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r Date : 2005/01/15


2005.1.14

마감.
좁은 범위에서는 어떤 매체에 뭔가를 던져주어야 하는 시간.
대략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가 고통이 되는 순간.
내가 겪어 본 이런 저런 일감들 중 무엇이 가장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고통을
주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마감 시한이 있는 글쓰기' 라고 말할 수 있다.
대타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몇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그놈에 마감은 수명단축의 지름길이다.
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방인 나라에서 우연히라도 글 또는 글씨를 쓰면 장점이 있다.
글쟁이 열에 아홉은 서울에 다 있기 때문에 변방에서 변방스러운 매체들이
글을 맡길 필자는 언제나 제한적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자면 변방 학보사 문화면만
돌아다녀도 원고료로 생활비 절반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방대학 학보사와 지방 글쟁이는 서로 홍어좆일 수밖에 없는 관계다.
나는 지방 홍어좆 중에서도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는데
한양의 매체에 몇번 글을 수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가장 급진적인 미술그룹의 글쟁이 역할이었기 때문에 100분 토론에
구색용으로 필요한 한양용 홍어좆이었다.
시골놈들 중 일부는 내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줄 알았고
서울놈들 중 일부도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분투하는 지역문화' 였을 뿐이다.
그래서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원고청탁은 분명히 쓴 것 보다 거절한 것이 더 많았다.
그 시절의 원고의 주제는 정말 천편일률적이었다.
'문예운동의 과제와 전망' 아니면 '미술운동의 과제와 전망' 이라고 보면 무조건 맞다.
내 입장에서는 뻔한 이야기를 심각한 대학생 편집장께서는 자신의 의견까지
장시간 피력하면서 주제를 설명한다.
나의 질문은 항상 같았다.
"언제까지, 몇맵니까?"
지랄 같은 것은 이 인간들이 지난 번에 내가 쓴 어떤 글을 보고 청탁을 하기 때문에
내 글을 내가 카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똑 같은 소리를 다른 소리인양
만들어야 하니 이 장사는 하면 할 수록 쉬운 것이 아니라
하면 할 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1. 이제까지 변혁운동에의 복무가 강령적 차원의 이념적 이데올로그의 반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2. 과학적 변혁운동의 역사는 어쩌면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이제 그 맹아적 단계일지도 모른다.
3. 변혁운동은 이념이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행위되어 온 것이 아니라 '정신적 결단'으로 지속되어 온 것이다.

95년, 인쇄 하루 전날까지 미루다가 결국 어느 학보사 전면 원고를 펑크 내는 것으로
이런 마감과의 전쟁은 끝을 내었는데... 그 시절에 핸드폰이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무엇보다 내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맡겨진 역할로서
'글쓰기' 란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기까지, 즉 벗어 나기 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망할놈에 인터넷 세상이 오면서 이른바 웹아트란 주제가 미술잡지에 잡히는 경우에
몇번 또 그놈에 인간관계 때문에 억지춘향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간혹 그런 행사 때에는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발목을 잡히지는 않았다. 간단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펑크내면 앞으로 연락 안오겠지'

분명한 것은 나는 글쟁이가 아니고 따라서 마감에 쫓길 이유가 없다.
그냥 일기 쓰듯이, 긴 편지 쓰듯 글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ㅅㅂ 고백컨데 나는 밤마다 마감에 쫓긴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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