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1/12
2004.11.12

수요일 밤에 메인페이지 이미지 수정한 것을 작업서버로 올려 놓고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밥벌이 일이든 아닌 일이든 일정을 다투면서 해야할 일이 지금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란 것이 당장 한밤중의 전화 한통으로
금새 끝날 몇시간 만의 해방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제 미루어두었던 두어가지 사이트들을 자발적으로 손보고 만드는 일이
남아 있지만 누가 나를 다그치는 일이 아니니...
물론 집안 경제로 보자면 지금의 해방감이란 두달 후에 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여튼 나에게 목요일은 홀가분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나는 나의 일정과 스케줄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바보 같은 말이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지.
꿀꿀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다가구 주택의 대문과 마당은 항상 이집 저집의
공과금 고지서로 어지럽다.
지금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채무고지와 강제이행명령서 같은 것도
있고 201호 같은 경우 나도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항상 고지서가 날아다닌다.
반지하의 세가구도 밤이나 되어야 사람이 들어서는데
한밤에 그들이 마당에 늘려 있는 고지서를 챙길 가능성도 없는 듯 하고.
정말 어느 방에서 누가 죽어 썩어나가도 나부터 모를 것이다.






수요일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왔다.
그 비가 목요일까지 계속된다.
비오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 비 그치면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가을은 가는 모양이다.
카메라를 챙겨서 나섰다. 이곳도 그렇고 다른 사이트와 블로그에서도
가을 사진들이 난장이라 지겹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가는 가을을 담아 두고 싶었다.
나에게 때로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마음을 추스리는 의례이기도 하다.
기자촌 쪽을 염두에 두고 지하도를 올라선다.






연신내 시장을 넘어서자 역시 거리는 좀 한가로워진다.
약간 오르막 길에서 길바닥 접사를 염두에 두고 쪼그리고 앉았는데
꼬마 녀석이 길을 넘어서 오고 있다.
오후, 하교길인 모양이다. 영후도 내가 집을 나서기 직전에 막 들어왔었지.
11월 11일 빼빼로데인데 빼빼로는 아니고 과자를 먹고 있다.
행복하냐?
아저씨는 네 나이 때 오늘 밤은 아버지의 술주정 없는 평화로운 밤이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곤 했는데.






구파발 쪽으로 하늘이 검다.
비는 이제 그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비가 오려나.
사진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하늘이 사뭇 심각했다.
마치 여름의 소나기를 머금은 하늘처럼 보였다. 어차피 흐린 날이어서
사진은 뭐 별 건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비까지 맞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이는 내 뒤편의 하늘은 또 구름 사이로 햇볕도 보이고 하니
쉽게 내릴 비 같지는 않았다.
물러 가는 놈이겠지.






앞의 사진 오른쪽 모서리에 보이는 집이다.
지나칠 때 마다 이집 앞마당의 나무들이 다양하고 화사했는데
집은 워낙 낡은 상태라 그것이 지금 눈에 보이는
단풍의 막연한 아름다움만 있는 집은 아니다.
단풍의 화려함이 오히려 쇠락한 분위기를 부추기는 그런 집이다.
지나다보면 살고 싶은 집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






길가의 나뭇잎은 겨울 분위기다.
나보다 열걸음 정도 앞서가던 젊은 아주머니가 횡단보도에 멈추어 선다.
아이를 업은 저 자세는 역사적으로 나에게 항상 많은 상상력을 유발시킨다.
내 친구 오순환의 그림이 생각난다.
광안리 바닷가에 아이를 업고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는 부부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녀석이 살아 온 길을 대충 알고 있는 지인의 눈으로 보기에
그 그림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였다.
녀석의 개인전에 글을 쓰면서 나는 항상 뒷모습만 그리는 녀석 그림의 주인공들이
정면을 응시할 때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둥의 상투적인
비평을 한 적이 있다.
녀석의 그림은 정면으로 돌아섰지만 내가 생각한 정면의 모습은 아니었다.
뒷모습은 현실이었는데 정면으로 돌아 선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또 다시 뒷모습이지만 카메라를 저 여인과 아기에게 집중하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이 없다. 접사모드로 두고 나뭇잎에 집중하면서 저 여인을 표현하기로 했다.
흘깃 나를 봤지만 나는 짐짓 나뭇잎을 찍는 척 눈길도 주지 않고 몇장을 눌렀다.
아기 엄마, 행복하십니까?
요즘도 詩를 읽나요.
서태지를 여전히 좋아하나요.






