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1/10


2004.11.10

화요일은 오래간만에 思他를 만났다.
녀석은 지난 금요일부터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진작에 연락했다면 토요일 결혼식도 보고 그랬을 것인데
게시판은 통 보지 않는 듯 요즘 돌아가는 사정에 완전히 깜깜했다.
부산과 서울이라는 거리는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니 역시 서울사람과 부산사람으로 만난다.
함께 진행하는 일이 없다보니 이야기도 궁하다.
일민에서 커피에 샌드위치 한쪼가리 놓고 궁시렁거리다가
밤차로 내려갔을 것이다.
'다음에 연락하자'

지난 주 토요일의 결혼식 때문에 간만에 부산의 친구와 통화를 했다.
미리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으로 시작한 간만의 긴통화는
그간의 일상과 변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간에 별다른
변화란 것이 없다.
휴먼아이가 없어서 간혹 보던 소식도 못본다고 하길래 내 개인사이트를
알려주었다.
'다음에 연락하자'

오늘 낮 충무로 필동면옥에서 막 냉면발을 삼키려는 순간 진동이 울린다.
감이 멀다. 전화가 끊긴다. 다시 전화가 온다.
'행님 저 ***입니더'
일년에 두어번 안부를 물어오는 후배다.
박대할 수 없는 전화라 급하게 몇마디 하고 밤에 꼭 전화를 달라고 했다.
이전 핸드폰이 사망하면서 잃어버린 전화번호 중 하나다.
저녁밥 먹고 나자 전화가 온다.
다시 긴 통화가 시작되었다.
녀석에게 나는 부채가 많다.
대학 시절. 대책없이 모든 것을 황무지에서 만들어 가던 학교라 나는
참 무지막지하게 많은 일들을 벌였다. 4년이 모자라 1년을 더 다녀도
이놈에 학교 일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계속 학교에 잡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교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 시절 표현으로 장 이전을 결정했는데...
녀석에게 모든 일이 다 넘겨졌다.
원래는 두 녀석에게 학생회관 일과 단과대 일을 분리해서 넘길 생각이었는데
한 녀석이 사라졌다.
어쩌겠는가. 한 녀석에게 다 넘길 수밖에.
나는 녀석이 중간에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 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후배 녀석은 묵묵히 학교를 끝내는 순간까지 일을 했고
역시 내가 떠날 때와 한가지로 후배들에게 한짐 안겨 주고 나왔다.

밀양의 어느 공장에 있단다.
작년인가 통화할 때는 인력공급업체에 있다고 했는데.
내가 부산에 있을 당시에 녀석은 닭숯불구이집을 2년 정도 했다.
본가 가까이에 있었던 그 집을 간혹 방문했고
시간이 좀 지나자 녀석의 숯불구이는 제법 한가락 하는 맛을 내기도 했다.
먹는 장사는 역시 힘든 장사였는데 배부른 녀석의 아내이자 나의
후배이기도 한 부지런한 마누라는 함께 열심히 그 장사를 계속했다.
숯불판 쑤세미로 밀고 나면 새벽 3시가 되어서 끝나는 장사였다.
하지만 장사는 여의치 않았다.
간만에 녀석과 긴 통화를 하고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키우던 개 팔아서 캔버스 사서 그림 그렸던 놈인데 이제
밀양의 어느 공장에서 가족과 떨어진채 돈을 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녀석을 항상 존중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미대 나왔다고 작업실 옆구리에 차고 앉아서 작업 열심히 하지 않는 인사들 많다.
그들도 나름의 필연이 있겠지만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기도 하다.
융자 끼고 좀 물려 받고 해서 까페 같은 것 하나 차려서 말아 먹는
경우들도 많이 봤다. 험한 일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겠지.
또는 몸으로 일해서 밥이나 겨우 먹겠지라는 생각.
후배 녀석은 그런 정신의 사치가 없다.
뭐든 뛰어 들어 모진 목숨 연명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아름답다.
이것이 아름답지 않다면 뭐가 아름답단 말인가.
통화의 끝은 다시 기약없는 한줄이다.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하자'

언제 연락할 것인가.
힘들게 잊지 않고 전화를 해준 고마운 이들에게,
나보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후배에게 나의 '다음'은 언제인가.
서울에 올라 온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구체적으로 사귀고 있다.
하지만 나의 과거, 내 살점과 같은 후배와 친구들은 KTX 보다 빠른 속도로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다음에 연락하자' 는 말은 기만이다.
지금 당장 한밤을 달려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이 아닌 모든 '다음'은 다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밤에 나는 다시 혼자말을 한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전화하마.

4dr@naver.com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