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2/03


2004.12.2

유괴의 대부분은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그것을 유괴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유괴를 당했는데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유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머니 고향 출신의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었는데 친척은 아니고
그저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짐작컨데 취직자리나 뭐 그런 것을 부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튼 자주 왔으니 얼굴 잘 알고 나와는 친하게 지냈다.
아마도 그때 내가 열살이었을 것이다.
어느날인가 점심 무렵에 소련인가(그때는 소련이었다) 불가리안가 하는
나라에서 온 서커스단의 공연을 보러가자는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같이 그 공연을 보러갔다.
아마도 지금의 동대신동에 있는 구덕체육관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이리저리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남포동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기억은 가물거린다. 아주 늦은 밤, 지금으로보자면 스탠드바 같은 술집에서
그 아저씨의 친구들이 술에 취해서 여자들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시내의 여관에서(복도식의 마루가 있는) 잠을 잤다.
아마도 비가 왔었지. 잠결에 아저씨가 술주정 삼아 옆 친구에게
'오늘 이 녀석을 데리고 진주로 가려고 했다' 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이라기엔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어느 식당으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그 시원한 맛의 국이 바로 복어국이었다.
새벽이었는데 식당 안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주 많이 세월이 흘러 나는 그날 새벽의 그 복국집이
유명한 영주동 복국집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식사 후부터 오전까지의 상황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여튼 점심 무렵에 아저씨는 나를 집 아래에 바래다주고 갔다.
나는 난생 처음 외박을 했기에 꾸중을 들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약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집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집밖으로 가족들이 다 나와 있다. 이웃 사람들도.
나는 유괴를 당했던 것이다.
나의 마음 약한 유괴범은 거사를 실행하지 못하고 지난 밤을
술과 뜬눈으로 보내고 오전까지 갈등하다가 나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왜 식구들이 울면서 나를 끌어 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고 여튼 꾸중하지 않으니 대략 상황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주 간혹, 그날 새벽의 그 복국의 알싸한 맛이
혀끝에 되살아나곤 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 유괴범 아저씨는
우리집 아래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어떤 이해와 양해 과정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한씨 성을 가진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삼촌이 알 것인데... 친구였으니.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