먹구름 쪽으로 다가가자 북한산이 펼쳐진다.
오늘 이곳 기자촌에서 바라보는 산의 느낌이 좋다.
안정적이다. 산은 커 보인다. 북한산은 들어가는 것 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나는 그렇다.
단풍이 사뭇 장하고 좋다.
이런 장면 앞에서 나는 간혹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






늘상 내려다 보고 사진을 찍는 골목에 다시 카메라를 둔다.
화초가 가득했는데 모두 사라지고 잡풀만 앙상하다.
집주인은 겨울을 대비하고 가꾸기를 포기했겠지.
이 골목에 더 이상 희망이란 것은 힘들 것이다.
인근 복덕방엔 투쟁과 이권을 동시에 내건 사인물들이 존재할 뿐이다.
꽃들은 말이 없고 사람만 아우성친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처음으로 내가 사진을 찍던 골목길로 내려갔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내가 사진을 찍던 난간을 올려다 보았다.
다르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심지어 예쁘기까지 했던 이 골목으로 내려서자
이 길은 누추하고 피곤이 엄습했다.
내려다 보는 것과 내려다 보임 당하는 입장은 다른 것이다.
내 일이 아닌 것이다.
타인의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예사로운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와 관계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데도 사람들은, 나는 역시 그렇다.
나비효과.
현실에서 나는 내가 마시는 산소의 일부에 중국에서 날아 온 아황산이 섞여 있는
것을 인식하면서 숨쉬지는 않는다.






골목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느낌의 북한산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골목은 아주 낡았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 중간 중간에 멈추어 서서 산을 바라 보았다.






이 골목길에서 나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마치 오랜 시간 관찰하던 침입자가 마침내 그 길을 들어서서
망설이는 듯 한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다.
누군가 저 대문 중 하나를 열고 나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짧은 머리에 카메라를 손에 든 이방인에 대해.
간혹 있는 개들은 그렇게 열심은 아니었지만 여튼 짖기도 하고 그랬다.
간혹 뒤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고 그들이 나를 지나칠 때 까지 나는 그냥
땅바닥만 보고 카메라를 만지작 거렸다.
그들이 저 길모퉁이로 돌아서는 장면을 찍고 싶었지만
나는 단 한컷도 찍지 못했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자 길은 끝이 났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몇가구들이 있었고 그 길을 통과해서 산으로 오르는 모양이다.
이 골목의 이름은 폭포동이었다.
폭포동. 반사동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었나. 손오공이 살았던.
신선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큰 도로변으로 올라왔다.
만 하루 동안의 비에 나뭇잎이 많이 떨어졌다.
아이의 옷차림은 겨울로 가고 있다.
요즘 할머니들의 필수적 미션은 손자손녀 돌보기다.
농경사회라는 용어가 사구체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지만
도시 중심의 사회에서 노인은 분명히 천대 받고 있다.
존중받지도 못한다. 자신의 욕구로 성취하는 노동은 불가능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임무만 주어진다.
핏줄이라는 이유로 우리네들 부모님들께 넘겨지는 노동의 양은
가히 폭력적이고 막무가네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있었듯이 우리의 부모님들도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30년 전에 당신들이 원한 2004년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만 존재한다.
문화는 없고 생존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미덕을 찾기란 힘들다.
커피 마시고 트랜드에 걸맞는 식당을 기웃거리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최소한 한달에 한편 정도 보는 것이
문화는 아닐 것이다.
자기 직업에 대한 확신과 철학 같은 없다면 우리들 삶에
문화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먹물 = 문화적이라는 등식과 동일할 것이다.






되돌아 가기 위한 출발선 같은 이 지점에서
나는 가장 화사하고 안정적인 색감을 만났다.
산책을 나선지 한시간이 넘은 모양이다.
느린 걸음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흐른 모양이다.
고등학생들의 하교가 시작되었다.
내가 저 나이에 이런 예쁜 가을길을 걸어면서 뭔 생각을 했을까.
녀석의 머리 속에는 다가와 있는 시험에 대한 생각이 가득할까.
아니면 너의 첫 섹스를 위한 상상만 하고 있냐.
어쩌면 이미 첫경험을 했을 수도 있겠지.
음악은 어떤 음악을 듣냐.
네 나이 즈음 나는 헤비메탈만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조동진이라는 가수가 내 귀로 들어 온 것이 아마도 네 나이 즈음일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에 가수는 조동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몇시간째 조동진과 김현식의 음악만 듣고 있다.
나의 이런 질문이 너에게 '옛' 이라면 당연한 것이겠지.
나도 가요무대를 여전히 보지 않거든.
책은 읽냐.
논술 때문에 몇몇 메뉴얼 성격의 시와 소설만 읽는 것은 아니냐.
나는 네 즈음에 하루 한권의 소설을 읽었다.
공부를 작파했으니 뭔가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지.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뭔가 다른 스킬을 구사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책은 인간에게 필요없다고 흰소리들을 하곤 하지만
본심은 아니란다.
행복하니?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니.






