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18

흔히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등의 표현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 이라는 것이 '언제나' 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타란티노의 '내 인생의 영화'는 자주 바뀐다.
물론 기본 방향은 있지만.

가장 인상에 남았던 어떤 순간은 가능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음악과 영화, 문자의 어느 구절이 있을 것이다.
절묘하게 말이다.
줄창나게 롹을 들었지만 어느 순간 정말 눈물을 쏟게 만든 음악은 발라드인 경우도 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땡땡이를 치고 일찍 학교를 나온 날 오후,
서면 학생백화점(지금은 없어진)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왔던
린다론스타드 할머니의 long long time은 당시 나를 충분하게 감동시킨 경우이다.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순전히 long long time 이라는 제목과 반복되는 가사가
뭔가 사춘기로 접어든 섬세영혼에게 파문을 던진 것이겠지.
하지만 이후 나는 그 음악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에야 올디스 차원에서 파일을 확보해봐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음치범주에 드는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울었던 것은
딱 두번인데(기억이 맞다면) 한번은 87년인가 88년인가 연세대학교노천극장에서
8.15 집회를 하던 한밤 중에 목이 터져라 불렀던 '가거라 38선아' 를 부르면서였고,
또 한번은 84년 여름 쯤에 신성한 방위근무를 할 때, 청사포 밤바다를 보면서
썩은 탱크 옆에 서서 어깨에 빈총 차고 부른 조용필의 '보고 싶은 여인아' 였다.
참으로 멋있다고 하기엔 문제가 많은 장면들이었고 그 노래들이
이른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최선의 음악이 최선의 인상을 심어주지는 않는다.
단지 자주 들을 뿐이겠지.

지금 나오고 있는 노래는 정확한 제목을 찾아보기 귀찮은 관계로 정확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Hollies가 부른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이다.
대중적인 곡이라 뭐 특별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인데, 내 알기로 이 노래는
월남전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곡이다. 닐다이아몬드의
곡이 때론 더 깊은 맛이 나기도 하지만 역시 귀에 익은 버전은 Hollies가 부른 이 버전이다.
내 사이트에서도 두번인가 사용했을 것이다.

이곡은 아주 차가운 온도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데
1983년 12월 경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대입재수 막바지 실기시험을 준비중이었는데 아무런 긴장감 없이
굉장히 패배적인 상황에서 그냥 시험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행을 포기하면서 나는 아무런 긴장감 없는 대학시험을 그냥 기다릴 뿐이었다.
당시 형은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을 맞이했고 토, 일요일이면
이곳 저곳으로 서류전형이다, 면접이다 하는 것을 보러 다녔다.
일요일이었는데 남포동 화방에서 화구를 사고 자주 가던 음악감상실 '무아' 에서
음악이나 듣기 위해 유난히 추웠던 남포동 겨울거리를 걸어 들어가는데
마산에서 입사 관련 면접을 보고 있어야 할 형이 반대편에서 걸어 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의 파시즘이 온 집안을 휩쓸던 시절이라 형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 놀라움이었다.
형도 나를 보았다.
뭔가 해명을 해야했던 형이 입을 열었다.

"뭐 면접이라고 가봤자 지방 삼류대학 원서 결과 뻔하고,
집에 있어봐야 눈치만 보고... 그냥 모른채 해라"

길바닥에 시선을 두고 발끝으로 땅바닥 먼지를 토닥거리면서 뱉어 내는
형의 이야기는 하얀 입김으로 날아갔다.
자갈치 시장 쪽으로 훠이 훠이 내려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지려고 했다.
화방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어진 나는 바로 음악감상실 무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이 음악이 빙초산 같은 겨울 싸한 공기를 헤치고 들어선 실내에 막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후 나는 이 음악을 우연히라도 듣노라면 항상 그 겨울 남포동 입구,
지금의 piff광장 한가운데가 생각나고 괜히 그날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져
코끝이 알싸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란 애시당초 없었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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