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4/12/04


2004.12.3

1992년 6월 어느날.
부산하고도 구서동의 태창섬유에 다니던 아주머니는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출근했다. 잔업수당을 위해서.
점심 시간이 끝났고 몇시간 후면 교대시간이고 집으로 가서 밀린 빨래를 하고
몸도 좀 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92년 6월 어느날.
부산하고도 구서동의 어느 비디오가게.
어쩔 수 없이 형의 비디오 가게를 관리하게 된 K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가게와는 관계없는, 원래 그의 본업과 관련한 몇 군데 거래처에
결재와 관련한 전화를 걸고 있었다.

태창섬유 아주머니는 오후 3시경에 퇴근을 했다.
고된 일을 끝마쳤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공장문을 나섰다.
초여름 날씨는 약간 덥기까지 했고 신록을 벗어난 초록은
제법 제 빛깔을 내고 있었다. 공장 앞에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었다.

K는 월요일이면 당장 목을 죄어 오는 몇가지 돈 문제로 거래처와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중이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떠 안은 비디오가게는 가정집의 안온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고
구름 위에 있는 듯한 생활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내 지금 올라가께요. 돈 준비 해두쇼!"

공장 입구를 벗어난 태창섬유 아주머니는 양쪽 4차선 도로의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신호등은 계속 깜박이는 붉은색이었다.

K는 급한 마음에 차를 거칠게 몰고 양산방향으로 올라갔다.
4차선 도로는 일요일이기도 했고 시외로 빠져 나가는 외곽 도로였던 관계로
밀리지는 않았다.

신호등은 고장이었고 아주머니는 계속 깜박이는 신호등을 기다릴 수 없어
앞장 서서 조심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오던 시내버스가 멈추어 섰다.

K는 앞의 신호등이 계속 붉은불 상태에서 깜박거리는 것을 보았고
고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2차선의 버스가 멈추어 서는 것을 보았지만
길을 건너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그대로 엑셀을 밟고 직진했다.

사고가 난 다음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정비소를 방문했다. 친구녀석의 업무노트가
사고차량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석 오른편의 차창은 박살이 난 상태였다.
시속 80km 정도의 속도로 달렸던 녀석의 검정소나타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막 버스 앞머리 쪽으로 나서던 아주머니를 아무런 완충 장치 없이,
순간의 망설임도 가능하지 않은 찰라로 충돌했고 아주머니는 엄청난 순간적 속도와
충격으로 앞유리를 박살내고 녀석의 운전대 오른편 좌석으로 날아 들었다.
우리는 녀석의 노트를 찾았지만 살점과 피로 얼룩진 시트속에서였다.
합의다 뭐다 하는 지난한 과정과 위기가 발생하면 극명해지는 가족관계의
명암을 보기를 몇개월 지속하는 동안 내가 종종 떠 올린 생각은 이것이었다.
'녀석과 아주머니는 무슨 인연일까'

업(業)이란다. karma.
緣을 따지기 전에 업이란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제 스스로 누워 있는 밭은
제 몸에 뿌려 지는 씨앗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둘은 만나서 싹을 틔운다.
밭과 씨앗, 둘 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업은 실체가 없다.
그냥 그렇게 생겨났다.
이틀째 읽고 있는 책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극성이라고 생각하는 별빛은 680년 전에 북극성이 발한 빛이었다.
빛의 속도로 680년을 달려와 지금 내 눈과 만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에 북극성이 폭발했거나 박살났다고 하더라도
나의 남은 생애 동안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소멸하기 전의 별빛이 100년 동안 계속 나의 눈으로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인연(因緣)이라 표현하기 가슴 시린 만남이 있다.
인연은 어떤 문학적 여지를 남겨 둔 듯한 여백이 있는 듯 한데
업(業)이란 표현은 그런 여백도 하나 없는 절박함만 빽빽한 숲인 듯 하다.
따지고 보면 하찮은 만남은 없는 것 같다.
위 사진의 멀어져 가는 고등학생과 내가 2004년 11월 어느날 잠시 스치기 위해서
작용한 전우주적인 우연과 필연의 헤아릴 수 없는 반복과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조건이 만들어지는데 사람의 역사만 동원해도 딱 500만년이 걸렸다.
만남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감사를 표하자.
진정한 덧글러의 철학은 그러해야 한다.
마지막이 어처구니 없군.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