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5/01/07


2005.1.6

이제까지 내가 한 일의 99%는 소용되고 소모되는 일들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차라리 이 사이트의 글들이 내가 밤을 지새우면서 만든 여러가지 일들 보다
더 오래 남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일주일 동안 Illustrator라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찍은
점(dot 또는 point)은 족히 만개는 될 것이다.
매일 매일 소용되고 사라질 어떤 일들을 충혈된 빠알간 눈알에서
삐질 삐질 눈물을 흘리면서 만들고, 그에 대한 댓가로 밥을 먹고 살았다.
대략 15년은 그렇게 일해 온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대략 5~6년 동안은 그렇게 사라지는 나의 피와 살점들이 안타까웠다.
싸구려 피였고 흔한 살덩이였다. 하지만 싸고 흔하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싸고 흔하기 때문에 더 아프다.
39살 가을에, 삶에 대한 2차 공습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떤 지점을 잡아채지 못했다.
대단한 이권이나 명예를 위한 터닝포인터가 아니라 나를 위한 길을 가기 위한 어떤 지점이었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해 겨울에 서울행을 택해버렸다.
33살 무렵에 찾아 온 1차 공습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던져 왔던 깃발이
내 마음에서 사라진 순간 찾아 온 것이었는데 그때는 뭐 딱히 내가 취할 마땅한 행동이 없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직장 잘 다니고 있던 형에게 취업을 부탁했던 생각이 난다.
좀 늦었지만 밥벌어 먹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고.
놀란 형은 '이게 뭔 이야긴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화가는 그림을 남기고, 가수는 노래를 남긴다. 글쟁이는 책에 새겨진 글을 남긴다.
그것이 똥이건 된장이건 말이다.
마흔을 넘어 마흔 중반을 바라보니 그 너머에 있는 쉰이라는 숫자가 가물거린다.
며칠 전에 비디오로 빌려 본 '세상의 중심에서... 뭘 어쩐다는' 는 영화의
배경이 1986년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1986년은 아주 복고적인 분위기였다.
나에게 1986년의 이야기는 어제 같은데 말이다.
드디어 나도 늙은이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제 같은데...'
점점 더 삶의 패튼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가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부인하고 싶다.
하지만 늦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일이 있을 것이다.
소용되고 끝나는 일이 아닌 남는 일.
아직도 가능할 것이다.
안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기 삶을 살아 가는 것은 이십대라서 무조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칠십대라고 무조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결단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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