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2/01


2004.11.30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산 위에 있는 양부의 산소 앞에서 넋을 놓고 발 아래로 펼쳐진
잡목과 나뭇잎의 반짝임을 보았다.
사실 한참이라고 해봐야 몇십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인사만 드리고 담배 한대 피고 일어서는 것이 모두였던 것을 생각하면
담배도 피지 않은 상태에서 몇십분을 역광에 반짝이는 나뭇잎과 잡풀을 보고 있었다.
11월 30일에 어울리게 키를 넘어 서는 잡초와 무성한 잎사귀들이 사라지고
시야가 확보된 작은 산의 능선을, 내가 이제 내려가야 할 산길을 굽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머리속인지 가슴속인지 여튼 몸 속 어딘가에 대고
조용히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새벽 5시 20분에 맞추어 둔 핸드폰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하지만 옆으로 다시 쓰러져 잠시 졸았다.
머리를 흔들고 보니 6시가 좀 넘었다.
7시 20분 버스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교적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
아침으로 떡국까지 끓여먹고 집을 나섰다.
남부터미널은 신기하게도 카드로 계산을 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시외버스터미널이 그런 것일까?
나의 목적지는 원지였지만 그 버스를 타려면 10시를 넘겨야 한다.
8시 20분에 출발하는, 산청에 잠시 정차하는 진주행 버스 표를 8시 19분 경에서야 끊었다.
카드로는 안된다는 말에 5초 정도 이게 뭔 말인가 멍하게 있었는데 왜 안되냐는 둥의
실랑이성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아마도 9시 버스를 타거나 진주까지 내려가서
다시 원지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야했을 것이다.
버스 안은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곧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금산휴게소는 전국에서 가장 쾌적한 고속도로 화장실을 보장한다.
안내방송에 잠이 깨어 눈을 비비고 보니 금산휴게소다.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정신을 챙겼다. 어제 나는 머리 기르기를
중단하고 다시 머리카락을 밀어 버렸는데 오전 10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나의 머리는 약간의 상쾌한 냉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나의 잠도 달아났다.
이제 덕유산 구간을 통과할 것이고 산청까지 거의 국도와 같은 풍경을 제공할 것이다.
11월 30일이다.
나는 얼마 전에 방문했던 산소를 다시 방문하려는 것이다.
시제(時祭)를 지내러 가는 길이다. 우리집에서는 묘사라고 한다.

