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1/03
2004.11.2



양지만 밟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이란 만나면 거의 웃는 분위기지만 그들이 속으로
지금 어떤 속앓이를 하고 있는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알지 못한다.
대개 일상의 소소한 어둠은 속으로 삼키고 넘어가기 마련이고
세월이 약발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네 삶의 문제란 것들은 해결책이 없기 일쑤다.
자연적 증발 또는 망각을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는 그 자체를 잊어버린다.
또는 스스로 외면하거나.

차마 뱉어낼 수 없는 '나의 뒤안'은 일상의 아주 소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일생을 옹이로 몸 안에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 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
나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저런 일들을 우리들은 대화의 안주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병신'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별 생각없이 내뱉는 단순한 하나의 단어는 어느날 동석한 일행 중 한명이
바로 '병신' 일 때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허공을 날아다닌다.
지나온 세월 속에 나에게는 세명의 장애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중학교 시절 뇌성마비 친구였던 고철수는 항상 그랬다.
'나는 이름도 고철이다. 병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그림친구인 팔과 다리 소아마비 이상헌은 나를 보고 자주 떠벌렸다.
'병신 같은 놈' 이라고.
그것은 일종의 냉소적 페이소스였다.

92년에 내 친구 거시기가 사망사고를 내어 몇개월 징역을 갔다 온 이후
나의 친구들은 '이 새끼 사람 죽이겠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시 운전을 하는 녀석의 차를 타고 다니다가 사고를 냈던 길을 할 수 없이
지나칠 때 마다 나는 녀석의 굳은 얼굴을 느낀다.
몇년 세월이 지나 술자리에서 녀석은 딱 한번 아주 짧게 토해 내듯이 말했다.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미치겠다'
내 주변에는 몇몇 동성애자들이 있는데 남자들의 모임이란 것이
원래 성을 소재로 한 농담이 흔한 것이라 소수자가 의외로 소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한센병이라고 하는 문둥병 환자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손이다. 손을 잡는 것.
제 아비 어미의 손을 잡아보지 못한 탓이다.






지난 밤 비에 가을이 다 떨어져버렸다.
좋지 않은 컨디션을 만회하려고 은평도서관을 청해서 올라갔다.
도서관 뜨락에 나뭇잎이 수북하고 제 명을 다했다는 시늉을 충분히 한다.
누구나 '가을이 끝이 났구나' 라고 나뭇잎의 신세를 객관화 하지만
나뭇잎이 땅에 눕는 횟수가 거듭되면 우리도 결국 별 수 없이 눕게 될 것이다.
세상만사 현상과 본질에 대해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완전한 객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뒤안' 에는 객관으로 위장한 무수히 많은 숨겨진
그늘들이 존재한다.
나는 때로 사람이란 자의식을 가진 동물은 그 그늘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자주 그 뒤안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좋지 않지만
너무 강하게 그 뒤안길을 부인하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자살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길을 걷다가
달려 드는 차를 피하는 것이 사람이다.
나의 앞뜰이 화사한 것은 나의 뒤안이 있기 때문이니
때로 生에 대해 감사하자.
나의 뒤안은 나의 앞뜰의 화사함을 위해
기꺼이 그늘을 마다하지 않은 生의 거름이다.
냄새나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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