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1/23


2004.11.23

내 경험으로는 글이란 것은 믿을게 못된다.
모든 글 일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말해서 iam1963과 같은 사이트에
남겨 지는 글들 같은 경우가 그렇다.
물론 때로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고 있는 어떤 사실들이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거꾸로, 실생활에서 나에게 지구는 여전히 둥글지 않다.
둥글다고 책과 입으로, 영상물로 전해들었을 뿐이지 내가 실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믿는다. 대개의 경우는 그렇다.
글 자체만 믿는 것이 아니라 글을 만든 주체까지 글과 연결시켜 형상화하고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실제로 당사자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수단이자 강력한 은폐물이기도 하다.
글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글을 만든 주체를 멋있게 만드는 성분이 있다.
글로만 보자면 '이(나 또는 당신)' 인간은 세상에 그렇게 깊은 사고와 이해력을
가진 인간이 더 이상 있을 수도 없고, 내가 어떤 고민에 봉착했을 때
달려가서(요즘 같으면 메일로) 카운셀링을 받고 싶은 1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글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 강연이지만 여튼 강연은 진행 중에
'지금 먹혀들고 있다, 아니다' 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92년, 내가 한 강연 중 가장 강력하게 먹혀들었던 어떤 강연이 끝난 후,
앞줄의 일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박수를 쳐주었지만 내가 취한
강연 직후의 후속 행동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강연료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액수에 만족한 나는 뒷풀이 자리의 뜨거운 호응을 물론 만족스럽게 소화했다.
만화 그리는 박재동 선생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던 나의 선배 무리들은 '재동이 행님이'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이면 미술실에 모여서 100원씩 내고 재동이 행님이
'입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만큼 박재동 선생의 입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간혹 티비에서 보이는 선생의 어눌함과 썰렁함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달변인지 어눌함인지. 내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다보니.

모든 글은 픽션이다.
역사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자연과학 교양서 조차 그러하다.
'의도'는 '생각에 개입하기'가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의도하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다.
사실에 대한 기록일지라도 그 사실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글쓰는 이의
입장은 '의도'가 결합된 고도의 의식적 행위이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술' 이다.
문제는 그 기술이 자동차를 고치는 기술처럼 누가 봐도 동일한 목적을
향한 기술이 아니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기막힌 자동차 수리공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기막힌 언어기술자는 또 다른 '상상'을 양산한다.
그 상상속에는 글쓴이에 대한 환상이 첨가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일상의 나를 생각하면 이런 저런 글들이 모두 위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글로 표현하는 일과 일상을 살아가는 일은 자체로 동전의 양면이다.
그 양면이 모두 나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좀 간지러운 일이기도 하다.
어떤 자연스러움도 믿을 수 없게되어 버린 세상이다.
자유분방함과 거침 없는 행동들도 하나의 상품화 코드로 보이고
글들은 더욱 이전부터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울부짖음 이외의 다른 표현 수단을 맨 처음 사용할 줄 안 이는
인류 최초의 연기자였을 것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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