늘상 쉬는 벤치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며칠째 좋은 기분은 아니다.
갈등은 항상적인 것이고 사람은 그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반대편으로 방향을 잡곤 한다. 꼴통인 것이지.
행복이 아니면 불행인가.
아니다.
80%의 '그냥'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 80%의 그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10%의 특별한 기쁨과 10%의 특별한 고통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짐짓 믿고 싶은 것일까.
조동진의 노랫말 중에 항상 가슴이 서늘한 대목은
'지키지 못한 약속들' 이란 부분이다.
진지했건 건성이었건 입밖으로 나간 말은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마련인데
상대방이 진지했을 때 그 말은 하나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의미는 항상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의식 있는 것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지키지 못한 약속들'은 생각의 死産이다.
생각쯤이야 수천번 살해했으니 죄의식이 희박해지는 것일까.

바로 옆 벤치에 할머니 두분이 앉는다.
멀리 앉은 할머니가 담배를 두어 모금 하고는 곧 일어나신다.
카메라를 들고 슬며시 950의 장점인 도촬에 들어가고 노인네들이라
나의 행동에 대해 무관심하시다.
고무줄 칭칭 이후 나에게는 징크스와 같은 카메라 사용법이 있는데
찍었던 사진을 카메라로 다시 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번 그렇게 했다가 사진을 날렸다. X파일이기도 하고
밤에 손톱깍지 말라는 말씀 같은 신종 디지털 터부다.
나보다 마르고 키가 큰 남자가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내 카메라를 바라본다. 말을 걸고 싶은 모양이다.
'4500 입니까?'
아는 채를 한다. 나는 혹 병적인 디카족이 아닐까하는 의심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950 입니다' 라고 대꾸해줬다.
만져보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찍었던 사진을 몇컷 보여주었다. 플레쉬메모리의 저주가 발동되면 안되는데...
자신은 뭔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무슨 기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찍어보는 실습까지 허용했는데 완전히 예술가 스타일이라
몇분 동안 찍질 못하고 조준만 하다가 밧데리를 다 날려 버렸다.
고뇌형이구나.






앞의 할머니들이 일어나고 잠시 후 완전히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가
무단으로 길을 넘어 오신다. 이 길은 노인들이 많다.
세대에 관한 나의 최근 관심은 젊음 보다 늙음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젊은이는 해봤다. 과거다. 흔한말로 나는 장년이니 생물학적인 젊음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점점 세상사에 무감해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줄 알았다.
노련미란 결국 무감함에서 풍겨지는 감정의 무딤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멋있게 늙어가야 한다는 명제는 이 지점에서 갈리는 것 같다.
나를 보고, 또 나보다 좀 더 살아 온 사람을 보니 상처에 더 민감한 것이 늙은이들이다.
상처는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20대 때에 심장에 1mm 깊이로 자상을 주었던 동일한 사안은
40이 되면 1cm 정도로 그 깊이가 더해지는 듯 하다.
권투선수가 링에 오를수록 두려워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보다.
고기는 먹어본 놈이 더 잘 먹지만
매는 맞아 본 놈이 더 잘 맞는 것이 아니라
맞아 본 놈의 고통은 더 아픈 것이다.
오후에는 몇군데 전화를 돌린다. 결재 독촉이다.
품위 때문에 현실을 비켜가려는 나의 의지는 의미가 없다. 목전에 임박해서 전화기를 든다.
나도 나지만 이번 주에는 A의 입원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심정을 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요'
'와, 요즘 힘드네요'
'내일 전화드릴께요'
정면으로 마주하자 들리는 소리들은 아우성뿐이다.
이번주에 뭐가 예정대로 되는 일이 없다.
까치가 그랬다.
'링은 나에게 지옥이었어'

금년 가을이 짙다.
몇년 가을 중 가장 긴 가을, 가을 다운 가을인 듯 하다.
아니면 가을은 그대론데 사람이 가는 가을을 붙잡고 있는 것이겠지.
몇시간째 이 글을 쓰고 있다.
대개 한시간 안으로 해결하는데 오늘 이런 저런 생각과 음악을 듣고
담배 피러 밖으로 나가고 부산스럽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마치 내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매달린 꼴이다.
마치 정면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 같은 친구의 그림 속 뒷모습 처럼.
잘 늙어가고 싶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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