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5/01/03


2005.1.3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의 슈퍼마켓이다.
첫인상에서부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을 만큼
낡고 오래된 구멍가게이다. 말 그대로 구멍가게.
지난 3년간 우리집이 이 집에서 구입한 물품의 95%는 담배였다.
3%의 콜라와 2%의 긴급한 라면과 계란 정도.
길 건너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길에,
은광슈퍼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 애써 비닐봉투를
오른편으로 돌려서 숨겨서 걸어 오곤 했다.
은광슈퍼의 물건은 당연히 대형마트의 물건 보다 조금 비싸다.

이 가게를 지키는 주된 인력은 아주머니다.
하루 중 대략 3/5은 아주머니가 지키는 것 같다. 나머지는 아저씨 또는
이 집의 딸과 아들이 간혹 앉아 있다.
아주머니와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담배를 사기 시작한지
대략 2년 정도 지난 뒤였다.
영후와 함께 가게로 들어갔을 때(그 전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있어요!" 라는 외마디 비명 같은 반응이 첫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매일 담배를 사기 위해 하루에 한번 꼭, 많으면 하루에 두번을
들렸지만 역시 아주머니와 나는 전혀 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몇개월 만에 다시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있었던 것은
2004년 3월 27일, 내가 삭발하고 막 담배를 사러 들어갔을 때였다.
"하이고, 머리를!" 역시 비명 같은 반응을 보여서 몇마디 나눈 것이 두번째이다.

아주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 안의 조그만 계산대가 올려진 책상 앞에
놓여진 TV를 보는 것으로 지탱하고 있다.
표정도 없는 편이고 얼굴은 피곤에 찌들려 있다.
하지만 움추린 자세의 그 아주머니 인상을 결정 지은 것은 아마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그 작은공간에서 반복된 일상을 살았던 그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그 집은 그 구멍가게만으로 살아 온 듯 하고
아주머니와 전형적인 중년의 키작은 뚱뚱이형 아저씨, 전혀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닮지 않은 아들과 딸, 그리고 절반은 가게에 있는 개 한마리가 구성원들이다.
며칠 전 아침에는 그 개가 문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문을
열어 주자 쪼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저것이 늙어서 문을 열지 못하네요..."
아주머니의 아침 멘트였다.

오늘 오후 2시경 골목에 나가서 첫 담배를 피우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각성이 들어 새사람이 되기 위해 사우나를 갔다.
온몸의 비늘이 허물허물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초건성 증상을 보이는
몸뚱이를 탕 안에 누이고 오랫 동안 소요음영하고 있었다.
그때 은광슈퍼 아저씨가 막 탕 안으로 들어왔다.
일상적으로 가게에서 이 아저씨와 나는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아주머니도 그렇지만. 여튼 탕 안에서 마주 친 아저씨와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어... 목욕 오셨네"
"아, 예(그럼 여기 내가 나무하러 왔남)"
답지 않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에게 나도 대꾸를 할 수밖에.
그리고는 다시 각자의 운기조신에 들어갈 수밖에.
눈을 감고 몸을 익히면서 생각을 했다.
'왜 목욕탕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일까'

몇 개월간 나와 영후가 가는 목욕탕은 간판도 요란뻑적지근하고
지역 케이블에서 연신 광고를 하는 대형 찜질방이다. 이전에 이용하던
은광슈퍼 같이 생긴 작고 낡은 목욕탕은 건물 보수 공사로 아직 까지
휴업 상태다. 다시 열릴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나는 이 대형 찜질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설계가 잘 못 되었고 프론트 아가씨들이 너무 뺀질뺀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찜질방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편이다.
특히 가족단위가 많은데 이놈에 아쉐이들이 냉탕에서 다이빙 하는 꼴을
나는 용서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 몸에 접근하는 경우 나는 가차없이 발로 차버린다.
물론 아이 아버지가 주변에 있는지 살피고 난 후에.

오늘은 참으로 몇 년 만에 어떤 할아버지가 등을 밀어 달라고 한다.
전통 이태리타올 두장을 딱 포개가지고 말이다.
3초 정도 생각하다가 몸보시하기로 결정하고 등을 밀어 드렸다.
미는 김에 확실하게 민다고 비누칠까지 딱 세번을 밀었다.
내 등을 밀겠다는 영감님을 만류했다.
아주 흡족했는지 영감님은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경상도 어디요?"
"부산입니더(ㅅㅂ,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데 어떻게 알았지...)"
"부산에 그 뭐지요... 허심청이라고..."
"아, 예. 온천장에 있지요"
영감님은 부산하면 온천장의 대형 사우나 허심청이 생각나시는 모양이다.
몇 마디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올 해 몇이요?"
"서른 둘 됩니다"
"하이고 보기 보다 나이가 많구만"
"아, 니이에~(이 영감이 등 밀어주었다고 립서비스를 하나 아님 사람 보는 눈이 없나...)"
은광슈퍼 아저씨가 거시기를 흔들며 옆으로 휘릭 지나간다.
영락없이 파크랜드 아이템의 몸매다.

평소 보다 긴 한시간 이상을 머물다가 새사람이 되어서 목욕탕을 나섰다.
골목입구 은광슈퍼에 들러 콜라를 한병 샀다.
아저씨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주머니와 아들이 TV를 보면서 재미있어 하는 중이다.
콜라병 손가락 사이에 끼고 나직한 걸음걸이로 골목을 꺽어 돌며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사람이 산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음악은 상보집에서 듣다가 가지고 왔는데 내일 쯤 바꿀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연신내 이야기에는 원래 사용하던 음악이 적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