었다.

광주에 도착해서 충장로 인근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다른 일정 하나를 소화했다. 별 생각없는 간단한 사이트 하나가 있었는데
간김에 방문해서 이름만 들었던 선배님들을 만나뵈었다.
답답했다. 그분들의 생각이란 것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처지와 역할을 인정하고 파악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모양이다.
세월이 흐를 수록 아쉬움은 아집으로 남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독기로 남는 모양이다.
원한이, 갈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진작에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알기로는 실제적 능력에 의해 주도되고 변화한다.
그것이 보수적이랄지라도 현실에서 그것의 힘이 세다면 그 힘이 세상을 주도한다.
필요한 것은 현실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지 당장의 변화에 대한 자기의지의 과시와
결연함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냥 심중에 품고 있는 불씨일 뿐이다.

원래 하고자했던 일을 끝내고 나니 실무자와 나만 남고 바쁜 형님은 다른 모임에 나갔다.
뭔가 서울에서 온 양반을 대접해야 하는 우리의 김모양은 퓨전레스토랑을 추천했고
광주에서 그런 곳을 가는 것이 어색한 나였지만 약간의 재미는 있겠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낮에 차분해 보였던 김모양은 광주역까지 나를 바래다 주는 과정에서 과속을 일삼았고
스타일로 보아 표면적으로 감지하지 못했던 결단력을 가진 듯 했다.
이런 저런 대화 속에서 나는 그녀의 그런 판단력에 지지를 보냈다.






다시 KTX.
정차역인줄 알았는데 광주가 출발역이다.
텅빈 객차에 올랐다.
왜 그 많은 빈자리를 두고 예약시 내 옆에 노처녀인지 젊은 아주머닌지 분간이
힘든 여성을 배치했을까.
60개 정도의 좌석이라면 10명도 안되었는데.
여튼 이 여성은 처음 KTX를 탔는지 계속 손잡이 옆의 버튼을 누르면서 의자 등받이를
밀어보는 부질없는 시도를 계속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게 아니구요, 이렇게..."
라고 하며 엉덩이를 밀착시킨 가운데 의자를 앞으로 빼는 시범을 보이자
"많이 타보신 모양이네요" 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는데,
"예, 저 잡지 목차도 다 외워요. 이번 호는 성북동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내가 앞으로 세시간 동안 잠을 잘 것 같지도 않고 이 정체불명의
아가씬지 아줌만지와 대화를 하면서 서울에 도착할 심산으로 미끼를 던졌는데...
두칸 앞 대각선 좌석에 앉은 출장 온 월급쟁이 두놈 중 한놈이 갑자기 일어나
두칸 앞 좌석으로 가서 오바이트를 한다.
출장와서 술을 먹은 것이겠지.
왜 하필 그 좌석에 가서 오바이트를 할까.
동행이 일어나서 화장지 등을 가지고 와서 수습을 지시, 방관 조장하고
10여분 만에 시각적 확인은 없었지만 수습같은 것을 한다.
내 옆의 여성은 입을 가리고 같이 헛구역질을 하고...
비위가 약한 모양이다.
20여분 후 월급쟁이는 2차 오바이트를 굳이 같은 좌석으로 가서 실시한다.
돌겠다.
내 옆의 여성은 다시 헛구역질을 시작한다.
월급쟁이의 동행이자 상사로 보이는 놈은 이제 오바이트 당사자를 욕하면서
다시 화장지를 구하는 보투에 들어가고.
승무원이 지나가길래 나는 망설임 없이 불러세워 좌석 교체를 요구했다.
다행이 친절이 나의 요구에 응한다.
나는 옆좌석의 여성몫까지도 요구했는데
이 여성曰
"저는 괜찮습니다"
이 여성 내가 작업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나?
나는 '예' 하고 가차없이 일어나서 가방을 챙겨
오바이트조들 한번 째려보고 일어난다. 이때 짧은 머리와 큰목소리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잠도 오지 않고 다시 읽었던 KTX를 읽는다.
KTX로 바뀌고 나서 잡지는 좀 럭셔리하게 변했다.
편집방향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와인과 시가, 골프이야기 해외여행에 관한 강화, 할리데이비슨 이야기,
식당소개에서 좀 더 견적이 높은 곳으로의 이동 등이 엿보인다.
싱글들 중 60% 정도는 매주 1~2회의 섹스를 즐긴다고 한다.
생각보다 횟수가 많군.
주기적인 섹스는 정신과 육체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뭐 '죽어도 좋아'라는 컨셉까지는 아니라도 말이다.
왜 글을 읽다가 내 주변 싱글들의 건강이 염려되었을까.






자정을 넘긴 1시 쯤에 서울역 밖으로 나왔다.
약간의 땀과 이틀 동안의 열시간 정도의 이동이 피곤으로 몰려왔다.
집에 도착하면 윤진에게 등을 밟아 달라고 하겠지.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