음력 10월에 지내는 묘사는 사실 5대조 이상의 조상들에 대한 합동차례 같은 것인데
교동에서 지내는 그 제사에는 나는 참석하지 않는다.
내가 참석한들 누군지도 모르고 이전에는 항상 그 역할을 형이 도맡았다.
그들(종가로 표현되는 이상한 집단 또는 관념)의 머리 속에
형은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정상인이고
나는 그림을 전공한다는 약간 이상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 조차 항상 재차 묻곤했다. '막내는 뭐 한다꼬?'
장남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한들 이제 아버님 항렬(行列)의 기수들은
대략 나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으시고 나와 같은 항렬의,
이름만 간혹 들었던 형님뻘들이 자신들 역시 하기 싫은 행사지만 갑오경장 때
양반을 사온 집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 위한 전통에 따라 습관적으로
이 산소 저 산소를 돌면서 이쪽은 몇대 할아버지 묘소고... 를 반복하는 것이
요즘의 시제다. 그리고 그 훈련은 대략 일요일에 실시된다. 직장인이 대부분인
후손들을 위해서 그렇다. 하지만 나는 토, 일요일은 이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항상 시제를 지내러 간다.
흔히 시제라고 말하는 그 시기에 항상 연중 마지막으로 산소 문안을 간다.
토, 일요일만 가능한 형과 일정 조정 비슷한 것을 통화로 시도하는 척 하다가
'뭘 둘 다 갈 필요 있나? 그냥 나 혼자 다녀올께' 로 정리헸다.
나는 교동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미 교동타작마당에는 '부산 권기자집 막내는 싸가지가 없다'는
풍문이 무성한데 빡빡 깍은 머리를 들이밀고 나면
'부산 권기자집 막내아들 있지, 갸가 결국 돌았다네'
는 풍문이 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금산휴게소에서 산청에 이르는 여정 동안 나는 텅빈 고속버스 안의
좌석을 옮겨 다니며 11월 30일이 제공하는 황홀한 을씨년스러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다. 달포 전에 산소를 방문했었고 오늘은
특히나 산소만 보고 바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었기에 카메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좀 아쉬웠다. 길은 충분한 11월 풍경이었다.
우습게도 스케치북에 연필로 스케치하기에 딱 좋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산청에서 내려 바로 원지로 이동하는 버스를 탔다. 15분 정도 거리다.
경호강이란 강을 따라 내려가는 국도인데 어릴 적에는 이 길이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란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길에 대한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야한다.
반짝이는 오전의 강물과 뿌연 대기 속에서 첩첩이 멀어지는 지리산 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거의 눕다시피 창밖을 바라보았다.
원지에 도착해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시간을 알아두고 택시를 잡아탔다.
아랫쪽 산소부터 시작해서 산 위의 산소까지 모두 완주하는데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혼자서 움직이면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다.
40분만에 나의 年간 마지막 미션을 끝내었다. 서울에서 거의 진주까지 내려와서
바로 서울로 올라갈 것인데, 나는 이 사십분의 미션을 위해서 오늘 7시간 정도
고속버스를 타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즐거운 불합리다.
영후는 누리지 못할 불합리다.
그리고 나는 산위의 산소에서 너무 넉넉하게 남은 시간을 염두에 두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산 위에 있는 양부의 산소 앞에서 넋을 놓고 발 아래로 펼쳐진
잡목과 나뭇잎의 반짝임을 보았다.

서울로 전화를 해서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하고
원지로 나가서 농협에서 돈을 찾아 서울이 아닌
덕산쪽으로 들어가 버릴까.
서늘한 대밭이 인상적인 중산리쪽 국도를 몇년 만에 통과해서
바로 등반으로 들어가서 오늘 밤은 천왕봉 코 밑의 법계산장에서
보내고 내일 새벽으로 천왕봉을 뒤로하고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가파르게 촛대봉을 넘어 세석평전을 가로질르는 미칠 것 같은 아득함을 누리고
벽소령에서 밤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노고단을 바라고 능선을 종주하는 것이다.
오후 2시까지 노고단에 도착할 수 있다면 공식적인 등산로는 아니지만
문수골짜기를 바라고 내리막이니 3시간 정도면 지리산형의 앞마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문수골 뒷통수에서 거칠한 얼굴로 형 앞에 나타나면
형의 표정은 어떨까. 그리고 가이드 없이 내 머리 속으로 방금 그린 코스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 베낭 속에는 애팔레치아 산맥 종주에 관한 책이 들어 있었고
나는 어제 머리도 삭발을 한 상태다.
그래서...
나는 머리속인지 가슴속인지 여튼 몸 속 어딘가에 대고
조용히 나를 억눌렀다.

나는 지리산 종주의 갈망을 산소에서 원지까지 걸어 나오는 것으로,
40분 정도의 도보로 대체하고 원지로 나와서 자장면 곱배기를 시켰다.
짜디 짠 그 자장면을 다 먹고 정말 불결해 보이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그리고 이전에 가장 거대했던 농협 하나로마트를 누르고 200평 정도의 위용으로
자리잡은 그린마트라는 마켓에서 400원짜리 생수 한병을 샀다.
그리고 마켓의 옥외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던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다 끝날 때 까지 듣고 서 있었다. 담배도 없이.

* 사진은 작년 이 맘때 찍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원지 다리 모습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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